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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거짓 진술을 부추긴 것도 죄가 될까 - <레베카> [No.229]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2023-10-25 2,089

<레베카>의 주인공 ‘나’는 대저택 맨덜리의 주인 막심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맨덜리에 도착한 ‘나’는 막심의 죽은 전처 레베카가 여전히 저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위축되지만, 이내 막심과 레베카 사이에 비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베카>의 주요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범죄를 저지른다. 인물별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막심을 속이고 결혼한 레베카

레베카는 막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결혼에 성공한 뒤 계약을 제안한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다른 남자들과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현행법상 레베카의 외도는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혼인 후에도 자유롭게 연애를 이어가겠다는 의사는 혼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혼인 전에 상대방에게 미리 알렸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막심은 레베카가 이러한 의도를 속이고 결혼했다는 점을 이유로 기망에 의한 혼인 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 단, 혼인 취소 청구는 속았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해야 하기 때문에 기간을 준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혼인 취소 외에 막심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레베카를 상대로 재판상 이혼 청구를 하고 부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위자료 청구 소송은 이혼 여부와 상관없이 제기할 수 있지만, 이혼하지 않는 한 실효성이 크지 않다.

 

 

실수로 레베카를 죽인 막심

막심은 이중생활을 하는 아내 레베카를 증오하지만 가문의 명예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베카는 자신이 애인과 밀회를 즐기던 보트 보관소에서 막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그러면서 모두가 막심의 아이라고 생각할 테니 아빠 연기나 하라며 그를 조롱한다. 이에 화가 난 막심은 레베카를 밀치고, 레베카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막심은 살인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막심을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의에는 확정적 고의뿐 아니라 미필적 고의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각종 공구가 널려있는 장소에서 사람을 밀치면 위험한 물건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 있다. 이를 알면서도 감수하고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밀쳐 실제로 죽게 만든다면 이 또한 살인의 고의로 취급된다.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밀쳤는데 예상치 못하게 상대방이 죽어버린 경우는 어떨까? 사람을 밀치는 행위는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 즉 폭행에 해당한다. 고의로 사람을 폭행해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한다면 결과적 가중범이 되어 과실치사죄가 아닌 폭행치사죄 또는 상해치사죄로 무겁게 처벌받는다.
뮤지컬 속 막심에게는 레베카를 죽이겠다는 확정적 고의가 없었다. 하지만 레베카를 강하게 밀칠 경우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인했다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막심의 변호인은 막심이 다툼 도중 우발적으로 레베카를 밀쳤을 뿐, 이로 인해 레베카가 죽을 줄은 몰랐다고 열심히 변호해야 할 것이다. 만약 검찰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막심은 폭행치사죄로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살인죄가 사형, 무기 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는 데 비하면 가벼운 처벌이다. 더불어 막심이 레베카의 시신을 보트에 실어 침몰시킨 행위는 시체은닉죄에 해당하여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막심에게 거짓 진술을 부추긴 나 

‘나’는 막심이 레베카를 밀치는 바람에 레베카가 사망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막심이 레베카에 대한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자, 막심에게 ‘레베카는 보트를 타고 나가서 자살한 것’이라고 진술하도록 부추긴다. 이는 명백히 허위 진술이다. 그렇다면 막심은 위증죄를, ‘나’는 위증교사죄를 저지른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위증죄는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하면 성립하는 범죄다. 증인이 아닌 피고인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거짓말을 해도 위증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범인인 막심이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부인한다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피고인 막심에게 거짓 진술을 시킨 ‘나’도 위증교사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나’가 막심의 친구나 집사 댄버스 부인 등 제3자에게 재판에서 거짓 진술을 하도록 교사했다면 위증교사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나’는 극 중에서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바로 레베카가 남긴 큐피드상을 깨트린 것이다. 이 큐피드상은 레베카 사망과 동시에 법률상 배우자인 막심이 상속받게 되므로 막심의 소유물이다. ‘나’는 타인의 재물을 고의로 손괴하였기 때문에 손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단, 형사는 원칙적으로 고의범만 처벌하기 때문에 과실 손괴는 처벌하지 않는다. ‘나’는 맨덜리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실수로 큐피드상을 떨어트려 깨트리는데 이때는 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가 레베카의 비밀을 안 뒤 작정하고 큐피드상을 깨트린 행위는 손괴죄에 해당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9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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