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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베토벤> 고독한 예술가가 남긴 편지 [No.221]

글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 2023-03-09 691

<베토벤>
고독한 예술가가 남긴 편지

 

 

57년의 생애 동안 베토벤은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장엄한 교향곡과 미사곡, 서정적인 소나타와 소품들까지.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음악만이 아니다. 베토벤이 죽은 뒤 그의 서랍에서 발견된 편지 한 통은 수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또 다른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전 세계 유명 공연장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왜 항상 이 곡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피날레를 장식하는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확실히 “웅장하고 아름답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정서적 희열을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합창 부분은 인간과 인생을 무한히 긍정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합창’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였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 그런 극심한 고통과 절망의 심연 속에서 이런 걸작을 완성해 낸 베토벤의 위대한 정신과 의지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전기물 『베토벤의 생애』 서문에서 “영웅이란 오랜 세월의 초인적 분투와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용기와 위안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으로,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야말로 영웅 대열의 맨 앞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이라 썼는데, 베토벤의 외롭고 고된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롤랑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역경 속에 꽃피운 예술
 
베토벤의 생애는 그 자체로 가혹한 운명에 맞선 한 인간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1770년 12월 16일, 독일 본의 초라한 다락방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아들을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포장해 돈을 벌고자 했던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을 방에 가두고 죽도록 연습시켰고, 실제보다 나이를 어리게 속여 연주회에 끌고 다녔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베토벤은 화려한 기교로 청중을 사로잡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깊은 좌절을 겪으며 성장해 갔다. 자칫 음악 자체에 흥미를 잃을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베토벤은 고된 훈련 속에서 단단하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갔고 스물두 살에는 고향을 떠나 음악의 수도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했다. 이후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차근차근 명성을 쌓은 베토벤은 수많은 귀족 후원자와 애호가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동시에 그는 자기 이름을 더욱 드높이는 수많은 명작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시련은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한창 작곡에 매진하던 서른 살쯤부터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베토벤 자신도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한동안 음악을 포기하고 유서를 쓰는 등 잔인한 자신의 운명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운명을 딛고 일어나 생의 후반부에 더욱 깊고 웅혼한 정신을 담은 걸작들을 남겼다. 베토벤은 분명 천재적인 작곡가였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히 천재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삶 속에서 탄생했기에 인간적인 감동과 위대한 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수수께끼의 편지를 둘러싼 추측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 베토벤은 여러 여인과 내밀하고 깊은 관계를 이어가며 따뜻한 위안과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생전에 여러 곡을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헌정했다. 그가 죽은 뒤에는 수신자를 밝히지 않은 그의 친필 연서가 서랍에서 발견되면서 수많은 음악학자, 음악 애호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가 온 마음과 영혼을 바쳐 사랑한 일명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이 편지는 받는 이의 이름이나 주소가 없이 봉인되어 있어 미스터리로 남았고, 그동안 이 편지의 수신인이 누군지에 대한 온갖 추측과 상상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져 왔다. 그 유명한 ‘월광 소나타’의 피헌정자인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설도 있고, 베토벤이 오랜 세월 깊은 관계를 이어나갔던 테레제와 요제피네 자매 중 한 명이라는 의견도 유력한 학설로 인정받아 왔다. 미국의 베토벤 연구가 메이너드 솔로몬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과 증거를 통해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상인의 아내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안토니 브렌타노가 편지의 수신자라는 새로운 의견을 냈다. 이 밖에도 그의 소울메이트로 손꼽히는 안나 마리 폰 에르되디와 ‘엘리제를 위하여’의 피헌정자인 테레제 말파티 등 강력한 후보들이 여럿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버나드 로즈 감독은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의 친동생 카스파르의 부인 조안나를 숨겨진 연인으로 상정해 격정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으며,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카핑 베토벤>에서 안나 홀츠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말년의 베토벤이 느낀 감정을 새롭게 조명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처럼 베토벤의 숨겨진 연애사에 열광하고, 온갖 상상을 다 동원해 그의 옆에 운명의 연인을 앉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론 까칠하기로 유명한 작곡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새롭게 그의 예술을 해석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한평생 가혹한 시련 속에 투쟁해 온 고독한 예술가의 안쓰러운 삶에 작은 위안이 존재했음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가설 속 인물들은 여전히 하나의 후보일 뿐, 정확하게 누가 ‘불멸의 연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가 베토벤의 고독한 삶과 영혼을 보듬어준 소중한 인연들이었고, 또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에 영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준 예술적 뮤즈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들 모두가 베토벤이란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킨 ‘불멸의 연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베토벤의 생애』 로맹 롤랑 저, 임희근 역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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