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는 친구의 배신으로 귀족에서 한순간에 노예로 전락한 유다 벤허의 운명적인 삶을 통해 인생의 고난과 역경,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한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벤허>는 드라마를 다듬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시즌에는 매체와 무대를 오가며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던 신성록이 유다 벤허로 새롭게 합류한다. 벌써 작품과 인물에 푹 빠졌노라 고백하는 그가 그려낼 벤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지금이 아니면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 내서 도전했어요”
지금까지 대극장과 소극장, 창작과 라이선스를 막론하고 다양한 무대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줬어요. 이번에는 <벤허>를 통해 또 다른 변신을 예고했죠?
솔직히 출연 제안을 받기 전까지 제가 <벤허>에 출연할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찬찬히 읽어보니 배우로서 욕심이 생기는 부분이 많았어요.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시련을 끝끝내 극복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그 과정에서 벤허가 인간미를 잃지 않고 신념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인물이라 연기해 보고 싶었죠. <벤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배우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만만치 않은 작품이에요. 조금 걱정됐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 내서 도전했어요.
예전에 진지한 주제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선호한다고 했죠. 이 점이 <벤허>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쳤나요?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조금씩 달라져요. 작품을 선택할 때 여전히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을 선호하지만, 그보다 내가 이 인물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아요. 연기할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면 그 인물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음악처럼 기술적인 부분도 저와 맞는지 고려해야 하죠. 작품을 선택할 때 제 나름의 기준이 있어도 출연을 결심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해요.
벤허의 어떤 점에 공감했는데요?
인물의 성격이나 특성보다 벤허가 상황마다 느끼는 감정이 굉장히 공감됐어요. 벤허는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노예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요. 또 살기 위해 검투사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살인도 저지르고요. 솔직히 벤허가 겪은 일이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가까운 사람이 나를 배신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이나 분노는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잖아요. 다만 벤허가 느끼는 감정의 크기와 깊이가 보통 사람보다 크고 깊을 뿐이죠.
벤허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복수와 용서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보여요. 그런데 성록 씨는 벤허의 영웅적인 면보다는 인간미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네요?
영웅적인 면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저는 벤허가 영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위로받는 모습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인간미를 많이 느끼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벤허>가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요.
<벤허> 하면 원작 소설보다는 1962년에 개봉한 영화가 먼저 떠올라요. 혹시 영화를 본 적 있나요?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은 있는데 오래전의 일이라 내용은 다 잊어버렸어요. 이번에 <벤허>를 준비하면서 영화를 찾아보니 유튜브에 있더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 속 벤허의 이미지를 따라가게 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사실 저는 웬만해서는 원작이나 원작과 관련된 작품을 찾아보지 않아요. 결국 제가 연기할 인물은 대본 속에 있잖아요. 대본을 보고 느끼는 대로 연기하고 싶어서 전적으로 대본에 의지하는 편이에요.
인스타그램에 오래 준비했으니 기대해 달라는 말과 함께 <벤허> 캐릭터 포스터를 포스팅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기에 그런 메시지를 남긴 거예요?
<벤허>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해 <엘리자벳>을 공연할 때였어요. 그다음 작품인 <스위니 토드>를 마칠 때까진 적극적으로 뭔가를 준비한다기보다 앞으로 벤허로 무대에 오를 거라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서 가끔 음악을 들어보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스위니 토드>가 끝나고 데뷔 후 처음으로 긴 휴식 시간이 생겼어요. 쉬는 동안 열심히 운동하면서 몸도 만들고 틈틈이 대본과 음악도 살펴봤죠. 다른 작품에 비해 연습 전에 작품이나 인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길었어요.
긴 시간 작품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면 연습을 시작했을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저는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어서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감정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어느 정도 갖춰진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는 아니에요. 차근차근 인물에 접근하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인물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 나름대로 밑 작업을 마치고 연습을 시작해서 조금 수월했어요. 보통 0에서 연습을 시작했다면 <벤허>는 20까지는 채우고 시작하는 느낌이었죠.
“인물에게 몰입할수록 창작자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벤허 역에 박은태, 규현 배우가 함께 캐스팅됐죠. 같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연습 중에 서로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데 <벤허> 팀은 어때요?
배우마다 연습 스케줄이 달라서 연습실에서 마주치는 일이 드물어요. 그런데 한번은 관객 입장에서 작품을 보고 싶어서 (박)은태 형에게 허락받고 형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은태 형은 <벤허> 초연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작품이나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연습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공부가 됐어요. 연습이 끝난 후 형한테 많이 배웠다고, 고맙다고 그랬어요.
앞서 <벤허>를 두고 배우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잖아요. 막상 연습을 해보니 뭐가 가장 어려웠어요?
우선 음악이 어렵죠. 그리고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야 하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고요. 그렇지만 역시 무술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전에 <몬테크리스토>를 마치고 다시는 무술 하는 작품을 못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벤허>에서 또 무술을 연마하고 있네요. (웃음) 관객 눈에는 무대 무술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무술보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작은 실수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데다가 매일 무대에서 라이브로 무술을 선보여야 해서 더 조심해야 해요. 연습 시간에 배우들끼리 정교하게 합을 맞춰놔야 하는데 <벤허>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 있어서 더 어려워요. 같이 무술 연습을 하는 동료 배우들을 보면 얼마나 열심인지 몰라요. 저희끼리 뮤지컬 시상식에서 무술 상도 하나 만들어줘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무술 실력은 많이 늘었나요?
지금 한 5~6주 연습한 것 같은데 어제 처음으로 무술 감독님께 칭찬받았어요. (웃음)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연습에 매진해야죠.
검투사가 된 벤허가 경기를 치르면서 ‘살아야 해’를 부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무술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대단해 보였어요.
아쉽게도 이번 공연에서는 그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살아야 해’는 원래 1막에 등장하는 노래지만 이번 삼연에서는 2막의 다른 장면에서 불러요. 노래와 드라마가 더 잘 어울리는 장면으로 옮겨졌거든요. 삼연은 재연과 비교해 드라마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었어요. 큰 틀에서 보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일부 장면 순서가 바뀌고, 새 노래를 추가하는 등의 변화가 있어요. 참고로 새롭게 추가된 노래는 벤허의 내면을 드러내는 곡인데 너무 좋아서 관객 여러분도 한 번 들으면 반하실 거예요.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감정이나 에너지를 계속 쌓으면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게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해요. 어제 처음으로 2막까지 연결해서 연기해 봤어요. 특별히 애쓰지 않고 대본만 따라갔는데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쌓이더라고요. 극 후반에 벤허가 예수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후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너무 커져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감정을 다스리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인물의 감정에 푹 빠지다 보면 본인이 의도치 않은 감정이나 연기가 나오기도 하나요?
어제 연습 때 메셀라가 죽기 전에 얼굴을 한번 어루만져 주고 싶었어요. 메셀라는 벤허에게 온갖 시련을 안기고 집안을 풍비박산 낸 원수지만 그의 죽음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쨌든 벤허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서 메셀라의 티 없이 순수했던 모습을 알고 있잖아요. 전차 경기 후에 만신창이가 된 메셀라를 보니 문득 이 친구도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구나 싶었어요. 비록 옳은 선택이 아니었대도 그 순간만큼은 메셀라가 너무 가여워서 얼굴을 만져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어요. 하지만 자칫 그런 행동이 용서의 의미로 비치진 않을까 고민이에요. 그 장면에서 벤허는 메셀라를 용서하지 않거든요. 벤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역할이라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그려지는데 신성록이 연기하는 벤허는 이런 모습이라고 힌트를 준다면요?
연기할 때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고 정해둔 건 없어요. 그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 상대 배우의 호흡에 맞춰 리액션하는 것에 더 집중하려고요. 하지만 극 초반에 유대 귀족 벤허의 모습은 나름의 계획을 갖고 연기해 보고 싶어요. 점잖고 근엄한 전형적인 귀족이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때로는 철없는 귀족의 모습으로요. 그러면 운명에 휩쓸려 완전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벤허의 모습과 더 극적으로 대비될 것 같아요.
<벤허>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이런 작품의 주제를 더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더 고민하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있어요?
저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몰입할수록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장면은 이렇게 연기하겠다고 계산하는 대신 매 장면에 집중하고 몰입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그렇게 완성된 장면들이 모이면 관객이 작품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관객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벤허는 매 순간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을 하지만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진 못해요. 성록 씨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어요? 아니면 운명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고른다면…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저는 운이 좋았어요. 데뷔 초에 제가 가진 재능에 비해 과분한 무대에 계속 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 때문이었어요. 제가 한 인터뷰에서 “매 순간이 위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그래요. 매 순간 평가받기 때문에 항상 최고를 보여줘야 다음이라는 기회가 생겨요. 배우라면 누구나 최선을 다하죠. 진심이 아닌 배우도 없고요. 하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는 얼마 되지 않아요. 지금도 저는 남보다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20년 넘게 배우 생활을 이어오고 있으니 운이 작용했다고 설명할 수밖에요. 그 운이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운명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실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본인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자연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어요. 데뷔 당시에는 남들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자꾸 무대에 서게 되는데, 계속 부족한 모습만 보여줄 수 없잖아요.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점점 실력을 키워나갔죠. 한참 뒤에 사람들은 뭘 믿고 나한테 기회를 주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그나마 제 장점이라고 할만한 게 인물에 대한 ‘마음’이더라고요. (마음이요?) 이 마음이라는 걸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 어려운데… 비슷한 말을 찾아본다면 ‘공감력’ 정도가 될 것 같아요. 배우가 먼저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면 오로지 기술적으로만 연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관객이 감동하기 어렵죠. 부족하지만 인물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마음이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괴롭잖아요. 쉽게 포기도 안 되고 계속해서 나아가기도 어렵고요.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어요?
이십 대 초반에는 재능도 없는 내가 노래 천재, 연기 천재들에 둘러싸여서 왜 이렇게 고통받고 있나 싶었죠. 어린 나이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데 마음만큼 실력이 안 따라주니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너무 괴로워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고요. 그러다가 삼십 대가 되기 직전에 남과 비교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남들보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게 태어난 걸 어떻게 바꿀 수 있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죠. 백날 남과 비교해도 달라지는 건 없고 괴롭기만 할 뿐이니 나에게만 집중하자. 남들이 인정해 주는 만큼 기쁘고 감사하게 일하면 되고 부족한 부분은 열심히 노력해서 채우자. 그렇게 생각을 바꿨죠. 만약 그때 제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재능 없는 실패자’라고 생각했다면 배우를 포기했을 거예요. 다행히 나 자신에게 만족하기로 하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 게 배우 생활의 전환점이 됐어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인 후 좀 더 즐겁게 배우의 길을 걷고 있나요?
그럼요. 하지만 매일 불안해요. 연습하는 매 순간도 불안하고요. 왜냐하면 여전히 잘하고 싶은데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불안과 20년을 함께했어요.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예전처럼 속수무책으로 괴롭지는 않아요.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제 할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하죠.
벌써 21년 차 배우예요. 이삼십 대는 배우로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배우 신성록의 색을 찾았나요?
저만의 색을 찾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지금까지 꽤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신성록 하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언급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드라마가 종영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죠. 그런 걸 보면 신성록이란 배우의 색은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나를 알린 작품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처럼 그래왔던 것처럼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지만 저만의 색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저만의 색은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찾아봤으니 이제 그만 찾아도 될 것 같아요. (웃음)
앞으로도 배우로서의 여정은 계속 이어질 텐데 이제는 어떤 목표를 향해 걸어갈 생각이에요?
지금처럼 꾸준히 배우 생활을 하고 싶어요. 얼마 전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러 갔어요. 신구 선생님이 출연하셨는데 너무 멋지셨어요. 제가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처럼 오래 무대에 서고 싶어요. 배우는 뭐니 뭐니 해도 무대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거든요. 지금 제가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는 건 운도 운이지만, 그동안 성실하게 무대에 올라서 관객에게 믿음과 즐거움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관객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그래야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요. 요즘 저의 고민은 그거 하나예요. 어떻게 하면 무대에 오래 설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누구보다 쉴 틈 없이 무대에 서고 있는데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저도 나이를 먹어가는데 늘 같은 자리에만 머물 순 없죠. 나이가 들수록 자연히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한계가 분명히 생길 거예요. 또 20대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40대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50대엔 뭘 할 수 있을까, 60대는 어떻게 될까 상상도 하고 고민도 하죠. 그런 상상도 해봐요. 나중에 신구 선생님 나이가 됐을 때 후배들이 “선배님! 이번에 함께 무대에 서시죠!” 하고 연락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 살아갈 수 있다면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8호 2023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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