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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사랑,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의 사이,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No.117]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3-07-01 5,211

 

지금 브로드웨이는 티켓 전쟁, 말 그대로 ‘전쟁’ 중이다. 브로드웨이를 지난 10년간 꾸준히 다녔던 필자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신작이 기근이었던 작년과 달리 <모타운>, <마틸다>, <피핀> 같은 대작들이 한꺼번에 오픈하면서 현재 타임스퀘어 근처는 다시 발 디딜 틈이 없게 됐다. 특히 위 ‘빅3’ 뮤지컬의 몇 달분 티켓은 벌써 매진됐고, 당일 러시 티켓을 노려 새벽부터 줄을 서는 극성 팬들 때문에 표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 역시 여섯 번이나 헛걸음을 하면서 망연자실하던 그때, 요즘 오프브로드웨이를 뒤흔드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티켓은 구할 수 있을 거란 말에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게 됐다.
앞서 뮤지컬 티켓 전쟁에서의 모든 패배는 이 작품을 만나게 될 운명 같았다. 최근 10년간 브로드웨이에 올라온 거의 모든 작품과 그것들이 한국에 수입돼 만들어진 버전, 그리고 스티븐 손드하임, 멜 브룩스의 수작들까지 제치며 이 작품은 단숨에 ‘내 인생의 뮤지컬’에 등극했다. 이제껏 작품 하나에 완전히 매료되어 소위 ‘회전문 관객’이 된 적이 없었지만, 이 작품은 그 새로운 세계로 필자를 초대했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2002년 초연된 바 있지만, 이번 공연의 의미가 더 각별한 것은 작사, 작곡, 극본을 도맡은 천재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연출까지 해 ‘완전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박칼린의 연출로 몇 년 전 올라온 적이 있어 이미 본 사람도 있겠지만, 원작자가 연출한 작품은 역시 그 남다름에 주목하게 한다.

 

 

 

 

모던한 형식으로 재구성한 러브 스토리                              

이 작품은 남자 주인공 제이미와 여자 주인공 캐시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5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여느 사랑 이야기와는 달리 둘 사이의 알콩달콩한 케미스트리를 느끼게 해주거나, 다툼과 이별의 과정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 어떤 만남에도 생명이 있어 어느새 숨 거두려 하네’라는 김동률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의 절정이 있으면 그다음엔 이별을 향하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작품이다. 게다가 결혼이 결코 사랑의 완성형이 아니며, 오히려 사랑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잘 말해준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구성은 상당히 독특하다. 여자는 이별부터 만남까지의 과정을 역으로 보여주고, 남자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무대에 등장해 각자의 심경을 노래한다. 여자의 감정과 메이크업은 시간이 진행될수록 점점 가벼워지고, 허술했던 23살의 남자는 극이 진행될수록 성공 가도를 달리는 28살의 완벽한 남자가 되어간다. 이렇게 시간 차를 둔 사건들이 교대로 진행되면서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알게 한다. 이런 형식의 모던함은 단순한 소재를 세련되게 만들어준다. 그들의 이별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이런 구성을 통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사연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며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공연은 두 사람이 헤어진 후 28살의 캐시 혼자 집에 남아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제이미는 자기 갈 길을 갔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도 아프다’라는 내용의 노래를 한다. 한편 제이미는 5년 전 23살의 햇병아리 작가로 등장해 출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이별을 앞둔 캐시. 화해를 위해 제이미와 생일과 주말을 잘 보내려던 그녀의 노력은, 일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제이미의 일방적인 말로 물거품이 된다. 잘나가는 작가 제이미를 내조하기 위해 참고 또 참던 캐시는 마침내 그간의 울분을 터뜨린다.
제이미의 모든 커리어는 물 흐르듯 순조롭게 흘러가고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며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제이미는 캐시까지 만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았노라’ 외치는 풋풋하고 젊은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캐시는 반대로 언제나 오디션에 떨어지기 일쑤인, 빛을 보지 못한 배우다. 캐시는 늘 불안하지만, 압박감에 시달리는 제이미를 위해 웃어주고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늘 참는다. 비록 제이미가 시간이 없어 자기 공연을 보러 오지는 못했지만, 제이미의 책 맨 앞 장에 ‘캐시에게 감사한다’라고 쓰여있는 글귀를 보며, 자신 역시 그의 성공의 일부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애써 웃는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간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 제이미는 뱃놀이를 하며 캐시에게 청혼한다. “나에게 지금 너의 인생 10분을 온전히 나눠주지 않겠니? 하늘을 바라보고 물이 흘러가는 걸 보며 10분이 흘러가길 기다려. 그리고 난 너에게 또 다른 10분을 나누어줄 것을 부탁할 거야. 그렇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난 너와 나누고픈 게 너무 많아.” 영원히 그렇게 살자는 약속을 하며, 두 사람은 결혼한다. 이 대목은 전 장면을 통틀어 두 사람이 함께 소통하는 유일한 장면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사랑의 맹세에 극장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들려왔다. 이 장면의 넘버는 형식적으로도 완벽함과 기발함을 자랑한다. “저 박물관 들어가 본 적 있어? 공룡 좀 만나봐야지”라는 제이미의 노래는 청혼과 결혼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캐시의 시간으로 극이 전환되면서 “저거 박물관인가? 우리 공룡 보러 갈까?”라고 캐시가 노래하며 수미상관을 이룬다. 정혼 장면을 기점으로 시간이 완전히 대칭이 되는 연출이었다.
행복했던 결혼의 순간을 교차점으로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제이미는 안경을 끼기 시작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며 점점 더 바빠져 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아진다. 그러면서도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이해하니까, 우린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라고 되뇌인다. 앞서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웠던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매너리즘에 관객은 기가 막힌다. 사랑이란 감정의 덧없음이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느끼게 되는 이치랄까. 반면 오지 않는 제이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캐시는 마치 옛날의 지고지순한 여성상을 상징하듯, 올드 스타일의 재즈 왈츠 넘버를 부른다. 캐시는 제이미와 중요한 파티에 동행할 것을 거부하고, 제이미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깨닫지 못한다. 또 비서와 바람을 피우는 제이미는 캐시가 자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희생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초라한 심정이었는지는 전혀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찌질한 성공남의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둘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자꾸 엇갈리고 지쳐서 또는 상대가 자신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면서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소위 ‘성격 차이로 인한 결별’의 상황이 된다. 바라보는 곳이 너무 달라진 두 사람은 결국 갈라서고, 제이미는 반지를 놓고 ‘안녕’이란 말과 함께 집을 나간다. 한편 무대 반대편에선, 방금 막 데이트를 마치고 행복한 두근거림으로 ‘오늘은 이만 안녕’을 수줍게 노래하는 캐시가 있다.

 

 

                            

 

 

정공법의 예술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구성 방식이 상당히 독특하다. 일단 대사로 진행되는 부분 없이 90분 내내 계속 성스루로 흘러가는 순도 100% 뮤지컬이고, 또 남자와 여자가 함께 무대에서 만나는 부분은 딱 한 번밖에 없다. 사실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표현할 때 반드시 둘이 함께 행동하는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중요한 사항은 둘이 많은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어떻게, 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틀어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다른 사정과 속마음을 얘기하기에, 뮤지컬 노래처럼 좋은 형식은 없다. 답을 먼저 제시하고,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이유를 보여주는 방식.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인과 관계와 물음의 순서도 바뀌어간다.
등장인물은 남과 여, 딱 두 명이다. 재미와 빠른 진행을 위한 멀티맨도 없이 담백하다. 그리고 이 담백함이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이다. 관객들을 웃기려는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가볍게 흘러가지만 좋은 음악과 멋진 대본이 순조롭게 호응하는 정공법의 진실함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구성 면에서도 대본과 음악이 철저하게 서로를 받쳐주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아무리 드림 팀이라도 이 정도의 결합력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많은 블록버스터 작품들도 작사, 작곡, 대본, 연출의 균형에 어느 정도의 흠결은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흠결을 발견할 수 없는, 완벽한 힘의 조화가 이루어진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여자의 힘든 감정과 남자의 신나는 에너지가 교차되어 노래 구성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장르와 분위기가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에 계속 노래가 이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깔끔하고 심플한 연출, 풍부한 음악

이 작품은 필자에게 소·중극장 뮤지컬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뮤지컬의 본질을 보여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명의 배우를 기용하여 교대로 무대에 서게 했음에도 두 사람의 아우라가 한꺼번에 느껴지며 무대는 꽉 차버린다. 연출과 무대 역시 상징적이면서도 깔끔했다. 막이 오르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감을 상징하는 ‘문’이 무대에 놓인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배경으로는 많은 창문들이 있다. 작품 홍보 포스터에도 두 사람은 창문 안의 공간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밖에서 각자 바라보고 있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사진 속에 박제된 시간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는 남녀. 수많은 추억들을 상징하듯 많은 창문들이 배경으로 있다. 
음악적으로는 바이올린, 두 대의 첼로, 기타, 베이스, 피아노의 악기 구성이 기발했다. 첼로는 현이 길고 몸통이 커서 음역이 넓고, 배음이 많다. 따라서 풍성한 소리를 내면서도 베이스부터 중간 음역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기본 퀸텟 구성에서 비올라를 빼내고, 더 많은 이점을 취할 수 있는 첼로를 과감히 두 대나 쓴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음군 악기수를 고음군보다 많이 배치해, 따뜻하고 감성적인 사운드로 중극장을 가득 메우는 데 성공했다.
클래식과 재즈를 기반으로 록, 펑크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지휘자 겸 피아노 주자 덕에 음악이 빛났다. 드러머 없이 이 정도의 그루브를 내는 것은 최고의 연주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신시사이저도 없이 100%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고, 그 연주가 무대 배경에 노출되도록 구성한 세트 역시 좋았다. 어찌 보면 연강홀에서 공연했던 <넥스트 투 노멀>의 세트와 비슷한 컨셉의 디자인 같았는데, 이런 종류의 공연에는 역시 잘 어울린다.
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는 중간 중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브리지 부분에 바흐의 선율을 숨겨 놓았다.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부분은 특정 그루브가 느껴지는 장르의 음악을 써서 주인공들이 노래를 하고, 전환 시에는 클래식적인 요소들을 차용함으로써 중립적이고 깔끔한 분위기의 진행이 가능했다. 드럼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색채를 가진 사운드로 무리 없이 각 장르의 음악을 아우를 수 있었다. 보통 작곡가 같았으면 단순히 첼로 두 대 대신 비올라나 바이올린을 쓰고, 그루브감을 강하게 하기 위해 드럼을 넣었을 텐데, 브라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풍성함을 얻어낸 편곡과 악기 선택으로 정말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스토리로                                   

진지한 관계를 가져본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이 작품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경쟁 상대가 되는 존재. 상대가 잘되면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점점 자기와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게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아니던가? 상대는 바쁘고 잘나가는데 나는 백수고 만날 오디션 보는 신세면, 마냥 편한 마음으로 서포트해줄 수는 없는 게 사람이다. ‘집에서 안방마님 할 테니, 잘나가는 네가 앞장서 돈을 벌어와라’ 식의 편한 사고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이고, 그렇게 다 맞춰 사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작가이자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자신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사람은 ‘손드하임 이후 최고의 아메리칸 뮤지컬 작곡가’라는 언론의 수식어와 함께 이미 20대에 여러 가지 상을 받으며 유명해진 천재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이 업그레이드되면 될수록 보기가 어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직시할 때마다 엄청난 죄책감이나 후회에 사로잡혔을지 모른다. 실제로 어떤 부분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너무 닮아서 전 부인이 법적인 행동을 취하는 바람에 그 부분의 넘버를 바꾸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생동감 넘치고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직접 연출까지 하며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이 작품은 그에게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익숙해지면 그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소유물처럼 느끼게 된다. 사랑과 연애, 결혼을 하고 행복에 겨운 만큼 감정의 추락도 심하다.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는 진실을 깨닫는 건 쉽지 않다. 이런 건 꼭 아픈 경험을 통해야만 깨닫는 게 당연한 듯하다.
당연함을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간다. 연애나 인생도 이 작품처럼 당연한 사건들을 당연하지 않게 풀어야 지속될 수 있겠지 싶다. 다들 알면서 못하는 거겠지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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