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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2007년의 인물, 김선영 [No.70]

글 |김영주 사진 |이맹호 2009-08-05 6,193

 

한국 뮤지컬의 골든 에이지에 군림하다

 

2000년 이후 뮤지컬계가 가장 풍요로웠던 해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2007년을 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뮤지컬 빅뱅이 일어난 해도 아니고, 성장세가 최고점을 기록한 해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현상들이 가시적인 결과가 드러났던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벅찬 성공도 있었지만 뼈아픈 실패도 적지 않았다. 2006년 연말 성수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여진과 함께 시작한 한해였고, 소속 컴퍼니와 관계없이 뮤지컬 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성공을 기원했던 대형 창작뮤지컬들이 잇따라 쓰디쓴 결과에 승복해야 했던 해다. 하지만 그 실패들이 단지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른 후 2007년은 제대로 수업료를 치르면서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 경험을 갖게 된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07년에는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려왔던 웰메이드 뮤지컬의 재연도 많았고,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문제의식을 보여준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도 쏟아졌다. 좋은 작품과 작품을 알아보는 준비된 관객들은 많은데 극장과 배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제작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 해 뮤지컬대상 시상식과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만큼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 김선영에게 러브콜이 쇄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스 사이공> 지방 공연과 <에비타>, <맨 오브 라만차>, <텔 미 온 어 선데이>까지 숨 돌일 틈도 없이 이어진 스케줄은 그 반증일 것이다.

 

 

“지켜보는 분들은 제가 욕심을 너무 많이 낸다고 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다행히 그 때 출연한 작품의 캐릭터들이 저와 그렇게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마다 자기 색깔이 있으니까, 저마다의 포지션이 있는데 2007년에는 너무나 행복하게도 제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올려졌거든요.”
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작품이 맞물리는 것은 배우로서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맨 오브 라만차>의 막바지 공연과 <텔미 온어 선데이>의 초반 연습이 겹쳤을 때, 극단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알돈자 역 때문에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아 있다가 <텔미 온어 선데이> 연습실에서는 유쾌하고 코믹한 런던 출신 뉴요커에 젖어들어야 했다. “거의 조울증에 걸릴 뻔 했어요. 2007년의 저를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려보면 온도가 급변하는 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넋을 놓고 멍한 모습이 떠오를 정도예요.”


서로 모셔가고 싶어 안달인 한참 잘나가는 배우라고는 해도 <에비타>, <미스 사이공>, 그리고 <맨 오브 라만차>까지 모두 오디션을 거쳐서 캐스팅이 결정되었다. 김선영은 제작사의 콜을 받은 기성배우들도 1차부터는 아니더라도 오디션을 보는 것이 그때부터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과 함께 외국 스태프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판도가 좀 바뀌었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오디션을 통해서 자신이 그 작품이 요구하는 음악적인 난이도 같은 조건들을 갖췄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리 이름난 배우여도 그 작품을 할 수 없는 방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저를 비롯해서 배우들에게 정말 자극이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봐요.”


그해 같은 배역에 캐스팅 되었던 후배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들도 있다. “윤공주와 바다(최정희), 정선아와 같은 역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면서 그 친구들에게서 느낀 것들이 많아요. 아, 정말 배우는 각자 다른 자기 것을 보여줄 수 있구나, 그래야 하는구나…. 그들이 가진 것을 샘낼 것도 없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우쭐할 것도 없구나, 배우로서의 욕심이나 경쟁심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들이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 두면 안돼, 현명하고 자연스럽게, 멋있게 나이를 먹어야 돼, 그런 다짐을 했어요.” 어지간한 작품에서는 으레 맏언니 역을 맡는 게 당연한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인식했고, 자연스럽게 선배로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언이나 충고를 건네는 것보다도, 무대 아래서나 위에서나 좋은 배우가 되어서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배노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가 선배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사실 그렇거든요. 따뜻한 격려 한마디나, 매서운 충고도 굉장히 도움이 되지만, 그분들이 무대에서 보여주시는 진짜 감동적인 연기는 어떤 말로도 설명 못할 만큼 강렬하게 와 닿아서 남겨지니까요.”

 

2007년 겨울에는 <레 미제라블> 오디션을 봤다. 팡틴느 역으로 응시했는데 파이널까지 올라갔지만 제작사 사정으로 작품은 연기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레 미제라블>을 다시 하게 된다면 언제라도 오디션을 보러 갈 것이다. “저는 원래 어떤 역을 꼭 해보고 싶다는 바람보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에요. 그 다음에 작품 속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역이 뭐가 있나 찾아보는 편이라서, 다음번에 오디션을 볼 때 팡틴느가 아닌 다른 역으로 콜을 받아도 상관이 없어요.”(웃음)


<레 미제라블> 오디션 과정을 지켜보았던 관계자가 귀띔해준 기분 좋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당시 심사를 했던 웨스트엔드 팀의 연출자가 그녀에 대해 ‘언어 문제만 해결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설 수 있는 배우’라고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미스 사이공>의 연출가 로렌스 코너 역시 그녀에 대해 ‘전 세계의 엘렌 중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극찬했다. “<미스 사이공> 지방 공연 오디션 때문에 한국에 온 로렌스가 <에비타>를 보고 나서 빨리 영어 공부를 하라 더라고요.(웃음) 노래 위주로 이루어진 송스루 형식의 작품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사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다는 건 뭐랄까, 제 마음 속의 꿈이에요. 남겨두고 싶은 숙제라고 할까. 오디션에서 그런 칭찬을 듣는 것도 너무나 황홀하지만, 제가 나가서 처음부터 몸으로 부딪혀서 그곳 배우들과 똑같이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반드시 이루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놓는 그런 꿈이라기보다는, 환상처럼, 배우로서 제가 가슴에 담아 두고 싶은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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