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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위키드> 싱가포르 공연 취재기 [NO.102]

글 |박병성 사진제공 |설앤컴퍼니 2012-04-02 5,181

녹색 마녀를 찾아 오즈의 세계로 떠나요

 

최근 뮤지컬 오디션 장에서 가창력 좋은 여성 참가자들이 주로 준비해온 노래는 ‘Defying Gravity’라고 한다. 이 노래는 <위키드> 1막 하이라이트 장면에 엘파바가 부르는 노래로, 이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는 곡이다. <위키드>는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때부터 오매불망 한국 공연 소식을 기다려왔고, 국내 제작사들도 공연을 타진해보았으나 워낙 규모가 큰 대작이라 성사되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렇게 고대한 지 근 10년 만인 오는 5월 말에 호주 투어 팀의 내한 공연이 이루어진다. 전 세계에 네 개의 프로덕션이 공연 중인데 이번 호주 프로덕션은 3년간 공연해서 호주에서 가장 오랜 공연 기록을 세웠다. 이 프로덕션이 호주 공연을 마치고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국 공연에 앞서 설앤컴퍼니 주최로 기자단의 프레스 투어가 있었다. 2월 6일 영화 10여 도를 오가던 서울을 이룩해 영상 30여 도의 싱가포르에 내렸다. 마법의 나라 오즈에서 펼쳐지는 초록 마녀와 하얀 마녀의 우정과 모험은 최근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세 개의 기둥 위에 얹힌 날렵한 배 모양의 건물 마리아 베이 샌즈 호텔 안의 그랜드 시어터에서 펼쳐졌다. 공연을 관람 후, 백 스테이지 투어를 했다.

 

 

     <위키드>가 상연 중인 마리나 베이 샌즈 전경

 


유쾌한 동화 뒤의 진지한 메시지
<위키드>는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여 내용을 꾸몄다. 맥과이어의 원작 소설은 복잡하고 어두운 동화였지만 뮤지컬에서는 기본 캐릭터와 설정만을 가져와 좀 더 밝고 명랑하게 이야기를 꾸몄다. 무대 디자인은 <스위니 토드>의 무대를 담당했던 유진 리가 맡았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드래곤의 시계(Clock of the Time Dragon)에서 모티프를 가져와서 무대 전체를 시계 부속품으로 이미지화했다. 참고로 유진 리는 <위키드>로 토니상을 받았다. 이번 프로덕션의 협력 연출을 맡고 있는 글렌 혹스트롬(Glen Hogstrom)은 “소설 속에서 드래곤의 시계는 여러 차례 언급되는 소재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는 장치인데 유진 리가 이 작품의 중심 테마로 삼았다.”고 했다. 사진 1에서 세 명의 크리에이티브 스태프 뒤로 보이는 것이 바로 유진 리가 무대 전체를 꾸민 드래곤의 시계이다. 기둥들도 시계 부속품으로 꾸며져 있으며, 사진 2에서처럼 무대 배경 역시 시계 이미지로 장식되어 있다. 글린다가 거품을 뿜어내며 등장하는 사진 2의 버블 머신 역시 시계추를 상징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계적인 느낌이 강한 무대는 작품과 잘 어울린다. 마법사들이 등장하는 동화적인 설정이지만 작품의 내용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동물/인간의 구별(오즈의 동물들은 말을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염소인 딜라몬드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다니는 쉬즈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다.)이다. 온통 녹색의 무대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드래곤의 시계는 자연/문명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녹색 마녀 엘파바의 존재도 그렇지만 동물을 차별하고 말을 금지시키려는 오즈마의 정책은 인종차별에 대한 정치적인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위키드>는 이처럼 <오즈의 마법사>의 숨은 이야기를 신선한 발상으로 꾸민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위키드>를 보고 나서의 느낌이 흥미로운
<해리포터>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을 동시에 본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막 마지막 곡인 ‘Defying Gravity(중력을 넘어서)’는 하늘을 나는 엘바파의 노래이면서 현실의 모든 편견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이 담긴 곡이기도 하다.

 

 

     오즈의 마법사를 가장한 기계 위자드 헤드

 

 

블록버스터급 무대와 의상
<위키드>는 2003년 초연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9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히트작이다. 최근 <스파이더 맨>이 위협하고 있지만 여전히 총 매출액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5억 달러(3조 원)의 매출 기록을 세웠으며, 3천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위키드>를 즐겼다. <위키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거대 프로덕션이다. 싱가포르 공연을 위해 컨테이너 24대 분량의 무대 세트가 반입됐고, 100명의 스태프들이 동원됐다.


공연 후 백스테이지 투어를 했다. 무대에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드래곤의 시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공연 중에는 담당 스태프가 있어 줄로 드래곤 퍼펫을 조정한다고 한다. 막이 열리고 엘파바의 죽음을 기뻐하며 오즈 사람들이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 시계추의 모양을 본뜬 버블 머신을 타고 글린다가 내려온다. 비누 거품들은 꼭 작품 속 글린다 같은 소녀 취향의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준다. 버블 머신 뒤에는 고정 장치가 있어서 글린다를 맡은 배우를 보호한다.


사진 3은 ‘퍼플러(Popular)’ 장면에 나오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침대이다. <위키드>가 내부적으로 담고 있는 스토리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서로 다른 성격의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다. 글린다는 녹색 피부 때문에 쉬즈 대학에서 왕따인 엘파바와 룸메이트가 된다. 언제나 인기를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글린다는 그런 엘파바를 멀리 하는데, 엘파바를 놀리다가 오히려 우정으로 발전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르다. 엘파바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의지가 강한 학생인 반면, 글린다는 자신이 최고이고 그것을 인정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같은 인물이다. 음악감독인 데이비드 영은 “두 인물이 음악적으로도 차이를 보인다. 엘파바는 팝 사운드인 데 반해, 글린다는 어린 시절 팝적인 발성을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소프라노에 가깝다. 팝부터 소프라노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품이 바로 사진 3의 침대이다. 엘파바의 침대는 녹색 천을 누빈 이불인 반면 글린다의 침대는 온통 화려한 핑크빛으로 가득하다. 침대뿐만 아니라 공연 중 책장도 엘파바는 심플하게 책 몇 권이 꽂혀 있는 데 반해 글린다의 책장은 온갖 러블리한 액세서리로 꾸며져 있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차이를 극복하고 우정을 이룬다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이 작품이 제시하는 편견에 대한 극복과 맥이 닿는다.

 

또 하나의 거대한 소품은 위자드 헤드(사진 4)이다. 오즈의 마법사(오즈마)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기계인데 의자 위에 거대한 머리만 있는 형상이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오즈마가 에메랄드 성을 떠나고 난 후 현실 세계에서 기구를 타고 온 아저씨를 오즈 사람들이 오즈마라고 오인한다. <위키드>의 오즈마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기구 아저씨가 오인됐던 바로 실제 오즈마이다. 약물이나 기계를 이용해서 마법을 할 수 있는 마법사인데 오즈 사람들에게 권위를 세우고 복종시키기 위해 위자드 헤드와 같은 무시무시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오즈마의 말과 위자드 헤드의 움직임이 일치할 수 있도록 위자드 헤드 뒤에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디테일한 장치 덕분에 거대한 위자드 헤드가 머리나 턱을 움직여 실제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스태프 뒤로 보이는 것이 드래곤의 시계

 

 

디테일로 승부한다
<위키드>의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무대와 의상의 원천은 디테일에 있다. 대형 극장 무대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태반이겠지만 창작자들이 디테일하게 신경 쓴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중 가장 화려한 장면은 엘파바와 글린다가 에메랄드 성에 도착하는 ‘One Short Day’ 장면이다. 의상을 담당한 수잔 힐퍼티는 에메랄드 시티는 특권층 사회이므로 이 장면을 거대한 런웨이 쇼처럼 표현했다고 한다. 에메랄드 시티의 주요 색깔은 엘파바의 피부색과 같은 초록이다. 등장하는 의상들이 대부분 초록 계열이지만 각 의상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천을 사용했다. 이 장면의 의상 컨셉은 ‘과장과 왜곡’이다. 사진 5는 ‘One Short Day’ 장면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보다시피 한쪽 어깨엔 꽃 장식을 달고 다른 쪽은 부풀려 표현했다. 사진 6에서 확인하듯 스커트도 전체적으로 부풀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One Short Day’에서 사용된 의상들은 어디 한군데가 과장되고 비대칭이며 스커트는 전체적으로 바람이 든 것처럼 부풀린 모양이다. 그것은 수잔이 중력에 지배받지 않는 공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 속 또 하나의 무도회는 쉬즈 학생들이 벌이는 무도회이다. 글린다와 엘파바의 삼각관계를 이루는 피에로가 쉬즈 대학에 전학을 오자마자 무도회를 벌인다. 사진 7이 바로 이 무도회에서 입는 의상이다. 거의 모든 쉬즈 대학생들은 블랙 앤 화이트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화려한 에메랄드 시티 장면에 비하면 무채색 톤의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수잔은 각 학생들의 개성과 학교 교육의 획일성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최초의 모태가 되는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쓴 시기가 1900~1920년대로 이 시기의 의상 스타일을 변형한 것이다. 사진 7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자 배우가 신고 있는 구두 디자인은 1920년대 스타일을 응용했다. 가발 역시 당시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컬이 많이 사용된 스타일이다. 가발은 실제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으로 관리 역시 샴푸를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공연에 사용하는 의상만 350벌이고 가발과 장갑, 모자 등 각 의상마다 다양한 소품들을 곁들여 실제 의상 수는 수천 벌에 달한다. 이 의상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거의 모든 의상이 정해진 제작소에서 만들어진다. 이처럼 철저한 통제에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위키드> 프로덕션은 같은 내용과 퀄리티를 유지한다고 한다. 


또한 같은 소품이지만 장면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도로시의 집이 엘파바의 동생을 깔아뭉개고 난 후, 엘파바와 글린다가 지팡이로 대결하는 신이 있다. 사진 8에 나타난 글린다의 지팡이는 외관상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는 앞서 설명한 대결 장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지팡이끼리 부딪혀도 장신구가 망가지지 않도록 유연한 소재로 만든 것이다. 엘파바의 빗자루 역시 하늘을 날 때와 평소용 등 용도에 따라 총 네 가지의 빗자루를 사용한다. 많은 동물들의 마스크도 사용되는데 원숭이 마스크의 머리카락은 조명을 받으면 끝이 빛나는 플라스틱 소재로 되어 있다.


이번 백스테이지 투어에서 <위키드>의 작은 소품 하나부터 의상, 무대 세트까지 창작자들의 정성과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위키드>를 오랜 동안 최고의 흥행작에 머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모든 무대와 의상, 소품, 가발들이 그대로 한국 공연에도 들여오기 때문에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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