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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USICAL INSIDE] 더 나아갈 수 없는 날이 두렵다 <바람의 나라> [No.70]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09-07-09 6,432

 

 

당신에게 있어서 <바람의 나라>는 어떤  작품이냐는 질문에 이지나 연출은 “내가  재벌가
상속녀라면, 평생 이런 작품만 만들고 싶은 뮤지컬”이라고 답했다. “만약 연출가 이지나의
이름 옆에 <바람의 나라> 없이 <헤드윅>과  <그리스>만 있다면 그건 너무 슬플  것 같지
않느냐”고 부연하는 그에게 동의하면서, 그건 한국  뮤지컬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
각했다.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깊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한편으로는 관객과 소통하기를  포기
한 몽상극이라는 비판도 받아온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바람의 나라』는 서울예술단에서 다른 버전의 뮤지컬로 이미 한  번 만들어졌고, 올해 초 KBS에서 방영된 동명 드라마도 있는데 이지나 연출의 <바람의 나라>가 원작 팬들에게 유독 사랑 받는 듯하다.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각색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원작자가
직접 참여한 각색 작업에서 기준으로 삼은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나 자신이 원작 만화의 열렬한 팬이다. 이 뮤지컬이  원작 만화의 팬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김진 작가의 만화 『바람의 나라』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각색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 작품으로  뮤지컬을 만들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원작자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무휼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무휼과 아들  호동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호동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서술한 『삼국사기』의 본문이 실리는 것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이 뮤지컬 전체가 호동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 무대 위에서 조명이나 단으로 과거와 현재, 생과 사를  구별하는 방식은 한 페이지 안에서 칸을 나눠 다양한 시제와 화자를 병치시키는 만화적인 기법을 연상시키는데.


뮤지컬에서 잘 쓰이지 않는 연출법이기는 하지만 사실 연극이나 무용 같은 다른 무대극에서
는 종종 쓰이는 방식이다. 서구  연극은 사실주의와 논리를 중시하면서  발전해왔지만 아주
먼 옛날부터 아시아 연극은 상징적인 약속들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얼굴을 하얀색으로 칠하면 저 인물은 어떤 캐릭터고, 몸을 이렇게 돌리면 저 사람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이라는 등의 약속들이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어왔다. 그런데 전통이 단절
되면서 그런 약속들이 모두 잊혀지고,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펼쳐서 극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게 된 것이다. 

 

 

 

 

무휼은 원작에서보다 대사가 적다. 만화에서는 그래도 긴 독백도  종종 등장하고 세류나 괴
유와 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뮤지컬에서는 시종일관 굳게 입을 다물고, 솔로 곡도 하나
없다. 초연 때부터 왜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모델처럼 워킹만 하냐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나는 무휼이 우리 역사 속의 인물 중에 매우 드물게 여성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웅 캐
릭터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휼이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없이  짊어질 줄 아는 사람
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조금만 다치거나 손해를  봐도 부풀려서 말하고 이해
받고 싶어 하지만 왕이라면 그렇지 않아야 한다. 무휼은 우리나라에도 저런 왕, 지도자가 제
발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영웅이 아주
작은 실수 하나, 결함 하나  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그 실수가 이지에 대한 지나치게 냉정한 처우였고. 이런 면은 멜로드라마틱 하
면서도 희랍비극을 연상시키는 비장미가 있다. 초연부터  무휼을 연기하는 고영빈은 뒤돌아
서 걷는 등만 봐도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연기를 해주고 있다. 그게 그냥 걷는 것처럼 쉬
운 일일 리가 없지 않나.

 

배우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고, 캐스팅이 쉽지 않은 작품인 것 같다. 캐스팅 기준은 무엇이
었나.


물론 원작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을 외형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외모나 목소리
에서 느껴지는 성품과 분위기가 캐릭터와 맞아야 한다. 괴유  같은 경우에는 많이들 오해하
는 부분이 몸을 잘 쓰는 배우가 캐스팅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오히려 하늘에 속한 사
람이라는 작품 설정에 맞는 외모를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블록버스터

수준의 제작비를 가지고 있다면야 홀로그램이든 안드로이드든 만들어서 그런  비현실적으로
신비로운 존재를 무대에 세우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그렇게 보이는 배우를 찾아야 하는 거
다. 괴유에게 바디 페인팅이나 염색처럼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많이 주는 것도 그 때문
이다.

 

신수는 영상과 플라잉, 조명과 아크로바틱을  통해 표현했다. 원작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지만, 무대로 표현할 방식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설정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풀
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바람의 나라>를 판타지 뮤지컬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오늘날 무대공연에서 ‘판타지’라
고 하면 ‘태양의 서커스’ 정도를 보여줘야 하는 게 맞다.  무대에서 구현할 수 있는 있는
판타지라는 건 결국 서커스다. 액션에 의해 표현되는 상상력,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
내는 판타지. 무대적인 상상력을 자본과 결합시켜서  극한까지 밀어붙여서 영화에서 보여주
는 기술적인 매커니즘 이상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 ‘태양의 서커스’  아닌가. 그런데
우린 굉장히 저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 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들
때 드는 예산의 1/7 정도로 작품을 만들려고 하니 신수를 표현할 방식이 달리 없었다. 조명
을 맡은 구윤영 감독은 정말 칭찬을 받아야 한다. 내가 모노 뮤지컬 <텔미 온어 선데이>를
할 때 사용한 무빙이 36대였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12대를  가지고 그런 조명 효과를 낸
것이다.

 

 

원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여성 캐릭터인 연이가 뮤지컬에서는 희미하게 그려진다.


연이가 약하기는 하다. 그런데 일단 연이는 무휼의 마음속에  남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스라
한 느낌으로 표현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려면 지금보다 더 비중을
늘릴 수 없기도 했다. 가령 괴유와 세류의 연애는 이 버전의 <바람의 나라>에서는 도저히 

다룰 수가 없었다.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아까웠다. 하지만 무대극을 하는 이상 별 수 없지 않나. 사실 내가  『바람의 나라』

에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세류를 따라다니는 새 남조다. 부여의 왕자를 사랑하면서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래서 주인 세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장면은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다고 남조 이야기를 공연에 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번 공연에서는 청룡과 봉황(병아리)의 대결이 강조된 것 같다.


청룡과 병아리가 서로의 입장을 항변하는 장면은 원래 있던 것이었는데 목소리로만  들리다
가 이번에는 무대로 끌어낸 것이다. 김진 원작자의 뜻이었고, 존중해야 할 의견이라고  생각
해서 반영했다. <바람의 나라>를 하는 동안 내내 그랬다. 김진 원작자와 나는 서로의  의견
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었고, 때문에 부딪힐 부분도 없었다.

 

안무가 안애순의 역량이 빛난 작품 중 하나다. 12분간의 전쟁  군무는 한국 뮤지컬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바람이 온다’ 신에서는 테크노풍의 음악
이었다고 해도 백업댄서 같은 춤보다는 작품의 톤에 맞는 현대 무용이 전체적인 격조와 어
울리지 않았을까.


사실 한국 관객들이 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막에서의 군무가 반응이 좋은 것은 1막
내내 그들이 무얼 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들이 누구고 지금 왜 싸우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봤다면 지금처럼 관객들이 좋아하지는 않았
을 것 같다. 1막 내내 지루해 했던 관객들에게 전환의  기회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웃음)
안애순은 원래 현대무용을 하는 안무가라 ‘바람이 온다’ 식의 안무는 그가 자신 있어 하
는 분야는 아니다. <대장금>의 소격서  혁파 안무 같은 경우에 재연  때 손을 보기도 했는
데…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로 세 번째 무대에 올려졌고, 초연 이후 3년 만이다. 초연 당시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
는데, 두 번째 공연에서 반응이 엇갈려서 이번 공연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2006년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무대에 올려졌을 때, 이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뮤지컬 팬들이 아니라 원작 만화의 팬들이었다. 뮤지컬 팬이자 원작 팬인 경우도 있기야 했
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뮤지컬 관객들이나 평단에서는 무관심에 가까운 정도의 반응밖에 없
었다. 고영빈이나 조정석, 김산호 모두 지금과는 입지가 달랐고, 서울예술단 내에서도 이 작
품은 <왕의 남자>의 뮤지컬 버전을 올리기 전에 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격인 작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대극장 창작뮤지컬인데 전체 예산이 4억 원이었고 공연 기간도 단 일주일
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초연이 마니아층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재연  때
는 덕분에 공연 기간도 길어지고 좀더 많은 관객들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는 마니아층의 공연 후기가 부정적이었다. 일반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변화에 대해 혹평을 한 것이었다. 물론 손 본 부분  중에 잘못 고쳐진 것도 있었
다. 하지만 나는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주제 의식을  잃은 적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
다. 이 작품이 계속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는 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관객층을 넓히거나,
기존의 열성 관객들이 회당 5백만 원씩 주고 공연을 보거나. 후자는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
니까 우리는 <명성황후>가 될 수 없는 작품을 가지고 주제의식을 지키면서 새로운  관객들
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초연 이후 3년이 지났
는데 3년 전과 비교해보면 관객들의 이해도가 현저히 높아진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배우들
도 같은 생각을 하는데, 이 작품을 할 때면 이번이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슬
프다. ‘먼 옛날, 그런 작품 하나 있었지’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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