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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piration] 김영지 의상디자이너 [NO.105]

정리| 이민선 2012-05-15 6,013

캐릭터에 날개를 다는 일

 

 

 

내가 파리에 유학을 갔던 것은, 사실 웨딩드레스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파리에서 어학 수업을 먼저 들었다. 같이 프랑스어를 배우는 친구들 중에는 일본과 중국 등 여러 국적의 외국인이 많았다. 그 중 한국계 일본인 친구가 발레를 무척 좋아했다. 알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게 발레를 무척 많이 보더라.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 가면, 맨 위층의 좌석들을 싼 값에 살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가격이 꽤 올랐겠지만, 그때만 해도 7~8유로 정도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를 따라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 저렴한 티켓을 구해 발레를 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발레를 본 적은 있었지만, 즐겨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파리에서 처음으로 본 발레가 <라 바야데르>였다. 내가 그 당시에 발레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았겠나. 그 작품 자체보다는 발레 의상이 정말 멋졌다. 처음으로 ‘저런 의상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 매주 일본인 친구들을 따라 발레를 보러 다녔다. 내가 그렇게 공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교수님이 작은 규모의 연극에서 의상 작업을 할 기회를 주셨다. 실제로 경험해보니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돼, 무대 의상으로 전공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발레 의상이라고 하면 흔히 짧고 옆으로 퍼진 튀튀를 상상하지 않나. 나도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의상이 굉장히 다양하고 아름다웠다. <보석>이라는 작품은 세 막의 부제가 각각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였다. 각 보석에 맞는 색상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살린 의상들로, 굉장히 다양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현대 발레의 의상은 또 전혀 다르다. 튀튀를 입지 않고, 아주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과 함께 옷이 날개가 돼 여간 멋진 게 아니었다.

 


지금은 뮤지컬 의상을 주로 만들고 있지만, 유학을 다녀온 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작업한 의상은, 신기하게도 발레 <심청>의 것이었다. 국내 고전을 소재로 한 다른 발레의 경우, 한복을 변형한 의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난 <심청>의 의상으로 한복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발레는 손목과 발목, 쇄골 등 몸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데, 한복을 입고 춤을 추면 그게 다 가려질 것 같았다. 물론 우리 전통엔 감추는 미가 있지만 발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우선하고 싶었다. 과감하게 한복을 활용하지 않고 튀튀 아랫단에 색동 디자인을 넣는다든가, 한복의 옷고름을 다는 방식으로 발레에 한복의 포인트를 넣었다.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의상이 아니라 무대에서 입는 옷들 역시 일단 예쁘고 편안해야 하지만, 공연 의상은 그에 더해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무대 의상을 만들수록, 작품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을 잘 드러내기 위해 어떤 의상을 입힐지 고민하는 게 재밌다. 비단 캐릭터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의 색깔과 형태, 드라마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의상을 만드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무척 매력적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4호 2012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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