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뮤지컬 속 Fact & Fantasy 1. <오페라의 유령>, <마이 페어 레이디>, <렌트> [No.68]

글 |김영주 사진 |유이케이 2009-05-27 8,592

모든 창작물들이 그렇듯이 뮤지컬도 하늘 아래 먼저 존재한 다른 무엇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새로 짓는 오페라하우스의 지하에서 계속 물이 올라와서 공사가 지연 되고 있다는 신문 기사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기분 좋게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브로드웨이의 미래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카페의 긴 테이블이기도 하다. 절반은 전설이고 절반은 신화처럼 느껴질 만큼 아득히 먼 역사 속의 누군가를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못다 한 말을 이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만들어진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뿌리로, 줄기로 제 몫을 하고 있는 실제의 그곳,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오페라의 유령>, 가르니에궁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대작 <오페라의 유령>에서 극장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라기보다는 작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매일 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극장의 무대 아래 ‘유령’이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은거하고 있다는 고딕적인 상상력은 저 공간의 마력을 아는 사람들을 납득시킨다. 원작 소설을 쓴 가스통 루르에게 영감을 준 곳은 파리 중심에 위치한 가르니에궁으로, 파리 오페라 극장이라고도 불린다. 가르니에궁은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을 파리에 만들라’는 나폴레옹 3세의 명령에 따라 1875년에 완공된 이래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화려한 건물이다.
나폴레옹 3세가 한 말은 당시 유럽 각국을 휩쓸고 있던 팽창적인 제국주의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세계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던 유럽의 강대국들은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국민적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극장 규모가 전체 객석의 다섯 배에 달하고, 8톤짜리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호화로운 가르니에궁이 탄생한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해진 샹들리에는 지나치게 크고 화려해서 4층 관객들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원성을 들었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추락 사고였다. 인간들의 과시욕과 정복욕을 비웃듯 샹들리에와 관련된 사고로 인부 한 명과 여성 관객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르포 기자였던 가스통 루르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작품의 정서에 더욱 깊이 반영되었다. 잇따르는 샹들리에 사고뿐만 아니라 극장 아래의 지하 호수 역시 실재했다. 가르니에궁의 지하 호수는 무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공연에 따라 수위가 달라졌다고 한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 중 하나인 마스커레이드 신에서 등장하는 대계단 역시 가르니에궁에 실제로 존재한다. 8개국에서 가져온 여덟 가지 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의 화려한 계단은 ‘무대를 제외하면 극장 안에서 가장 시선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일컬어졌다. 유령을 피해 극장 지붕으로 도망간 크리스틴과 라울이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유령이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았던 황금 천사상 역시 가르니에궁 정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이 페어 레이디>, 코벤트가든

 

 

 

 

 

 

 

 

 

 

 

 

 

 

 

 

 

 


코벤트가든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애초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사들에게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는 텃밭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헨리 8세에게 징발을 당하면서 코벤트 가든은 런던 최대 규모의 청과물 시장으로 변화하게 되었는데, 1913년 버나드쇼가 이 곳에서 꽃파는 처녀 일라이자를 주인공으로 한 희곡 『피그말리온』을 발표하고, 1956년에 이르러 그 작품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번안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고전 뮤지컬 팬들에게 각별한 곳이 되었다. 재래시장 특유의 혼잡함 때문에 교통체증을 야기하는 문제로 청과물시장은 1970년대에 런던 교외로 옮겨지고 현대적인 쇼핑몰로 대대적인 탈바꿈을 했지만 여전히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오드리 햅번처럼 사랑스러운 꽃 파는 처녀를 상상하곤 한다.
시니컬한 상류계급 출신의 언어학자 히긴스가 하층민들의 각양각색인 억양과 발음을 연구하기 위해 코벤트가든을 선택한 것은 이 곳이 다양한 지역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런던의 대표적인 청과물시장이기 때문이었다. 코벤트가든에는 화훼시장도 함께 열렸는데 일라이자처럼 가난한 소녀들은 도매상들이 운반 과정에서 떨어뜨린 꽃을 주워다가 로열오페라하우스(이 극장 역시 일반적으로 ‘코벤트가든’이라고 불린다)를 오가는 부유한 관객들에게 팔기도 했다. 하층민들이 북적이는 청과물 시장과, 우아하게 차려 입은 관객들이 찾는 왕실 극장이 붙어있는 흔치 않은 곳이라는 점 또한 <마이 페어 레이디>의 배경이 되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렌트>, 라이프 카페

 

 

 

 

 

 

 

 

 

 

 

 

 

 

 

 

 

 


<렌트>가 오페라 <라보엠>의 스토리와 인물 설정을 차용한 뮤지컬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라보엠>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이탈리아 문화계의 화두였던 ‘베리스모’, 번역하자면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는 사조를 대표하는 오페라였는데, <렌트> 또한 같은 경향을 띠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신화적인 인물이나 역사적인 사건 대신, 당대의 청춘들과 그들의 소소하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극인 것이다.
시인 로돌프가 록커 로저가 되고, 화가 마르첼로가 영화감독 지망생 마크가 된 것처럼 보헤미안들의 아지트인 생 제르맹 로셀루아의 카페 모무스(Cafe Momus)는 이스트빌리지의 라이프 카페로 바뀌었다. 카페 모무스가 실제로 보헤미안들이 즐겨 찾던 보금자리였던 것처럼 라이프 카페 역시 조나단 라슨과 그의 무리들이 매일 같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라슨은 자신의 주인공들이 라이프 카페에서 ‘비바, 라 비 보엠!’을 목청껏 외치게 함으로써 한 세기 앞서 파리에서 살다 간 선배들에게 간접적으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서구 문화사를 돌이켜 보면 지난 300여 년간 카페는 언제나 지성인과 예술가들의 사랑방 노릇을 해왔다. 빈의 첸트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파리의 플로르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사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카페에서 내가 아닌 타인과 토론, 교류, 연대할 수 있었고 이 전통이 19세기의 카페 모무스에서 20세기의 라이프 카페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다.
카페 모무스는 사라졌지만, 라이프 카페는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살아남아있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영화 <렌트>에서 마크와 그 친구들이 라이프 카페로 몰려가는 길은 실제 루트대로 촬영을 한 것이다. 21세기답게 온라인 상에서 라이프 카페의 홈페이지도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뉴욕 리바이벌 공연의 배우들과 이탈리아, 일본 라이선스 <렌트>의 배우들이 카페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뮤지컬과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최후의 만찬이라도 치를 수 있을 듯한 긴 테이블은 지금도 라이프 카페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