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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인스크립트, 말과 글이 머무르는 희곡 가게 [No.229]

글 |이솔희 사진 |인스크립트 2023-10-24 1,013

희곡으로 책장을 빼곡히 채운 작은 서점 인스크립트가 지난 7월 연희동 뒷골목에 문을 열었다. 서점지기 두 사람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있는 이 아기자기한 공간에서는 한 달에 두 차례 소규모 희곡 낭독 모임이 열린다. 

 

 

 

 

희곡, 일상에 스며들다 

 

인스크립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벽 한 면을 꽉 채운 핫 핑크색 표지의 책들이 시선을 끈다. 희곡 전문 출판사 ‘지만지드라마’가 출판한 희곡 전권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셰익스피어 고전부터 국립극단의 최신 창작 희곡까지 다양한 종류의 희곡이 나란히 꽂혀있고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와 연기, 연출 관련 서적 등 무대와 연기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눈을 뗄 수 없는 책들이 잔뜩 준비되어 있다. 이처럼 희곡과 시나리오에 진심인 이 공간은 배우로 활동 중인 박세인, 권주영 부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희곡 서점’이라는, 다소 낯선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을까? 그 기반에는 당연하게도 연기와 무대를 향한 애정이 있다. 계속해서 선택받아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에 지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배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고민 끝에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배우이기 이전에 관객이었기에, 관객으로서 희곡과 연극을 사랑하던 시절의 마음을 되찾고 싶어서 희곡 서점을 운영해 보기로 했어요.” 배우 활동에 따른 개인적인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떠올린 방안이었는데, 개점을 준비하며 연극인이 연극을 사랑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의지와 희곡의 대중화를 향한 책임감이 더해졌다. “희곡은 오프라인 판매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배우들은 늘 희곡 서적을 구매하려고 서점을 찾아 헤매야 했어요. 또 희곡을 쓰고도 공연화하지 못해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하는 작가도 여럿 있고요. 그런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박세인, 권주영 대표는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희곡을 쉽게 구매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인스크립트를 ‘희곡 가게’라고 부른다. 두 서점지기의 목표는 인스크립트가 사람들의 일상에 희곡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박세인 대표는 인스크립트를 ‘말과 글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말이 되기를 기다리는 글들이 모여있는 곳이자 글이 말로 발화되는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박세인 대표는 인스크립트가 단순한 서점이 아닌 희곡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모임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서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메타극이나 소규모 극단의 쇼케이스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에요. 인스크립트가 무대를 사랑하는 이들의 교류의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볍게 읽고, 깊게 얘기하기 

 

인스크립트는 매달 ‘낭독서 모임’을 개최한다. 한 편의 공연을 올리기 전, 배우들과 창작진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본을 함께 분석하고 작품에 얽힌 배경지식이나 인물의 전사 등을 파고드는 시간을 갖는데, 이를 ‘테이블 작업’이라 부른다. 낭독서 모임의 호스트로 나서는 박세인 대표는 이러한 테이블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낭독서 모임을 기획했다. 낭독서 모임은 희곡을 함께 읽고 연기하는 낭독 모임과 책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을 합친 개념이다. 서점지기가 선정한 희곡을 함께 읽고, 각 캐릭터가 되어 연기해 본 후 희곡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낭독서 모임에서는 희곡이 쓰인 의도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 희곡 속 이야기와 자신의 삶이 맞닿아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목표다. 


낭독서 모임은 총 2회차로 진행되는데, 지난 9월 16일 신효진 작가의 「밤에 먹는 무화과」 낭독서 모임의 1회차 모임이 열렸다. 평소 공연 보는 것을 즐기는 관객, 문화예술 업계 종사자, 공연 통역을 꿈꾸는 수어 통역사, 연출가를 꿈꾸는 십 대 소녀까지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 아홉 명이 모였다. 「밤에 먹는 무화과」는 호텔 로비에서 여러 인물을 만나는 70대 여성 윤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아홉 명의 참가자는 각 장별로 그때그때 다른 인물을 맡아 희곡을 읽었다. 1시간에 걸쳐 낭독을 마친 후에는 각자 희곡을 읽고 떠오른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물론, 결말 이후 인물의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등 참가자들은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았고, 모임은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됐다. 오는 10월 7일 열리는 두 번째 모임에서는 각자 하나의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고, 희곡의 무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희곡은 발화될 것을 전제로 쓰여진 글이에요. 눈으로 읽는 데서 오는 감상과 직접 말로 읽어보는 데서 오는 감상이 확연히 다르죠. 그래서 희곡을 직접 읽고 연기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스크립트의 낭독서 모임은 추후 다방면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모임 횟수를 늘려 같은 희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재미를 느껴보거나 희곡 작가가 직접 모임의 호스트로 나서 한층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식으로 말이다. 연기 클래스나 합평 중심의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은 작가만큼 깊이 있게, 혹은 작가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작품을 파헤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낭독서 모임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희곡을 파헤치고, 그 안에 숨어있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9호 2023년 10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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