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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⑦]창작뮤지컬에서 '뮤지컬'로①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아이스톡 2024-06-28 2,630

8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초연을 앞둔 <어쩌면 해피엔딩>과 웨스트엔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마리 퀴리>,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유앤잇>, 그리고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국가 곳곳에서 공연 중인 각종 창작 뮤지컬까지! K-뮤지컬은 탄탄한 대본과 뛰어난 만듦새를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더뮤지컬이 6, 7월 두 달에 걸쳐 한국 뮤지컬의 해외 시장 진출 현황과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들여다봅니다. 먼저 한국 창작 뮤지컬을 해외 시장에 선보인 제작자, 창작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뒤, 최승연 평론가가 세계 시장 속 한국 뮤지컬의 활약을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최승연 평론가의 칼럼은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되며, 첫 번째 칼럼에서는 일본 뮤지컬 시장을, 두 번째 칼럼에서는 중화권과 영미권 시장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이 라이선스 초연되었던 2001~2002년이 한국 뮤지컬의 산업화 원년이라면, 2024년은 한국 뮤지컬의 국제화 원년으로 이야기될 법하다. 올해 한국 뮤지컬 현장은 유독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열기로 가득하다. 창작뮤지컬 IP 수출은 아시아권을 넘어 영미권으로 확장되고 있고 여러 형태의 국제적 합작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 시장을 거치지 않고 아예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제작된 한국 제작사의 공연도 탄생되었다. 한국에서 제작되었지만 방향을 틀어 해외 공연으로만 명맥을 이어가는 작품도 있다. 이제 한국 뮤지컬은 한국을 벗어난 곳에서, 혹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제작되고 공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가 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해외 진출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첫 사례는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서울시립가무단의 <양반전>(1986)이었다. 1987년 미국 서부지역 5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된 이후, 1991년에는 일본 오사카, 도쿄, 교토에서도 공연되었다. <양반전>은 애초에 86아시안게임 문화축전을 위해 기획된 작품으로서, 해외 공연 역시 서울올림픽을 홍보하고 해외 교포들을 위문한다는 목적을 명확히 갖고 있었다. 민간 차원의 해외 공연은 윤호진 대표의 뚝심으로 성사됐던 1997년 <명성황후> 뉴욕 공연이 첫 시작이었다. LA(1998), 런던(2002), 토론토(2004)로 이어졌던 해외 공연은 <명성황후>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창작뮤지컬로 거듭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흥미로운 것은 2002년 <명성황후> 런던 공연에 대한 『가디언(The Guardian)』지의 평가다. 당시 『가디언』의 수석평론가 마이클 빌링턴은 <명성황후>가 보여준 ‘봉건적 과거와 강제적 근대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동양’은 스티븐 손드하임이 <태평양 서곡>에서도 증명한 흥미로운 테마라고 평가하면서도, 공연을 2002년 월드컵의 공식적인 문화행사로 맥락화 했다.

 

 

일본: 한류와 케이팝 스타 중심에서 작품과 창작진 중심으로 
한국 뮤지컬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2008년 <사랑은 비를 타고>였다. 당시 제작사 엠뮤지컬컴퍼니는 3년간 매출액의 7%를 로열티로 받는 조건으로 토호주식회사(이하 토호)와 계약을 맺었다. 2002년 신시뮤지컬컴퍼니(현 신시컴퍼니)의 <갬블러>가 일본에서 먼저 공연되었지만, 실제 성과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들이 만들었다. ㈜씨에이치수박의 <빨래>(2012, 제작 퓨어메리),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블랙메리포핀스>(2014, 제작 토호예능&큐브), 각각 2014년, 2015년에 공연되었던 HJ컬쳐의 시즌제 뮤지컬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과 <셜록홈즈-블러디 메리>(제작 토호예능&큐브)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는데, 특히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은 90% 이상의 좌석점유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초기 일본 시장 수출은 ‘한류’의 흐름 안에서 과열되어 있었다. 한국 뮤지컬은 작품성보다 케이팝 스타를 앞세운 기획력으로 일본 시장을 두드렸다. 한국 뮤지컬의 일본 수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은 2013년 도쿄 롯본기에서 개관한 ‘아뮤즈 뮤지컬 씨어터’다. 2011년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제작 쇼치쿠)를 오사카에서 공연하며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던 CJ ENM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하나인 아뮤즈(Amuse)사와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이에 따라 원래 ‘롯본기 블루 씨어터’였던 극장은 뮤지컬 전용극장 ‘아뮤즈 뮤지컬 씨어터’로 전환되었다. 당시 아뮤즈는 개관 기념작으로 <카페인>을 올린 후 한국 뮤지컬을 연간 8~10편 정도 공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3년 케이팝 스타를 내세운 7편의 한국 뮤지컬을 공연하고 적자를 기록한 후 점차 편수를 줄이더니 콘서트 공연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로써 스타에 의존한 상술이 일본 시장에서 길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 관객들에게 ‘직접’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했다. 케이팝 스타 없이 성공했던 <빨래>, <블랙메리포핀스>, <셜록홈즈> 시리즈는 이에 대한 좋은 예시였다. 그 이후 한국 뮤지컬은 라이선스 수출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여 일본 시장과의 협력을 이어나갔다. CJ ENM의 <김종욱 찾기>(2016, 제작 아틀라스), 첫 일본 레플리카 공연인 HJ컬쳐의 <빈센트 반 고흐>(2016, 제작 큐브), 첫 대극장 수출작인 충무아트홀의 <프랑켄슈타인>(2017, 제작 토호&호리프로), EMK뮤지컬컴퍼니의 <마타 하리>(2018, 제작 우메다예술극장), 라이브㈜의 <마리 퀴리>(2023, 제작 아뮤즈), 아이엠컬처의 <전설의 리틀 농구단>(2024, 제작 ㈜FAB) 등이 일본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국공립단체인 서울예술단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과 <나빌레라>가 각각 2023, 2024년에 토호에 의해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토호는 2024년 9월 라이브㈜의 <팬레터>를 스몰 라이선스 방식으로 공연할 계획인데, 라이브㈜는 공연의 핵심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대본과 음악의 각색을 허용하지 않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러한 일본 시장 진출의 흐름은 점차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째, 그동안 일본 시장은 자국의 공연보다 해외 라이선스 공연으로 파이를 키워 왔다. 시장 구조로 보면, 사계와 토호를 중심으로 한 장기 공연과 다수의 제작사들이 진행하는 단기 공연들로 양분화되어 있다. 한국 제작자들에게는 자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계와 보수적인 토호보다 단기로 여러 작품을 돌릴 수 있는 여타 제작사들과의 협업이 다소 용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일본 내에서 ‘창작’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만화를 각색한 2.5차원 뮤지컬을 자국의 콘텐츠로 발전시키며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현재 증가하고 있는 공연 건수에 비해 콘텐츠 부족 현상을 겪으며 자국의 창작진을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토호는 해외 창작진들과 함께 하는 일본 창작진 육성 워크숍도 추진할 계획이다. 

 

둘째, <오즈>의 성과는 또 다른 변화의 마중물이다. 뮤지컬 <오즈>는 2023년 초연과 2024년 재연에서 모두 흥행에 크게 성공한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이다. 제작사는 2000년에 설립된 아뮤즈 한국 법인 ‘아뮤즈 코리아’의 후신 ‘아뮤즈엔터테인먼트’다. 2019년 대표로 취임한 키요야먀 코즈에가 직접 작품을 선택하고 제작하여 성공시킨 일본 제작사의 첫 한국 뮤지컬이 <오즈>인 셈이다. <오즈>는 공연 제작사 네버엔딩플레이 소속 작가인 김솔지 작가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다. 원래 제목은 <옐로우 브릭 로드>였으며,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고 한양대학교와 성동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콘텐츠창의인재동반사업 창작뮤지컬 낭독공연’에서 공연되며 제작의 급물살을 탔다. 아뮤즈엔터테인먼트에서는 당시 공연을 직접 보고 제작을 결정했는데, 공연이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따뜻한 정서’가 가장 중요한 선택의 이유였다는 것이 김솔지 작가의 설명이다.

 

<오즈>의 성공은 상호 간에 공유된 비전과 역량, 신뢰가 바탕이 된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특히 아뮤즈의 한국 시장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국내 지원사업이 플랫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은 작품 개발과 유통에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솔지 작가와 문소현 작곡가는 물론이고 멘토링과 공연 수행으로 <오즈> 개발에 힘을 보탰던 한국의 기성 창작진들과 배우들이 함께 ‘모여’ 만들었던 결과물은 실제 유통에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국가 간 뮤지컬 제작이 ‘작품’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오즈>가 창작뮤지컬인지 아닌지를 질문하는 건 다소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향후 제작 주체는 물론이고 창작진들 사이의 국가 간 협업 역시 빈번하게 벌어질 것이라 예상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양식과 관점을 지닌 작품들이 탄생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서울예술단 최경화 공연기획팀장은 서울예술단의 일본 라이선싱 작업이 2019년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 아란 케이의 자선 콘서트에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배우들이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성사되었음을 설명하며, 수출에 있어서 서울예술단은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공공단체의 상징자본과 같은 ‘신뢰성’은 한국 창작진들의 입장을 보호함과 동시에 국가 간 협업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동안 업계에서 해외 진출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되었던 ‘원 아시아 마켓’은 이제부터 더욱 구체적으로 모색될 필요가 있다. 최근 <레미제라블> 한국 삼연(2023~2024)에 에포닌으로 출연했던 배우 루미나는 국가 간 마켓이 상호 영향 관계에 있음을 실제로 증명한다. 인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루미나는 중학생 시절 일본에서 봤던 <셜록홈즈> 시리즈를 계기로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게 된 노마드적 존재다. 바야흐로 창작뮤지컬 너머, ‘뮤지컬’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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