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 신동원 대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법
<오페라의 유령> 국내 초연 제작사였던 설앤컴퍼니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번 월드 투어의 공동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S&CO의 신동원 대표.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쿨 오브 락> 등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주요 작품을 모두 경험한 그에게 로이드 웨버의 명실상부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 성공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번 월드 투어는 2012년 내한 공연 이후 7년 만에 성사됐다. 언제 처음 공연 이야기가 나왔나. 지난 2014년 대구 내한 공연(2012년 내한 공연의 앙코르로 진행된 해당 공연은 대구에서만 공연됐다)을 성공리에 끝내고 언제 다시 공연하는 게 좋을지 공연 시장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어 공연과 영어 투어 공연을 번갈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시장 상황에 가장 적합한 프로덕션으로 결정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 제작사인 RUG(The Really Useful Group)와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2012년과 2014년 공연이 너무 잘됐다고 이듬해 곧바로 다시 하겠다고 해서 공연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서는 3~4년이란 공연 주기가 꽤 길게 느껴지지만,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곳이 아니라면 재공연 주기가 긴 편이다. 예를 들어 호주 같은 경우에는 약 10년에 한 번꼴로 길게 공연한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을 다시 서울에 올리기까지 7년이나 걸릴 줄 몰랐는데,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공연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와 조건을 협의하다 보니 관객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했다.
2001년 국내 초연 이후 여러 차례 공연을 성사시키면서 제작사로서 입지에 변화가 생겼을까. 물론이다. 과거에는 RUG에서 우리에게 공연이 가능한 시기를 알려줬다면, 이제는 우리가 거꾸로 희망하는 공연 시기를 제안하고 한국 공연뿐 아니라 전체 투어 일정에 대해 RUG와 의견을 나눈다. 한국 공연을 중심에 두고 그 전후에 다른 도시 투어 계획을 세운다. 물론 우리가 공연을 희망한다고 해서 투어 팀이 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투어 공연 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왜냐면 한국은 투어 국가 중에서 긴 공연 기간을 차지하는 공연 관람 인구가 많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중요한 클라이언트인 셈이다. <오페라의 유령>뿐 아니라, <캣츠>나 <스쿨 오브 락> 같은 다른 RUG 작품들의 월드 투어를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RUG 작품의 국내 공연권을 독점하고 있다시피 한데, 지난 20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양 사가 오랜 시간 서로에게 쌓아온 신뢰 아닐까 싶다. 우리가 공연을 올리면 RUG 고유의 작품 색깔을 유지하면서 흥행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란 신뢰 말이다. 현재 RUG는 자사의 한국 공연권에 대해 우리와 우선적으로 상의하고 있지만, 작품마다 시즌별로 새롭게 계약을 맺는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 월드 투어를 예로 들자면, 우리가 이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기간은 정확히 부산 공연이 시작하는 날부터 대구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다. 그 이후의 공연은 다시 새롭게 계약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한 다른 RUG 작품을 계속 국내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두터운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사실 공연계 커뮤니티는 어딜 가나 무척 좁아서 전 세계 프로듀서들끼리 서로서로 정보가 공유된다. 공연업에 종사하고 있는 프로듀서들의 신용도도 마찬가지다.
RUG가 공연 파트너를 찾을 때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나. RUG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지닌 고유한 예술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회사에 공연권을 줄 때 그 예술성을 훼손하지 않을 만한 곳인지 무척 까다롭게 본다. 누군가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고 싶어서 RUG에 아무리 비싼 돈을 부르더라도 프로듀싱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공연권을 얻을 수 없다. 초연 당시 공연으로서 완벽했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페라의 유령>의 롱런 비결 중 하나라 이러한 오리지널리티를 훼손하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수익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공연을 하다 보면 수익을 못 내는 시즌도 있기 마련이지만, 오리지널 제작사에 최선을 다해 약속한 바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다 결국 우리의 ‘크레디트’가 된다. 비단 RUG뿐만 아니라, <라이온 킹>이나 <위키드>의 제작사 역시 이러한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뿐 만 아니라 행사 때도 RUG에서 지정한 음악감독이 지휘를 맡아야 한다고 들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많은 뮤지컬 가운데서도 워낙 세계적 반열에 오른 인기작이다 보니, 이 작품에 대한 RUG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은 전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는데, 그 단적인 예가 공연하려면 반드시 RUG에서 제작한 무대 세트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공연한 RUG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오페라의 유령>만 국내에서 무대 세트를 못 만들었다. 마리아 비욘슨의 오리지널 디자인대로 무대 세트를 만들 수 있지만, 작품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원제작사의 방침을 존중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페라의 유령>은 오리지널리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초연 당시 공연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쏟는다. 어느 정도냐면, 초연 때 크리스틴의 드레스를 만드셨던 분이 최근까지도 직접 만들고 계신다. 우리나라였으면 더 빨리 만들 수 있는 젊은 사람에게 맡기거나 공장에서 수십 개씩 찍어내지 않았을까.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열 명이 하던 일을 두 명이 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오페라의 유령> 장수 비결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내 제작사로서는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자부심을 느끼나. 흔히 국내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 <오페라의 유령>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나. 확실히 <오페라의 유령> 공연 전후로 뮤지컬 업종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데,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바로 이 점이 국내 시장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면, <오페라의 유령> 초연 이전에는 각 파트별 역할이 세세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는 스태프들의 호칭도 전부 다 감독이었다. 그런데 한국 초연을 성사시킨 설앤컴퍼니의 설도윤 대표가 해외의 선진 공연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해외 스태프와 국내 스태프를 일대일로 매치해 작품을 준비했다. 그때 일종의 직업 트레이닝을 받았던 스태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최고 실력자 자리에 올라 현재 공연계에서 활약 중이다. 그 외에 2009년 한국어 버전으로 1년짜리 장기 프로덕션을 꾸려서 가격 탄력제 같은 다양한 시도를 했던 점이나, 국내 공연 시장에서는 드물게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세 달 가까이 장기 공연을 올렸던 것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번 월드 투어는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 역사 최초로 서울과 대구, 부산 세 개 도시 공연을 진행하게 됐는데, 이는 공동 프로듀서인 설도권 대표(클립서비스·드림씨어터 대표)의 숙원 사업이나 다름없는 국내 공연 시장의 확장과 지역 공연의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이뤄진 일이다.
200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내한 공연부터 이 작품과 인연을 맺은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여러 시즌을 거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 2001년 한국어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음 시즌을 어떻게 꾸릴까 고민하던 중에 해외 투어 공연을 시도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유령 역을 맡았던 브래드 리틀은 출중한 외모와 실력으로 공연 전부터 조금씩 이슈가 됐는데, 공연이 시작되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공연이 끝나면 브래드 리틀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대기 행렬이 예술의전당 지하 출연자 출입구에서 1층 극장 문밖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인원에게 사인을 일일이 해주려면 거의 한 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00회 공연 동안 매일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한 공연 배우가 이만큼 큰 사랑을 받았던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뮤지컬 팬덤이 형성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았을까.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데, 앞으로 이 작품이 한국 공연 시장에서 또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오페라의 유령>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두말 할 것 없이 음악의 힘이 절대적이라 생각한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둘 다 초연된 지 30년이 지났다 보니, 이제는 뮤지컬 넘버들이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클래식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한 편의 작품을 넘어서 한 시대를 회상하는 상징적인 작품이 됐달까. 전 세계 뮤지컬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인 만큼 국내에서도 뮤지컬 시장을 개척하는 데 많은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 관객층 저변을 넓히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은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2001년 초연 당시처럼 한국 공연을 꾸려보고 싶다. 극 중 크리스틴처럼 그동안 실력은 있었지만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했던 숨은 진주 같은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 발굴해내고 싶은 것이다. 브랜드 가치를 지닌 작품을 실력 있는 배우들과 좋은 퀄리티로 선보인다면 분명 관객에게도 사랑을 받을 거란 믿음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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