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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ESSAY] 창작 파트너의 사적인 편지 [No.208]

글 |한정석(극작가)·이선영(작곡가) 사진 | 2022-08-24 621

창작 파트너의

사적인 편지

 

친애하는 이선영 작곡가님께


오랜만에 작곡가님께 존댓말을 써 봅니다. 2008년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 동기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13년이 지났네요. 데뷔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파트너로 일하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막역한 사이가 되었어요. 할 말, 못할 말, 구분 못 하고 다 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요. 그래서 이번 편지만큼은 서로 존댓말을 써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정중하게, 좀 더 거리감을 갖고. 그래야 다른 이에게 보여도 괜찮을, 그럴듯한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요? 또한 항상 전화로 이야기하던 우리가 활자를 주고받게 된 이 상황에서 오는 쑥스러움을 견디는 데도 존댓말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 전 작곡가님은 본인 SNS에 음표들로 빼곡한 악보 사진과 함께 3월에 올라갈 우리의 신작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의 음악을 완성했다는 글을 게시하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많은 지인들이 열띤 응원과 축하를 해 주었고요. 그 뜨거운 반응에 작곡가님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데…” 하며 살짝 민망해하셨죠. 저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구경하며 “와! 누가 보면 너 올림픽 나가는 줄…” 하며 놀려 댔고요. 


작곡가님은 그런 제 빈정거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깔깔거리며 그 말을 댓글로 달라고 권유하셨지만 전 그러지 않았어요. 악플러처럼 보이기 싫은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밝디밝은 댓글 행렬에 끼기에는 제 마음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공연이 올라가는 것에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작품이 잘 나올까?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생길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대체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잠잠해질까? 아직은 알 수 없고,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만듭니다. 이 불안을 잘 다루는 것 역시 창작자의 일 중에 하나란 것을 알지만, 이번에는 유독 버거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너무 오랜만에 올라가는 신작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작곡가님은 어떠신가요? 작곡을 마친 후 어떤 마음으로 연습을 기다리고 계시나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계획과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시기에 걱정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여쭤봅니다. 


2021. 12. 5. 정석 드림

 

*

 

참 오래도 묵은 한정석 작가님께


한정석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이 제안해 주신 대로 존댓말을 쓰려니 거참 쑥스럽기도 하면서 나름 재미가 있네요. 작가님과 제가 13년이나 되었다니, 참 오래된 인연이구나 싶어 놀라움에 ‘참 오래도 묵은’이라는 말을 붙여 보았는데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작가님은 대본 외에 프로그램 북 글이나 사적인 글쓰기를 정말 어려워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용케도 며칠 만에 첫 편지를 완성해 보내셨네요. 혹시나 이 편지를 몇 달 동안 부여잡고 계시면 연재를 못할 텐데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스르르 내려갑니다. 저야 작곡가이니 글을 잘 쓰지 못해도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겠지만 작가님은 직업이 작가라 저보다 더한 부담감을 안고 쓰셨겠죠. (부담을 더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얼마 전 SNS에 ‘음표들로 빼곡한 악보’ 사진을 올렸는데(음표가 빼곡하게 보이게 찍기 위해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제 멘트는 ‘음악을 완성했다’가 아니라 ‘쓰긴 다 썼다’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노는 사진만 올려서 제 지인들이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까먹을까 봐 올린 것도 있지만, 1차 작업을 마친 저를 스스로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정동극장 SNS에 올라온 저희 신작 소식을 보며 소름이 끼쳤습니다. 간단한 시놉시스와 함께 올라온 그 홍보 사진을 보니 작품이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오천 개가 넘게 남아 있는데, 그 간극에서 오는 소름에 지인들의 축하 댓글이 더 기름을 부었습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저는 이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는 꽤나 루틴을 잘 지키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안은 저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면과 최근 쇼핑 목록이 저의 불안이 얼마나 큰지 잘 얘기해 주는 듯합니다. 


작곡을 마친 후 어떤 마음으로 연습을 기다리고 있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사실 정리할 악보들과 편곡 계획에 아직까진 정신이 없습니다. 아마도 연습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그럴 듯합니다. 작곡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많이도 왔다 갔다 했는데, 어느 날은 제가 쓴 곡이 봐 줄 만하다고 생각되다가도 바로 다음 날엔 재활용도 안 되는 일반 쓰레기처럼 느껴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습니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대부분 일반 쓰레기의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나는 이 과정을 이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찾진 못했지만 정석 작가님이 얼마 전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님은 멜론이나 냉면을 먹을 때 너무 맛있어서 스스로 그 음식이 되고 싶다고 하셨죠. 멜론이나 냉면이 되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계속 먹으면서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좀 당황스러운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곱씹으며 저 또한 정말 너무나 멋진 뮤지컬을 만났을 때 이 공연이 멈추지 않았으면, 이 음악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관객으로서 제가 느꼈던 행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행복을 주고 싶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님도 작업하시는 동안 만만치 않게 힘들어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작가님은 왜 뮤지컬을 하시나요? 질문을 던지며 편지를 마쳐 봅니다. 아, 오늘 차범석 희곡상 수상하신 것 너무나 축하드립니다. 제가 그토록 만류했지만 상금의 일부를 저에게 나눠 주겠다고 하신 작가님은 정말 훌륭한 작가입니다. 


2021. 12. 6. 축하를 보내며 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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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8호 2022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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