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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빅 피쉬> 박호산·김성철, 현실보다 진실한 상상 [No.194]

글 |안세영 사진 |황혜정 2019-11-29 9,734

<빅 피쉬> 박호산·김성철
현실보다 진실한 상상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카이스트’와 ‘법자’로 사랑받았던 박호산과 김성철. 이들이 오랜만에 돌아온 뮤지컬 무대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다시 만난다. 12월 국내 초연을 앞둔 <빅 피쉬>는 낭만적인 허풍쟁이 에드워드와 그런 아버지로부터 진실을 듣고 싶어 하는 아들 윌의 이야기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환상적인 여정을 앞둔 두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시 무대로

 

두 분이 처음 만난 건 언제인가요? 

박호산_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출연하기 전부터 성철이에 대해 알고는 있었어요. 정확히 언제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로 배우들 서로 다 알고 지내잖아요. 

김성철_ 저는 기억해요.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명동로망스> 낭독 공연을 했을 때 제가 박인환 역을 맡았는데, 다음 해 정식 공연에서 선배님이 이중섭 역을 맡으셨거든요. 그때 공연을 보고 뒤풀이 자리에서 인사드렸죠.  

박호산_ 아, 기억난다. 박인환은 이렇게 잘생긴 친구가 할 역할이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워낙 많은 연극·뮤지컬배우들이 출연해서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고 들었어요. 

박호산_ 누가 캐스팅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첫 리딩에 갔는데 무슨 대학로 공연 리딩에 간 것 마냥 아는 얼굴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솔직히 큰일났다 생각했죠. 대학로 배우들을 감빵에 모아 놓고 드라마를 찍겠다고? 이게 잘되겠어? 근데 잘되더라고요. 

김성철_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제 첫 드라마였는데 전부터 무대에서 봐왔던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의지가 됐어요. 돌이켜보면 여태까지 촬영한 작품 중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제일 수월했어요. 

박호산_ 드라마 촬영 현장 같지 않았어요. 매일 연습실 가는 기분으로 감빵에 가서 배우들하고 어울려 놀다 보면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게 촬영이 끝났다고 할 때가 많았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면서 무대에서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해소되는 걸 느낀 적이 있어요?

박호산_ 반대예요. 무대에서는 두어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고 공연이 흘러가잖아요. 방송은 장면별로 끊어서 촬영하고, 같은 장면도 다양한 각도로 여러 번 촬영하니까 연기가 감질나요. 진수성찬 차려놓고 티스푼 주는 느낌이에요. 

김성철_ 무대 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쭉 달려가는 장거리 마라톤이라면, 영화나 드라마 연기는 단거리 달리기를 연달아 하는 느낌이에요. 또 무대에 설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인 내가 이 공연을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인데,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연기하면 부담스럽더라고요. 초반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박호산_ 영상 매체의 장점은 내 연기를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거죠. 난 내가 한 연기 보는 게 그렇게 재밌더라고. 

김성철_ 저는 민망해서 못 보겠어요.
 

김성철 씨는 2년 만에 무대에 서는 거고, 박호산 씨도 연극이 아닌 뮤지컬에 참여하는 건 오랜만이잖아요. <빅 피쉬>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박호산_ 방송 활동을 하면서 2년간 무대와 멀어졌다가 지난 4월 <인형의 집 part.2>로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연극을 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무대에 또 서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빅 피쉬>를 만났죠. 타이밍이 잘 맞았고 작품도 좋아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라이선스 뮤지컬이지만 대본과 음악만 사온 작품이라 사실상 창작뮤지컬처럼 작업하고 있어요. 연출가 스캇 슈왈츠가 심리적 디테일을 중요시해서 정극처럼 연습이 이뤄지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올해를 공연으로 마무리하면서 새롭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성철_ 저도 시기가 잘 맞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올해 하반기에는 다른 활동을 쉬면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거든요. <빅 피쉬>는 동명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윌 역할에도 관심이 갔어요. 그동안 캐릭터가 강한 연기를 추구해 왔는데. 작년부터 일상적이고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주인공 남동생 역할로 출연한 것도 그래서예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동생인데 그런 역할이 더 연기하기 어렵더라고요. 민낯으로 나서는 느낌이랄까. <빅 피쉬>의 윌도 심플하지만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라 끌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빅 피쉬> 하면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먼저 떠올릴 텐데, 뮤지컬만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박호산_ 영화에서는 나이 든 에드워드와 젊은 에드워드를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데, 뮤지컬은 한 배우가 다 소화하니까 이질감이 없을 거예요. 윌의 시점에서 아버지의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과거 장면의 에드워드도 현재 윌이 알고 있는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또 영화를 봤을 땐 기괴한 이미지가 뇌리에 박혔는데 뮤지컬은 훌륭한 스토리텔링에 초점이 맞춰져요. 아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후반부 장면이 아주 울컥해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도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예요. 

김성철_ 연출님 말씀에 따르면 뮤지컬은 영화보다 원작 소설에 가깝다고 해요. 탄탄한 스토리에 음악의 힘이 더해져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저희 작품 노래가 진짜 좋거든요. 특히 윌의 노래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그야말로 뮤지컬 넘버다워요. 

박호산_ 윌의 노래가 멋있는 반주로 시작해 끝나면 박수가 터져 나올 수 있는 그런 종류라면, 에드워드의 노래는 그의 허풍처럼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스타일이에요. 마지막 곡에서도 ‘끝은 감동~ 결국 사랑~ 이야기란 게 다 그렇잖아! 얘기 끝!’ 하면서 끝까지 너스렐 떤다니까요. 에드워드가 연기하기 까다로운 게 주책맞으면서도 감동을 줘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대극장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묵직한 주인공하고는 꽤 다르죠.

 



연기는 표현이 아닌 이해

 

에드워드는 왜 자기 인생을 환상 동화처럼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걸까요?

박호산_ 에드워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직업이 세일즈맨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물건을 팔려면 입담이 좋아야 할 테니까요. 아들 윌에게 허풍스런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비전을 갖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거예요. 에드워드가 자기를 과시하려고 허풍을 떠는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면 정작 자기의 어마어마한 업적은 빼놓고 이야기해서 나중에 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거든요. 에드워드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또 느끼는 바가 있게 만들잖아요. 그런 게 예술이죠. 
 

에드워드의 허풍을 싫어하던 윌은 왜 마지막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나요?

김성철_ 제 생각에 에드워드는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인데 여건상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 속에서 영웅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윌로서는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대단한 척을 하는 게 어리석게 느껴졌겠죠.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게 되자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실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자신도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인데, 거짓말쟁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신이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거든요. 그렇게 아버지의 발자취를 쫓다가 깨닫죠. 아버지의 삶에 대한 열정은 진실로 위대한 것이었고, 그가 들려준 허풍스런 이야기에는 아들이 더 큰 꿈을 꾸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걸요. 그래서 나중에는 윌도 자기 아들에게 에드워드 같은 아버지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어요.
 

에드워드는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이 길고,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해야 해서 배우에게는 부담이 클 것 같아요. 

박호산_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안 해본 역할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다만 소화해야 할 노래와 춤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더라고요. 1막 첫 곡인 ‘Be the Hero’ 하나만 끝내도 호흡이 가쁘고 온몸에 알이 배겨요. 근데 안무가 좋아서 힘든 내색을 못하겠어요. 홍유선 안무가랑은 <명동로망스>, <금강, 1894> 때도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데 안무로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요. 우리 앙상블도 실력이 대단해요. 함께하는 장면에서 제가 힘을 팍팍 받아요.
 

김성철 씨는 그동안 무대에서 주로 소년 같은 역할을 해왔잖아요. 윌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성인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김성철_ 일부러 소년 역할을 많이 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런 역할을 자주 맡겨주시더라고요. 영화 <장사리>에서도 10대 학도병을 연기했거든요. 내년이면 저도 서른인데 삼십 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십 대 역할을 더 맡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윌은 극 중 나이가 스물아홉 살로 실제 저랑 동갑이에요. 그래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지금까지 연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소년 역할은 대개 자기 감정을 순수하게 표출하기 때문에 연기하면서 저도 같이 감정이 해소되곤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좀 더 절제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호산_ 어린 역할 맡겨줄 때가 좋은 거야. 즐겨!
 

낭만적인 에드워드와 현실적인 윌 중에 실제 성격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박호산_ 전 성격이 그때그때 맡은 배역을 따라가요. 제가 악역 받아오면 가족들이 딱 알아요. 그래서 에드워드처럼 착한 역할 맡는 걸 좋아해요. 

김성철_ 저도 항상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가까이 있으려고 노력해요. 공연을 할 때는 특히 더요. 순간적으로 역할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그때그때 벌어지는 무대 위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가 없거든요. 제 마음이 캐릭터와 늘 가까이 있어야 누가 뭘 던져도 다 받아낼 수 있어요. 

박호산_ 어렸을 때는 집중의 힘을 믿었는데, 결국에는 제일 깨지기 쉬운 게 집중이더라고요. 이제는 그냥 ‘상태’를 믿어요. 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믿기만 해도 저절로 인물이 발현되거든요. 내 안에 그 인물을 담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화선지처럼 번져 나가는데, 억지로 표현하려고 하면 못난 연기가 돼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불안감을 떨쳐내야 그때부터 자유로워지죠. 가끔 내가 무대에서 뭘 하고 나온 건지 잘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때가 진짜 잘한 거예요. 공연이 알아서 막 흘러간다니까요.  

김성철_ 맞아요. 그럴 때 기분이 째지죠. 
 

올해로 김성철 씨는 데뷔 6년 차, 박호산 씨는 24년 차를 맞았어요. 박호산 씨는 6년 차일 때와 지금의 자신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반대로 김성철 씨는 24년 차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이길 기대해요?

박호산_ 20대 때는 지금보다 더 고집스러웠어요. 정의, 의리에 집착하고 그걸 잣대로 남을 평가하거나 마음 아프게 한 적도 많았죠. 지금도 고집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무조건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걸 배웠어요. 사실 연기란 것도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거거든요.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거예요.

김성철_ 선배님 말씀에 공감해요. 연기라는 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 경험이 쌓이고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자연스레 연기 폭도 넓어질 거라 생각해요. 요새는 어떻게 해야 연기를 잘할까보다 어떻게 이 순간을 잘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아직은 제가 살면서 더 느껴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배우에게는 살아가는 일이 곧 배움이지 않을까요? 스물아홉 살의 저는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4호 2019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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