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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해를 품은 달> 흥행 드라마와 창작뮤지컬의 불편한 동행 [No.118]

글 |정수연(한양대학교 영화연극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2013-08-07 5,103

어쩌다보니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을 보지 못했더랬다. 그때는 친구들을 만나도 학생들을 만나도 그들이 진지하게 하는 고민은 모두 하나였다. 훤과 연우는 언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훤과 연우의 운명을 예측하느라 긴 시간, 불쌍한 양명군은 어쩌나 하면서 또 긴 시간, 김수현을 찬양하느라 또또 긴 시간. 이 친구들의 대화법에는 특색이 있으니, 결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거?’는 ‘그거!’로 척 받아내고, ‘걔 있잖아’ 하면 ‘그러니까 말야’로 딱 이해한다. 줄거리를 설명할 필요보다는 멋진 장면의 감동을 곱씹어 보는 재미가 드라마를 본 사람들끼리는 더 쏠쏠한 법. 전달의 재미가 아닌 회상의 재미랄까. 안 본 사람은 절대 낄 수 없다.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듣다보니 드라마 <해품달>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안 봐도 알겠더라. 그에 비해 줄거리와 줄거리의 연결고리가 가물가물했던 건 아마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게다.


뮤지컬 <해품달>을 보면서 들었던 느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네들끼리 아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다시 듣는 기분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재미없음은 익숙하다. 흥행 드라마를 소재 삼은 대부분의 창작뮤지컬에서 반복되고 있는 시행착오가 이 작품에까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 재미없음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이런 식의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걸까. 드라마 <해품달>을 보지 않은 관객으로서, 그러니까 드라마라는 기존의 콘텐츠로부터 독립된 관객의 입장에서 뮤지컬 <해품달>을 본 것은 이 재미없음의 이유를 곰곰 생각할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잘못된 전제의 설정

 

이 작품에는 하나의 커다란 전제가 있는 듯하다. ‘이 작품은 모두가 봐서 알 것이다’라는 생각. 물론 그럴 거다. 드라마의 시청자와 뮤지컬의 관객층이 크게 다르진 않을 테니 말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보는 재미, 그러니까 반복과 재확인의 재미는 대중서사의 미학적 특성이다. 관객 모두가 작품의 이야기뿐 아니라 재미의 포인트를 안다는 전제는 창작의 과정에서 당연히 생각해야 할 조건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자칫 이러한 전제가 빠지는 함정이 있다. 그건 대략 두 가지인데, 첫째는 이야기가 헐거워지면서 드라마의 구성이 말할 수 없도록 허술해지는 것이다. 관객이 다 알겠거니 하는 생각이 독립된 극으로서의 완성도를 해쳐버리는 거다. 드라마에서 뮤지컬로 장르 이동을 할 때 이야기는 장르의 형식에 맞도록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뮤지컬의 극 안에서 연우와 훤의 만남은 극적이어야 하고, 그들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어야 하며, 연우가 상황의 논리를 뒤집고 세자빈이 될 때는 말할 수 없이 짜릿 통쾌해야 할 뿐 아니라 연우의 죽음은 그 이유가 확실하게 보여야 한다. 드라마를 본 관객이 이런 내용을 미리 안다 해도 뮤지컬은 그 안에서 이런 극적 논리를 치밀하게 쌓아나가야 한다.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이러한 연결고리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연우와 훤은 그냥 첫눈에 반하고, 연우는 그냥 세자빈이 됐다가 죽기도 하고 그냥 살아나 무녀가 되는 식이다. 사건이 무대 위에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TV 드라마의 흐름대로 그저 제시될 뿐이다. 사건의 연결고리나 극적인 긴장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두 번째 함정은 기존 드라마의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 그러니까 그 긴 드라마에서 나왔던 사건을 모두 나열하는 방식이다. 점층 되지 못한 채 수평적으로 나열된 사건의 과부하는 지리멸렬할 뿐이다. 하지만 관객이 이미 다 아는 핵심적인 사건을 빼놓을 수는 없는 법. 연우의 정체 알아채기부터 민화공주와 양명의 사랑까지 드라마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을 깨알같이 담아내느라 뮤지컬의 2막은 너무나 바쁘다. 하지만 사건을 줄줄이 늘어놓는다고 해서 애초에 구축되지 못한 극적 갈등이 새삼 터질 리 만무하다. 이쯤 되면 급급하게라도 사건을 원작대로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이다. 1막에 비해 2막에서 갑자기 대사가 많아지는 것은 이 때문일 거다. 드라마를 안본 관객으로서는 계속 궁금할 뿐이다. 연우는 어쩌다 무녀가 됐는지, 어미무당은 왜 연우를 살린 건지, 연우가 훤에게 인간 부적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는 뭔지, 민화공주가 연우에게 한 짓은 무엇인지, 이런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많은 사건은 그저 휘리릭 일어났다가 후다닥 끝난다. 2시간 50분의 긴 공연 시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빛이 바래버린 미덕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사건이 구축되지 않고 오로지 재연된다는 데 있는 셈이다. 그러니 대박 친 대사나 장면들은 뜬금없어도 나와 줘야 하는 거고, 이 나이든 배우들이 열다섯 열일곱이라고 민망하게 우겨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다. 사건은 그저 제시될 뿐이니까. 플롯이 없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오로지 설명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는 그 설명의 역할을 음악이 담당한다. 거의 성쓰루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분량의 노래가 나오는데, 극의 전개나 인물의 내면이나 과거의 사건이나 숨겨진 음모 모두 다 노래로 설명된다. 하지만 분량의 많음이나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형식적 세련됨에 비해 극적인 기능은 사실 밋밋하도록 평면적이다. 사건의 전개보다는 장면의 전환이 음악의 개입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넉넉한 성량을 발휘한 배우들의 연기가 입체적이지 못했던 건 그들 탓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전동석, 조강현, 안시하)의 안정감 있는 노래가 이 작품을 살린다면 살릴 거다.

 

아, 이 작품을 살리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무대다. 색감 고운 한지를 연상시키는 격자무늬의 무대는 상하 좌우로 움직이면서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할하는데, 시각적 아름다움과 공간적 기능성을 동시에 살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공간의 넓이와 깊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연출력의 한계에 무대의 기능성은 그저 보기에 예쁜 시각적 만족에 그쳐버린다.(연우의 상여가 나가는 장면의 아쉬움이란!) 공간을 살리는 상상력이 무대디자이너만의 것이 아니라 연출의 몫임을 기억한다면 극 전반에 걸친 연출의 기능은 더없이 아쉽다. 이야기를 다듬는 면에서, 음악을 배치하는 면에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면에서 모두 다.

 

흥행 드라마를 소재 삼은 창작뮤지컬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관객은 극의 사건을 따라가고 싶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아, 그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능청맞도록, 새삼스럽게, 정색하면서 이야기를 쌓아나갈 필요가 있다. 음악의 완성도가 전에 없이 좋아지고 무대의 공간 창출도 놀랍도록 진화하는 것에 비해 이야기는 여전히 엉성하고 대사는 더없이 빈한하다. 뮤지컬은 음악의 힘이 중요한 장르이지만 지금의 흥행 드라마를 소재삼은 창작뮤지컬은 이야기와 대사의 힘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듯 보인다. 어제 본 드라마를 실감나게 이야기해주던 학창 시절 짝꿍이 생각난다. 같은 얘기도 얘가 하면 달랐더랬다. 드라마보다 걔 이야기가 더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흥행 드라마를 소재 삼은 창작뮤지컬에 필요한 것은 음악과 무대보다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꾼의 면모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의 눈과 귀를 확 잡아끌어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오히려 드라마를 찾아보게 만드는 환상적인 입담. 뮤지컬 <해품달>이 좀 더 재미있어졌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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