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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나란히 걷는 시간 - <쇼맨> 윤나무∙강기둥 [No.228]

글 |안세영 사진 |이배희 2023-10-16 2,400

 

 

윤나무와 강기둥은 최근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이하 <쇼맨>)와 <온 더 비트>에 연달아 함께 출연하며 같은 역할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부터 붙어 다녔는지 얘기하자면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웃긴 얘기 해드릴까요? 실은 연출님께 <쇼맨> 출연 제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저희 둘이 같이 있었어요.” 서로를 친형제나 다름 없는 사이로 소개하는 두 배우는 1년만에 돌아오는 <쇼맨> 재공연에서 또 한 번 같은 역할을 맡았다. <쇼맨>은 젊은 시절 독재자의 대역 배우로 일했던 노인 네불라가 청년 수아에게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사진 촬영을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불라를 연기하는 두 배우는 서로를 응원하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질문하는 무대

 

사진 촬영 때 보니 두 분이 정말 스스럼 없는 사이 같던데,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요?
강기둥 나무 형과는 사석에서 처음 만났고,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2016년 연극 <올모스트 메인>을 함께하면서부터예요. 서로 말이 잘 통해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종종 따로 만나 술자리를 가졌어요.
윤나무 <올모스트 메인>에 함께 출연한 박성훈 형까지 더해 셋이서 자주 어울렸어요. 성훈 형은 이전에 기둥이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를 함께하고, 저와는 연극 <모범생들>을 함께한 인연이 있거든요. 셋 다 무대에서 매체로 넘어간 시기도 비슷해서 마음이 잘 맞았어요. 지금까지도 셋이서 친하게 지내요. 얘나 저나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강기둥 그래도 셋 중에는 내가 제일 많을 걸? 얼마 전에는 나무 형이 제 고향 제주도에 놀러간다기에 제 학창 시절 친구들을 소개해 줬어요. 

 

친구까지 공유하는 사이군요? 제주도에는 나무 씨 혼자 다녀온 거예요?
윤나무 네, 저 혼자 가서 기둥이 친구 집에서 2주 동안 지내다 왔어요.
강기둥 친구한테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 한 분이 갈 거라고 하니까 연예인 만난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윤나무 연예인은 아닌데…….
강기둥 무슨 소리야. 걔가 연예인 아니면 안 받는다고 했어.
윤나무 아무튼 여기 오는 길에도 기둥이 친구한테 메시지가 와서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어요.
강기둥 진짜? 걔는 나한테 말도 없이 왜 그러냐.
윤나무 좋은 친구야.
강기둥 당연하지. 내가 먼저 알았어!

 

지난해 <쇼맨>에 출연하면서 <올모스트 메인> 이후 오랜만에 한 작품에서 만났잖아요. 초연 당시 이 작품은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 공연 준비 과정에서 이런 성과를 예상했나요? 
윤나무 <쇼맨>은 대본을 읽자마자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한이박(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이 작품 하나하나를 공들여 만드는 창작진이라는 걸 잘 알기에, 연습을 하면서 숨은 의미를 찾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연습실에서 기둥이와 다른 배우들의 마지막 리허설을 지켜보는데, 굉장히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연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이 충만했어요. ‘아, 이건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라는 직감이 들면서 그 순간 제가 느낀 감정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졌어요. 
강기둥 이 양반이 감격했는지 막 울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한테 이런 소릴 하는 거예요. “됐다. 이로써 우리의 배우 수명이 5년 정도 늘어났다.” (웃음) 물론 우스갯소리였지만, 형의 작품 보는 눈이 정확한 건 사실이에요. 형이 “됐다”라고 하면 저도 마음이 놓이죠. 제가 <쇼맨>의 대본을 읽고 처음 느낀 감정은 반가움이었어요. ‘한이박’의 전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이 친절하고 대중적이었다면, <쇼맨>은 불친절하지만 훨씬 뜨겁게 와닿았거든요. 대단히 용기를 내어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도전을 함께할 배우로 저희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감사했어요.

 

창작진이 독재자를 위해 일한 네불라를 옹호하는 것처럼 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하지만 배우가 본인이 연기하는 인물과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기는 힘들 것 같은데, 네불라라는 문제적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고자 했나요? 
윤나무 저는 어떤 배역이든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 걸 지양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인물에 접근하기보다는 대본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는 일에 집중해요. <쇼맨>에서 네불라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자기 인생의 여섯 가지 대목을 골라 수아에게 보여준 다음 판단받고 싶어하죠.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네불라가 이 여섯 가지 순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뭘까 고민하고, 각각의 순간에 네불라가 느꼈을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불필요한 연민은 자제하고 있어요.
강기둥 저는 형과 다르게 네불라에게 조금은 연민을 느껴요. 그렇다고 “이 사람 불쌍하죠?”하고 관객을 설득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났을 때 네불라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요. 네불라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판가름하는 걸 넘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좋겠어요. 그건 꽤 좋은 성찰인 것 같아요. 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니까요.
윤나무 극중에서 수아가 네불라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잖아요. 누군가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희가 연기하는 네불라를 본 관객들이 수아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면서 특히 고민이 많았던 장면을 꼽는다면요?
강기둥 네불라가 수아에게 자기를 판단해달라고 하는 장면이요. 이 장면은 가장 마지막에 연습했어요. 앞서 네불라가 선보이는 여섯 가지 장면의 감각을 하나씩 느껴본 다음, 그 모든 걸 녹여내서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니까요. 하지만 72년이라는 세월을 살아 보지도 않았고, 대역 배우의 삶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제가 네불라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게 참 쉽지 않더라고요. 공연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서 연기도 조금씩 달라졌던 장면이에요.
윤나무 저도 연기할 때마다 매번 다른 감정을 느꼈던 장면이 있어요. 마지막에 네불라가 수아가 찍어준 자기 사진을 들여다 보는 장면이요. 지금도 네불라가 그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답을 찾고 있는데, 아마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네불라는 뮤지컬 주인공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많지 않아요. 네불라가 직접 자기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대신 코러스가 그가 처한 상황과 감정에 대해 노래하죠. 낯선 형식의 뮤지컬을 경험해 본 소감이 어때요? 
윤나무 창작진에 의하면 네불라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코러스가 그의 마음을 대변해 노래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해요. 또 한편으로는 관객이 네불라의 감정에 이입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 같아요. 저야 다른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네불라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본인들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쉬지 않고 애써주거든요. 이번 연습 때는 네불라의 눈빛과 제스처를 코러스의 노래와 딱 맞아떨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우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장면이 더 풍부해질 것 같아요. 

 

 

 

 

공존을 위하여

 

지난 공연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던 장면이 있어요. 재판에서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숨기려고 하는 간부와 달리 네불라는 자기가 독재자의 대역 배우로 일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잖아요. 대체 왜 그랬을까요?
강기둥 그 장면에서 간부는 검사에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했다고 말해요.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네불라가 벌떡 일어나서 아니라고 반박하죠. 제 생각에 네불라는 그 순간 자기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했다고 느낀 것 같아요. 그동안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해온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자기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들을 미워하고,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자기가 한 일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혼란을 겪지만요.

 

수아는 그런 네불라의 모습에 반감을 갖지만 결국 자신에게도 그와 닮은 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두 분도 네불라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했나요?
강기둥 그럼요. 물론 독재자의 대역배우로 일한 건 특수한 상황이지만,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게다가 네불라의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 더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요. 극단 동기들 사이에서 혼자만 뒤쳐지는 네불라의 모습은 연기를 배우겠다고 서울에 갓 올라왔던 시절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들었던 저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윤나무 저는 네불라가 극단 선배들의 말에 휘둘려 우왕좌왕하는 장면에서 100% 공감했어요. 저도 대학 시절 저마다 다른 연기론을 펼치는 교수님들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따라야할지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거든요. 그 안에서 자기만의 연기 스타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죠. 
강기둥 배우는 남의 말에 휘둘리기 쉬운 직업이에요. 끊임없이 관객에게 평가받고, 함께 작품을 만드는 동료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배우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할 부담이죠.

 

만약에 연출가의 생각이 본인의 생각과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요?
강기둥 그 부분에 있어선 저희 둘 다 생각이 비슷해요. 일단 최대한 연출님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고 원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요.
윤나무 배우는 자기가 연기하는 모습을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 연출님은 연습실에서 저희가 연기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고 계시거든요. 말하자면 최초의 관객인 셈인데, 배우가 관객을 무시하고 연기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선배님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연기하는 동안에도 자기 모습을 관객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정말 좋은 배우라고요. 제가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나 봐요. 
강기둥 아, 여태 안 보고 있었어? 난 이제 조금 보이더라고. CCTV 켜뒀다 생각하면 돼.
윤나무 감시당하는 것 같아서 연기 못하겠다. 
강기둥 음, 그건 좀 불쾌할 수 있어. 

 

한정석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해요. 두 분은 평소에 이해하기 힘든 타인을 어떻게 대하나요?
윤나무 저는 삼진아웃제입니다. (일동 웃음) 상대가 제 마음을 상하게 해도 세 번까지는 참고 넘어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배우는 절대 혼자 일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공존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해야 동료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때론 부딪히더라도 다시 서로에게 손을 내밀면서,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강기둥 저는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편이에요. 물론 계속해서 나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안 만나는 게 상책이지만, 그와 별개로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함부로 낙인을 찍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하니까요. 

 

<쇼맨>과 <온 더 비트>를 거쳐 다시 <쇼맨> 재공연까지. 연달아 같은 공연에 같은 역할로 참여하고 있는데, 두 분에게 이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강기둥 작년부터 계속 나무 형이랑 같은 작품에 출연했더니 주변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들어요. “야, 요새 너랑 나무 형이랑 둘이서 다 해먹냐?” (웃음) 근데 그런 말을 듣는 게 싫지 않더라고요. 마음이 잘 맞는 동료 배우와 2년 가까이 함께 작업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긴 시간 함께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번에도 힘을 합쳐 좋은 공연을 선보여서, 함께 배우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윤나무 5~10년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 이 시간이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기둥이와 나란히 앉아서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드럼을 두들겼던 순간들이요. 앞으로도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지금까지 함께 보낸 시간도 좋았지만 앞으로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더 기대돼요. 무대에서든 매체에서든 지금처럼 열심히 연기하다 보면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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