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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정명은 [NO.84]

글 |박병성 사진 |김호근 2010-09-13 5,554


천천히 오래 춤추는 페기 소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페기 소여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신데렐라의 대명사이다. 배역도 없는 그저 몇 번 아가씨 정도의 캐릭터인 앙상블 페기 소여가 하루아침에 디바로 성장한다.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신데렐라는 세 명. 최성희(바다), 방진의, 정명은이다. 모두 주역급 배역을 맡아온 배우들이지만 정명은의 경우 대형 뮤지컬에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연을 맡게 된 것은 처음이다. 스타 탄생을 기대하며 도산공원 근처 카페에서 이번 캐스팅의 진정한 페기 소여 정명은을 만났다.

 

 

정명은은 요즘 탭댄스의 매력에 폭 빠져있다. 위대한 안무가 고어 챔피언이 자신의 목숨과도 바꾼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탭댄스가 작품의 심장인 공연이다. 그중에서 페기 소여는 그냥 탭댄스를 잘 추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라도 놀랄 정도의 월등한 탭댄스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명은은 이전에 플라멩코도 배우고 서울예술단에 있을 때 한국무용, 발레, 재즈댄스 등 안 배운 것이 없는지라 전혀 몸치는 아니지만 춤에 특별히 강점이 있지는 않다. 우여곡절 끝에 페기 소여 역으로 캐스팅이 되고 나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전 지난 3개월 동안 무서울 정도로 탭댄스를 연습했다. 매일 낮 1시부터 5시까지 기본 탭 트레이닝을 받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남아서 연습을 했다. 연기나 노래를 하지 않고 오직 또각거리는 탭댄스만 연습하다보니 내가 정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탭댄스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든 발로 정확한 리듬을 만들어내야 하거든요. 그 음들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해낼 때 기분이 좋아요.” 탭댄스는 상체와 상관없이 하체는 정확한 리듬과 박자를 유지해야 한다. 일종의 발로 하는 음악인 셈이다. 발이 정확해지면 상체도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게 된다며 그녀는 춤을 추는 듯 달뜬 표정을 짓는다.


정명은이 탭댄스 애찬론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지독한 연습 벌레이고 노력파라는 이야기를 듣고 온지라 그동안의 노력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 싸이 홈페이지에 실린 글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자고 일어나면 그날 배운 동작을 잊을 것만 같아서 잠이 오지 않던 날도 많았지만, 돼지 저금통에 동전이 쌓여가듯 하나하나 기억해주는 내 몸이 너무나 고맙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싶어도 다리와 발바닥이 너무 아프고 체력도 바닥이 나서 몇 시간밖에 할 수 없는 탭 트레이닝…” 그녀는 이렇게 육체가 지쳐갈 때면 가만히 누워 자신과의 싸움을 지켜본다.


서울예술단 단원에 선발되면서 뮤지컬 배우의 길로 들어선 정명은은 예술단 시절부터 연습 벌레로 유명했다. 예고를 나오고 연극영화를 전공했지만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연습을 하곤 했다.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하다 보니 성대결절이 생겨 한동안 노래를 부를 때면 쉰 목소리가 나곤 했다. 이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은 안정된 노래 실력으로 심지어 성악을 전공했냐는 소리까지 듣는데도 자신의 노래 실력에 자신이 없다.


정명은이 지독할 정도로 성실하게 연습하는 성격을 지니게 한 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버린 자신감 결여 때문이다.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세 배 네 배 연습을 해야만 했다. 이런 그녀를 보고 선배들은 좀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연습하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 타박이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뮤지컬 배우 6년 차에 접어든 그녀는 이제 선배들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한다. 그래도 그 당시 어리석을 정도로 연습만 하던 자신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선배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지금의 정명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여전히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배우이다. 조금은 자유로워졌지만 아직 자신 있게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안정된 기량을 보이는 편이다. 그녀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껍질, 그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연습으로 몰아붙이는 자의식을 극복하는 날 정명은은 유리 구두가 없어도 페기 소여가 되어 신데렐라로 등극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페기 소여처럼 갑작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정명은이 걸어왔고 그녀가 추구한 것이 반짝이는 재능을 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생각해본 적 없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노력하면서 조금 조금씩 달라지는 저를 응원해주면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한 작품 한 작품을 해오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나 시련이 한순간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시련들을 이겨낸 감격이 뭉텅이로 가슴에 던져졌을 것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못할 것이라고 했던 일들을 부단한 연습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내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조금씩 발전하는 정명은은 어쩌면 깨어보니 스타가 되어 있는 페기 소여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배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페기 소여를 누구보다 충실하게 잘해낼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발전들이 언젠가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을 기대한다. 그녀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적어도 페기 소여와 같은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그녀에게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웃을 수 있고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이제 웃을 수는 있는 거 같은데 아직 웃음을 나눠주는 것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되겠죠.”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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