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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Diary] <빨래> 일본 제작기 [NO.102]

글 |추민주 (<빨래> 극작 및 연출가) 사진제공 |명랑씨어터 수박 2012-03-28 5,291

현해탄을 건너간 나영이와 솔롱고

 

2011년 5월 일본 공연 제작사인 퓨어마리에서 찾아왔다. <빨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일본 제작사가 몇 있었으나 계약까지 성사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들었다.그래서, 퓨어마리에서 처음 의사를 보였을 때 이것이 성사될 거란 생각을 크게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퓨어마리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약을 추진했고 결국, 2011년 계약을 마쳤다.      

 

 

 

 

<빨래> 일본 공연 프리 프로덕션

<빨래>의 해외 진출을 앞두고 이 공연의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그 결과 기존의 영어식 표기인 ‘Laundry’를 사용하지 않고 <라이온 킹>이 세계 어딜 가도 ‘라이온 킹’이듯 ‘빨래’ 역시 세계 어딜 가도 ‘빨래’로 불려지도록 결정했다. 일본에서는 ‘파루레(パルレ)’로 표기하기로 했다.

해외 진출을 위해 그간 공연을 해오면서 미처 정리해두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연의 역사를 재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이것을 만들어 오면서 겪었던 일과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음악, 음향, 무대, 의상, 조명, 소품, 영상 등 그간 갖고 있던 자료들을 모으고 각자의 의도를 정리했다. 2011년 10월 넷째 주에 퓨어마리 제작사 대표인 호사카 상, 상임 연출가인 스즈키 상, 미술을 맡은 사히토 상, 안무와 조연출인 사나 상이 크리에이티브 스태프로서 한국을 방문해 명랑씨어터 수박 사무실에서 일주일 동안 매일 6시간 이상 프리 프로덕션 미팅을 했다.


일본 스태프들에게 <빨래>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빨래>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서울살이’가 아닌 ‘도쿄살이’로 바꾸어 공연하는 것에 대해서도 건의했으나, 일본 관객들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오리지널 그대로를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며, 또한 일본에서는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팀의 적극적인 제작 참여를 원했다. 연출, 안무, 무대는 학전의 9차 공연인  2011년 상반기 공연을 기본으로 해서 일본 프로덕션에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무대 세트의 운영 방법 및 뒷 동선 확인 등 무대 연출의 상세한 상황을 확인한 뒤 필요에 따라 무대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따로 했다. 마지막으로 일본 상황에 맞게 작성해온 연습 계획을 스즈키 상과 확인했다.


회의 마지막 날 일본에서 공연하는 <빨래>의 초연 연출은 ‘빨래’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내가 직접 일본에 가서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공연이 올라가기 전까지 초반 리딩 작업과 기술 리허설 정도만 참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한국의 정서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일본 배우와 일본 스태프들을 직접 만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일본과 한국 양국을 위해서 좋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초벌 번역이 이루어졌고, 그 후 퓨어마리 대표인 호사카 상이 직접 일본말 노래 가사 작업과 대사 번역을 담당했기 때문에 통역을 통해 그분과 직접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2차, 3차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오른쪽엔 한국어, 왼쪽엔 일본어로 된 대본과, 연습 계획별, 장면별 등장인물 표, 무대 미술 사진이 첨부된 목록, 공연에 참고할 무대 애드리브 등이 적힌 연출 대본을 제작했다. 또한, 세부 연습 계획표와 공연 연습 전 배우들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두면 좋을 만한 것들을 편지(다음 페이지 박스 글 참고)로 전달해두었다.


그리고 일본 시키 극단에서 3년간 활동을 했던 나영 역의 차미연 배우에게 일어를 배웠다. 히라가나를 쓰고 읽는 것 그리고, 일상에 필요한 인사말, 먹다, 보다, 마시다, 배우다 정도의 기본적인 단어, 마지막으로 공연장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배웠다. 일본에서는 내가 일본에 가기 전 한 달 동안 무대 세트 제작을 해놓고, 퓨어마리 스태프 팀이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캐스팅된 배우들과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연습 과정

2012년 2월 4일 첫 공연을 올리기 위해 1월 4일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는 요코하마에 있는 연습실(급경사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이 연습실은 예전에는 예식장 건물로 쓰였으나 지금은 공연 연습실로 사용하고 있고 건물 한쪽에는 노인 복지 회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근처의 위클리 맨션이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다음 날 도쿄 긴자에서 제작 발표가 있었는데 그때 배우들과 처음 만났다. 일본 말로 <빨래>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큰 감동을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 통역을 거치지 않고는 간단한 말도 주고받기 어려운 이 사람들과 앞으로 한 달 동안 어떻게 <빨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약간의 막막함도 느껴졌다. 긴자에서 제작 발표회를 끝내고 기자들이 돌아간 뒤 그 자리에서 첫 리딩을 하면서 일본의 배우들이 이 공연을 좋아하고 있고 일본에서 초연을 하는 배우들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살아있다’ 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하자고 그 자리에서 일본 배우, 스태프들과 약속했다. 


연습은 오후 2시부터 8시까지였으며 저녁 식사 시간이 따로 있지 않고 5시부터 40분간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때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연습실은 11시부터 열려 있어 배우들이 각자 원하는 시간에 와서 몸을 풀고 2시에 연습 준비를 마무리한다. 배우들의 연령은 한국 평균 연령보다 높았고, 다수가 스타 캐스팅이었으며 ‘극단 시키’ 출신이 반을 넘었다. 한국과는 달리 주로 낮 공연이 많은 일본에서는 배우들이 스스로 컨디션을 잘 챙기고, 연습을 위해 술을 많이 마시거나 늦게까지 밖에 있거나 하지 않았다. (연습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시간 약속이 철저하고, 연습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가 확실한 편이었다. 연기 경험이 적은 배우들은 퓨어마리 상임 연출인 스즈키 상이 저녁 8시 이후에 개별 장면 연습을 시키고, 오전에는 내가 개별 장면 연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즈키 상은 연출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주로 제작 진행을 맡았다.


긍정적이고 예의 바르고 준비가 철저한 배우들이었지만 <빨래>를 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말할 때 손을 잡고, 웃을 때 옆 사람의 어깨를 치고, 큰 소리로 말하고, 공공장소에서 전화를 받고, 화가 나면 남에게 욕을 하거나 때려서 싸움이 붙기도 하는데 이것을 표현하기에 일본 배우들은 표현 방식이 점잖고 예의 발라서 이 선을 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 점에 대해 배우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배우들에게 안아서 인사하고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큰소리로 웃고 농담을 걸기 시작했다. 주인 할머니와 희정 엄마가 함께 춤을 추며 노래하는 장면 역시 그 흥을 표현하기 위해 할머니들의 관광버스 춤 같은 자료 화면을 보고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작품에 나오는 정서부터 그 의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빨래>를 왜 만들고자 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시 깨닫게 됐다. 사람들과 뜨거워지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고 일본에서 역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장면 연습을 시작하는 첫날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스킨십이었다. 마음을 전달하고 <빨래>를 잘 만들기 위해 일본과 한국의 정서적 차이를 극복하기로 했다. 이곳 배우나 스태프들은 <빨래>를 통해 일본의 방사능 문제로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배우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연습을 하다가 발견한 것이 아니면 가능한 애드리브를 자제 시켰고 그래서 작품이 한국보다 더 담백하게 나올 수 있었다. 필요한 대사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배우들과 함께 만들었다. 일본 사람들이 평소에 어떻게 인사를 하는지, 화가 날 때 내는 소리는 어떤 것인지, 웃을 때는, 아픈 척 연기할 때는, 울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그런 것들을 알고 무대 위에서 요구하기 위해서는 배우들과 더 가까이 지내야 했는데 그것은 술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습을 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열흘 만에 첫 런스루를 진행했다. 배우들의 철저한 준비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작 시스템 덕분이었다. 연습실에 무대가 이미 세워져 있고, 연습 시작 전에 가소품이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다. 연습을 하는 동안 소품 팀은 연습실 한편에서 거의 모든 소품을 직접 제작했다. 내가 원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만들어내는 장인정신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빨간 고무 대야도, 슈퍼 테이블도, 베트남 처녀 걸개 광고판도, 모두 제작하였다. 젊었을 때 큰 극장의 유명한 무대감독이었던 나카지마 상은 지금은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 ‘무대제작조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청소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스케줄 표를 작성해 붙이고 신문기사 같은 것을 스크랩했다. 그분은 열심히 한국말 공부를 해서 가능한 내 편의를 돕기 위해 애썼다.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의상 제작 팀 역시 평균 나이가 40세가 넘었으며 연습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그분들은 극장에 가서도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그날 입은 옷들은 매일 빨고 말리고 다리는 일을 했다. 공연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공연 연습부터 함께 참여해서 공연을 잘 아는 상태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는 시스템, 이것이 4주 만에 <빨래>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 공연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이 뒤에 있어주는 것이 프로덕션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무대 인력이 젊은 것과 차이가 컸다. 이런 부분은 큰 장점인 동시에 높은 인건비를 해결하기 위해 연습 기간을 줄여서 제작비를 줄여야 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가슴으로 만들어간 공연

열흘 만에 해보았던 런스루에서 <빨래>는 몹시 차가웠다. 메뉴얼대로 했지만 달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또, 한국에서 배우들과 연습할 때 했던 것처럼 시기적절한 즉흥 연습을 통해 작품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솔롱고의 연기를 돕기 위해 나머지 배우들과 그 배우 몰래 몽골에서 온 엄마 편지를 만들어 배달하기도 하고, 주인 할머니의 연기를 돕기 위해 가족을 비웃는 상황에 마주하는 즉흥 상황을 통해 분노가 내 몸 속 아주 깊숙한 곳에서 차고 올라오는 것을 느껴보기도 하는 등, 연습 막바지에 배우들과 짧게 하루에 한두 가지 즉흥 연습을 했다. 그것이 배우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처음 해보는 배우들이 많아서 이런 연습에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배우들끼리 결속력을 높일 수 있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의 감정 저 깊숙한 곳까지 닿아보고자 하는 시도가 어렵지만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유했다.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제대로 표현이 될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배우들이 처음 시도해보는 것들, 즉, 마음을 전달하는 일,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속을 다 꺼내서 보여주는 연기에 대해 관객들이 세 번의 커튼콜과 기립 박수로 화답해주자 첫 공연을 마치고 다 함께 모여서 울었다. 

 

첫 공연의 반응은 뜨거웠다. 짧은 공연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 내에 관객의 수가 늘었다. 그래서 2012년 5월 롯뽄기에 있는 하이유좌에서 앙코르 공연을 하기로 결정했고, 여름에도 재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일본 전국 투어 공연도 검토 중에 있다.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올린 <빨래>를 통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고, 공연만큼 그 일을 즐겁게 해내는 일은 없으며, 공연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으키는 화학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연습 전 일본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저와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각 배역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리서치를 해보셨으면 합니다. 솔롱고는 몽골의 역사나 풍습 지리 생활에 대해 그리고, 몽골 말에 대해 공부하시고, 나영, 김지숙, 여직원, 남직원 등 제일서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점 점원들의 일상을 직접 가서 연구해 주시고 나영, 주인 할매, 희정 엄마는 손빨래를 직접 해서 널어보아 주세요. 특히, 나영은 싼 방을 한번 구하러 다녀보아 주세요. 솔롱고 역시 일본에도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다니는 공장에 한번 다녀와 주세요. 마이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빵 사장 역을 맡으신 분은 큰 가게나 회사 사장님을 연구해 주세요. 여직원과 정둘이 역을 맡은 배우는 중증 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연구해 주세요. 희정 엄마는 장사하는 사람들 특유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몸에 배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이클 친구 역을 맡은 배우들은 필리핀 말 따갈로어를 공부해 주세요.


빨래는 노동입니다. 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건 일과 사랑이겠죠. 공연 연습을 하고, 공연을 올리는 동안은 그 배역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살아볼 것을 권합니다. 적어도, 여러분이 다루는 소품인 빨래를 직접 빨고 널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빨래>를 한국에서 두 달간 연습해서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과는 한 달 만에 연습을 해야 하므로 여러분들이 제가 부탁드린 것들을 미리 연구하고 고민해 주신다면 그저 한국 공연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의 디테일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럴 때에 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습 중에 장면에 필요한 안무나 동선을 연습하는 것 외에 여러분의 상상력에 도움이 될 만한 즉흥이나 또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생각입니다. 연습 기간이 길지 않아서 많이 할 수는 없으나 장면의 에너지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해볼 생각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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