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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요셉’보다 돋보인 ‘웨버 어메이징!’ [No.114]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사진제공 |라이브앤컴퍼니 2013-04-10 4,734

고전, ‘작품’과 ‘공연’ 사이

 

뮤지컬에도 고전이 있다. 제목만 들어도 관객이 고개를 끄덕이는 작품. 몇 년씩 재공연 돼도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작품.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관객과 만날 접점을 잃지 않는 작품 등등. 일반적으로 고전이란 시간의 검열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니만큼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과 더불어 당대와 소통할 수 있는 특수성,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다. 그러기에 고전은 가장 규범적인 동시에 가장 실험적일 수 있을 터. 문학이 됐든 연극이 됐든 고전작품이 끊임없는 현대적 변주의 재료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뮤지컬의 정체성에 상업성 이외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고전이란 새롭게 해석될 여지에 언제나 열려있을 뿐 아니라 언제나 변모할 수 있어야 하거늘, 뮤지컬에서 그런 류의 변화와 재해석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로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이선스 때문에도 텍스트는 고치기 힘들고, 대사 한 번 바꾸려면 노래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걸 누가 감당하누. 그리고 그렇게 하는 순간 그건 이미 ‘그 작품’이 아닌 것을. 

그렇다면 뮤지컬에서 고전이 재창조되는 기준은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뮤지컬이 대중적 장르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대중적 장르에서 창조하고자 했던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배우 그리고 관객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흥겨움 그 자체다. 텍스트는 고정되어 있지만 현장의 재미와 역동성이란 그때그때 다르다. 이렇게 매번 다른, 하지만 매번 사람을 들썩이게 하는 흥과 신명이야말로 대중적인 장르가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텍스트인 것이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원작이 품고 있는 맛을 연출로, 무대로, 배우의 역량으로, 지금 이곳의 관객과 흥겹게 주고받는 현장의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뮤지컬 작품을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힘이다. 뮤지컬 ‘작품’을 고전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의 생동감, 바로 이것이다.   

 

 

<요셉 어메이징>을 재미있게 보려면

 

이런 면에서 볼 때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이하 <요셉 어메이징>)은 여러 가지로 뮤지컬의 고전다움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재미를 쏠쏠하게 즐기려면 우선 벗어야 할 몇 개의 색안경이 있다. 그 중 으뜸은 단연 종교적 색안경이다. <요셉 어메이징>을 신앙심으로 보는 관객은 분명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니, 이 작품에서의 요셉은 젊고 발랄한 젊은이일 뿐 성경의 논리에서는 툭 튀어나온 인물임을 잊지 마시길. 물론 성경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중심으로 가볍게 나열하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붙잡힌 채 일을 당하지만, 성경대로 보자면 보디발의 아내가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유혹할 때 요셉은 그 옷을 벗어던진 채 뛰어나온다. 여기서 요셉의 ‘옷’은 이 작품의 부제로 붙은 ‘드림코트’와 맞물리는데, 채색옷이 형제들로부터 버림받는 계기였다면 벗어던진 이 옷은 감옥이라는 더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주제를 심화시키는 매개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벗어야 할 두 번째 색안경은 이 작품을 꿈과 희망의 성공 스토리로 보는 것이다. 첫 넘버부터 그런 가사가 나오니까 이런 접근이 무리는 아닐 테지만, 사실 이렇게 보자면 요셉의 꿈과 희망의 정체가 모호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요셉의 꿈이 무엇이던가. 그건 다른 형제들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채색옷을 입고 형제들 사이에서 우쭐대는 요셉이 형님들의 지독한 질투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공한다는 이야기. 잘난 놈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산다는 이런 걸 꿈과 희망이라고 하기엔 좀 ‘강남 스타일’스럽지 않나. 어떤 글을 보니 이 작품을 꿈과 희망의 힐링 뮤지컬이라고 했던데 아이구, 그런 천만의 말씀은 거둬주시길. 여기서 꿈과 희망은 대중 장르에 걸맞는, 그냥 경구일 뿐이다.    <요셉 어메이징>이 지닌 ‘고전다움’은 성경이라는 텍스트에도, 꿈과 희망이라는 건전한 주제의식에도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작품의 진가는 경박할 정도의 가벼움, 어떠한 강박도 느껴지지 않는 재기발랄함에 있다. 성경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하면서도 내러티브에 매이지 않고 에피소드에 가깝도록 가볍게 다루는 방식은 발랄한 상상력 없이는 어려울 터다. 천재 웨버가 아니라 젊은이 웨버가 보인다고나 할까. 골프를 즐기는 파라오를 대중의 영웅 엘비스처럼 무대에서 놀게 하는 유쾌한 설정이나, 요셉의 죽음에 울다가 웃다가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형들의 모습도 그렇고,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다가 예쁜 여자의 손을 잡고 못이기는 척 뒤로 돌아가는 야곱의 의뭉함 같은 것도 젊은이다운 재치이고 농담이다. 이 작품에서 오로지 진지한 이들은,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 딱 한 번을 빼면, 아이들과 짐승들이다.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노래하고 짐승들은 정말 진지하게 연기한다. 낙타의 대사를 보라. (이 공연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실물 크기로 만들었더라!) 아이들은 귀엽고 짐승들은 촌스럽다. 근데 그 촌스러움이 또 재미있다. 

 

 

‘공연’보다 돋보인 ‘작품’

<요셉 어메이징>의 ‘공연’도 이것을 모른 바 아니었으니, 이 작품이 품은 재기발랄함과 사랑스러움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음은 무대에 금방 드러난다. 열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옥시글거리며 등장하면 이야기 아줌마가 그 가운데 앉아 재미나게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마치 주일학교 유초등부를 보는 것처럼 따뜻한 풍경이다. 거기엔 아이들을 진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최정원이 자아내는 분위기의 힘도 분명 있다. 요셉 역의 정동하는, 노래에서나 행동에서 감정이 담긴 연기는 전혀 하지 않아 당혹스럽지만, 외모나 목소리는 배역에 잘 들어맞는다. 앙상블의 역량도 넉넉하여 보고 듣기에 조화롭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미덕을 갖는다.


그런데 말이다.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이번의 ‘공연’은 뭔가 좀 섭섭하다. 무성의해 보일 만큼 조악한 몇몇 무대 장치는 그렇다 쳐도(요셉의 전차 앞에 매달린 짐승은 설마 사자? 그래도 황금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영상 속 전차보다는 실물이 낫다), 작품이 지닌 발랄함을 담아내기에 전체적으로 무거운 흐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희극적인 리듬감을 아예 감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웃음의 타이밍을 잡는 데는 꽤나 둔탁해 보이더라. 물론 그 까닭에는 배우의 탓도 있다. 정동하나 이정용 등 이런 재미를 깨알같이 살려야 하는 역할들이 제몫을 하기엔 연기에서의 저력과 여유가 부족했다. 연출적인 묘사의 아쉬움도 분명한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을 듯하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만 이 작품의 호흡은 에피소드처럼 독립적이다. 사건의 흐름에 기반한 내러티브는 감정의 고저가 서로 연결되어야 하지만 에피소드는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장면의 정서에 충실할 때 그 묘미가 사는 법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의 재치를 잡아내야 하는 순간에 내러티브의 진지함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최정원이라는 배우의 역량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그가 연기한 해설자가 지나치게 진지해 보인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2013년의 <요셉 어메이징>은 완성도에서 그리 빠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재밌지도 않은 그저 무난한 ‘공연’이다. 공연을 보고 나서 무대 위의 배우와 연출에 감탄하기보다는 웨버의 젊음과 재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조금 아쉽다. 웨버는 기본 옵션으로 깔고 그 위에서 뭔가 흥겨운 난장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신날까.    


좀 더 뻔뻔하게 그리고 좀 더 과장되게, 더할 나위 없이 키치답게, 이 공연은 더 가볍고 경쾌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이 작품의 재치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시즌과 맞물리지 않아도, 이 작품은 재능 있는 배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스펠처럼 입에 탁 달라붙는 노래 덕분이라도, 한국 관객들과 신나도록 흥겨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고전인 거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3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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