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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스위니 토드> 전미도 [No.155]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6-08-11 10,229

가식 없는 솔직함


러빗 부인 역에 전미도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가 컸다. 청순한 웃음을 짓다가도 시퍼런 식칼을 아무렇지 않게 들이댈 것 같은 인물이 바로 러빗 부인이다. 전미도는 날라리와 범생이, 공주와 하녀, 레이디와 아줌마, 어떤 역을 맡겨도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라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담백하고 솔직한 매력을 발산하는 전미도를 석촌호수 변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순수와 엽기를 넘나드는 러빗 부인


러빗 부인은 여중생 같은 순수함과, 사이코패스 같은 잔혹함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이다.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준 사람은 처음이다. 러빗 부인을 하게 됐다고 하면 일단 한 호흡 쉬고 말을 아꼈다가 “잘하겠지” 하더라. 의아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러빗 부인을 연기해 온 분들이 중년이다 보니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다. 나 또한 두려웠다. 다양한 역할을 해보긴 했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았던 인물이고, 이 역할의 기존 이미지가 강한 데다, 외형적으로도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 몇 번 고사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은 아닌 것 같고, 10년 후에나 할 수 있는 역 같았다. 그러다가 영화도 찾아보고 다른 해외 프로덕션 영상도 봤는데, 거의 매 프로덕션에서 러빗의 캐릭터가 조금씩 다르더라. 프로덕션마다 새롭게 만들어내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구나, 그럼 해볼 만하다 싶었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중년이긴 하지만 극단적인 캐릭터를 오고가는 인물이다. 그런 점을 잘 소화해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출가가 캐릭터를 설명할 때 러빗은 토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힘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에 처한 여자다. 두 가지를 기본에 두고 보면 극단적으로 변하는 장면이 이해가 되더라. 아마도 이태리 이발사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다가, 위협을 했다면 그럴 수 있지 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장면을 말하는 것 같은데, 러빗은 토드를 사랑하니까 이발사를 죽였다는 말에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위협했다고 하자 생활에 절박한 그녀로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연기하지만, 관객들의 시선에서는 극단적으로 변해서 블랙 코미디처럼 여겨질 수 있다.



메피스토나, <썸걸즈>의 나쁜 여자 등 악역을 맡기도 했는데, 기존의 악역들과 러빗 부인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썸걸즈>의 캐릭터나 러빗 부인도 완전히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피스토를 제외하고 완전한 악한은 없다. 메피스토는 절대 악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의도를 숨기고 있다. 사람은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지만 메피스토는 사람이 아니니까 계속 악한 생각만 한다. 이 작품을 할 때 개인적으로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러빗 부인의 경우는 목적이 분명하다. 스위니 토드와 사랑을 이루고, 장사를 잘해서 먹고살아야 한다. 목적이 뚜렷하고 욕망이 강하다 보니까 자기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녀는 악한 행동인 줄도 모르고 일단 살기 위해 행동한다. 그래서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덕션은 시대적 배경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러빗 부인을 연기할 때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나.
특별히 시대적 배경을 신경 쓰지는 않지만, 계급적인 요소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러빗 부인은 밑바닥 계급의 사람이다. 윗사람들을 욕하면서도 그 앞에서는 굽신거릴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는 계급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계급 사회가 아니지만 빈부의 격차는 여전하다. 서민들은 여전히 살기 힘든 세상이다. 작품에서 하층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한탄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희망을 보여준다. 모든 살인이 끝난 현장에 안소니와 조안나가 들어오는데, 안소니는 조안나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준다. 그들의 사랑에서 희망을 찾는 것 같다.





손드하임과 만나다

손드하임은 뮤지컬 작곡가를 노래로 말하는 극작가라고 했다. 뮤지컬의 수준을 올려놓은 인물로 극찬을 하는데, 손드하임의 작품에 참여한 소감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손드하임은 쉼표 하나를 그냥 쓴 것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철저히 계산된 가사이고 노래이다. ‘Worst Pies In London’에 아무도 오지 않던 가게에 찾아온 손님의 반가움과, 어찌 대할지 몰라 허둥거림, 자신의 음식을 선뜻 내놓지 못하는 망설임, 음식을 먹고 나면 상대에 대한 멋쩍음, 민망함이 생기는데 그런 감정의 변화들을 음악 속에 다 담아 두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러빗 부인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바뀌어갈 때 재미를 느낀다. 그래서 손드하임의 작품은 관객들도 좋아하지만 연기하는 배우가 더 좋아한다.


손드하임은 배우의 연기까지도 음악으로 연출하는 작곡가로 유명하다. 특히 앞서 설명한 노래가 대표적인 예이다.
반죽을 하면서 “죽어라 탁!” 지나가는 벌레를 잡는 동작을 하도록 행동 지문을 악보에 써넣었다. 음을 붙인 것은 아닌데 그 대사와 행동을 하도록 지시해 놓았다.


그러면 배우는 그 장면에서 지시한 행동을 해야 한다. 배우로서는 자유롭지 않을 텐데.
그렇긴 하다. 그런데 리듬을 몸으로 타면서 하면 더 재밌어진다. 처음에 노래에다 행동까지 외워야 할 때는 힘들었다. 그런데 작곡가의 의도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 이외에도 손드하임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극 맨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이 지금까지 불렀던 노래가 다 등장한다. 두 사람의 감정이 상반된 상태에서 앞선 노래들을 교차하듯이 주고받는다. 스위니가 분명 화가 났는데 좋았던 시절의 노래를 부르는 게 굉장히 섬뜩하다. 이 노래는 ‘사실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변명을 하며 시작한다. 거짓말을 했는데 들켰다는 불안감과 나를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뒤섞인다. 그러다 놔버리고 시인을 한다. “그래, 내가 죽었다고 했다” 이때 박자가 확 바뀐다. 처음 연습할 때는 갑자기 박자가 변해서 이 부분이 잘 적응이 안 됐다. 그런데 드라마적으로 박자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소름이 돋더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노래도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았다.
이 작품은 대사에서 노래로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편했다. 노래 안에 상황이나 설명이나 인물의 정서를 너무 잘 담아두어서 그것만 따라가면 됐다. 연기를 하던 사람이다 보니까, 뮤지컬에서 대사를 하다가 노래로 이어질 때 대사 톤에서 노래로 연결하는 게 늘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다보니 좀 더 편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승우, 양준모 두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모두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친분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보통 두 달이나 한 달 반 정도 연습을 하고 공연에 들어간다. 한 달 반 동안 연습을 진행하는 것도 힘든데 처음 만난 파트너라면 연습 기간에 사적인 친밀감도 쌓아가야 한다. 심지어 나랑 코드가 잘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두 분은 오랫동안 같이 공연해 왔고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어서 그런 과정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워낙 대사나 가사 양이 많고 장면 전환도 많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템포도 굉장히 빨라서 숙달이 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치기 쉬운 공연이다. 숙달이 되도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출이 연습 속도를 굉장히 빠르게 뺐다. 보통은 장면을 이해하면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작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보통의 프로덕션에 비해 3배속은 됐을 것이다. 런스루도 많이 돌고, 연습량이 많다 보니까 연습 막바지에 이미 공연 수준이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파트너와 호흡이 더 잘 맞게 된 것 같다.




삶의 통찰에서 오는 웃음

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나?
이야기가 좋거나,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읽었을 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작품, 아니면 인물이 매력적이거나, 해보지 않았던 인물일 때 매력을 느낀다. 때로는 내가 새롭게 만들 수 있겠다고 욕심이 드는 캐릭터라면 선택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더라. 뮤지컬에서 주로 여리여리하고 예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는 달라서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 인터뷰에서 배우 인생의 목표가 코미디라고 말한 것을 봤다. 이 작품은 블랙 코미디이긴 하지만 어쨌든 코믹한 요소가 있는데, 어느 정도 그 소망이 해소된 건가?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한 건 진짜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코미디는 <스위니 토드>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이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코미디로 보일 때가 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이해가 없으면 하기 힘든 것이 블랙 코미디이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잖나. 생활에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씁쓸한 웃음, 그런 것을 연기하고 싶었다. 현실에 대한 통찰력에서 나온 연기. 그런 의미의 희극을 하고 싶었던 거다.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올 텐데, 그럼에도 종종 워크숍 무대에 선다. 의지가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인데, 꾸준히 워크숍 무대에 선다.
창작하는 게 좋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작가나 디자이너 같은 1차 창작자들의 작업이 끝난 이후에 배우들이 투입된다. 그런데 나는 작품 기획 단계에 작가나 디자이너가 하는 회의에 참여하고 싶다. 그 회의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내느냐에 따라 작품 방향이 달라지잖나.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워크숍 작품에 참여하다 보면 배우도 1차 창작자의 위치에 서게 될 때가 있다. 그런 게 재밌기도 하고, 최근에는 좋은 작품을 함께했던 창작자들의 워크숍은 참여하고 있다.



신인 창작자의 작품이고, 개발 단계인 작품이면 경험 많은 배우가 참여했을 때 작품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대단히 영향력이 있는 배우여서가 아니라, 그런 이유로 배우들이 워크숍 공연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 작품에 힘이 생기지 않을까. 좋은 해외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결국 자생력이 생겨야 더 길게 갈 수 있지 않나.


노래도 늘었지만 이전 작품들에 비해 연기도 훨씬 자유로워졌다. 편해 보였다고 할까.
하하.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면 그동안 예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불편했던 거다. 그런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성격은 러빗에 훨씬 가깝다. 지금은 내 성격대로 하는 거다. 내가 예쁜 여자 주인공을 맡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 전공 시절에는 아줌마나, 할머니, 주인공 주변에 있는 개성 있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러빗 부인처럼.


롤모델로 이정은 배우를 이야기하곤 했다.
아줌마나 할머니, 그런 인물들을 볼 때 좋다. 나랑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정은 선배가 그런 연기를 탁월하게 잘하니까, 연기를 볼 때 속이 시원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느낌이 든다.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너무 웃긴다. 내가 연기하고 싶은 경지다. 러빗에게 그런 면이 참 많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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