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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cene Scope] <삼천-망국의 꽃> 무대 디자인 [NO.110]

글 |배경희 사진제공 |PMC프러덕션 2012-12-04 7,905


절제된 미학의 아름다움

 

데뷔작부터 승승장구하며 주목받고 있는 서윤미 연출이 신작 <삼천>으로 관객과 만난다. 코믹과 스릴러, 작품마다 다른 장르를 시도해 왔던 그녀가 새로 도전하는 분야는 사극이다. <삼천>은 의자왕과 백제의 멸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 비극. 왕과 충신, 궁녀 세 사람의 엇갈린 로맨스와, 이를 둘러싼 배신과 음모가 얽혀서 백제의 멸망을 가져왔다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다. 미학적 이미지가 강조된 무대를 고집해온 그녀답게, 이번 역시 전작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종석 무대디자이너와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무대로 승부수를 던진다. 김종석 디자이너에게 미리 들어보는 <삼천> 무대 디자인의 포인트.

 

 

 

 

 

<삼천>은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역사의 기록을 다루는 극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사실은…’ 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뒤집는 팩션 사극이다. 그렇다면 무대 또한 그런 반전의 재미를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디자인에서 또 한 가지 중요했던 고려 사항은 작품의 성격이 비현실성이 강조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작품 자체가 한 편의 꿈같은 이야기라면, 무대 역시 현실성이 배제된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기능적인 역할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이 강조된 무대, 이것이 <삼천> 무대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무대 디자인을 시작한 후 내가 주로 맡아왔던 건, 현대 무용 공연 무대다. 무용 공연에는 대본이라는 것이 없다. 안무가의 설명과 음악이 디자인 소스의 전부다. 그래서 작품 정서와 분위기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끈을 놓치면 아주 엉뚱한 무대가 나오기 때문이다. 작품이 지닌 정서를 이해하고, 이를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보통의 디자인 방식인데, <삼천>의 디자인 과정이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에 기반을 두는 게 아니라, 정서에 맞게 분위기를 잡고 이에 어울리는 공간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갔다.    


<삼천>이 지닌 정서에 대해 고민하면서 떠오른 단어가 바로 ‘몽환’이다. 연출가 역시 판타지적인 무대를 원했고, 우리는 중력을 거스른 듯한 상상 속의 공간을 구성하자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삼천>이 백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공간이 시대성을 나타내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는 ‘문’과 같은 현실적인 오브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도, 현재도 아닌 개념적인(Conceptual) 공간, 한마디로 말해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무대 그 자체가 ‘삼천’인 것이다.

 

 

 


<삼천> 무대 미술의 핵심 개념은 공중에 떠있는 신기루 같은 성이다. 최소한의 장치로 화려한 궁궐을 상징하기 위해 무대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금색으로 바닥을 칠하고, 몇 개의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 궁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이를 표현하는 데 박선기 작가(낚싯줄로 사물을 묶어 천장에 매다는 설치 미술로 유명한 작가로, ‘매달린 숯’이 그 대표작이다)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실 커튼으로 기둥을 만들면 마치 바닥이 허공에 매달려있는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하면서, 동시에 앞서 언급한 ‘뒤집어 보는’ 반전의 재미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굳건한 기둥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반전 말이다. 벽돌 기둥이 아닌 커튼 기둥이기에 바람으로 흔들 수 있으니까. 실 커튼이 흔들리면서 궁궐 전체가 흔들리는, 무너져가는 왕조의 위태로운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또한 커튼 안에 배우가 들어가면 대상을 슬라이스해서 착시 효과를 줄 수 있는데, 이 방법이 소극장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찬란했던 왕국의 멸망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오브제는 바로 무대 뒤에 배치한 배경막이다. 불에 타서 찢긴 한지를 겹겹이 겹쳐 놓은 듯한 배경막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타들어 가는 듯한 분위기를 낸다. 이는 물론 실제 한지가 아닌 천을 사용해 효과를 낸 것이다. 조명과 자연광은 달라 실제의 물질보다 재질감이 더 거칠어야 그 효과가 구체적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0호 2012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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