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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cene Scope]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무대 [No.109]

사진제공 |박정희(무대디자이너) 정리 | 배경희 2012-11-01 6,544

무대 위에 펼쳐지는 발하임의 숲

 

“지난 시즌이 서정적이고 고운 결의 디자인이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드라마틱하고 다이나믹한 무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연출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태프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무대를 선보였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팀이 2년 만의 재공연에서 또 한번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12 시즌에선 어떤 무대를 볼 수 있을지 박정희 무대디자이너에게 미리 들어보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석산(磁石山)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그 산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쇠붙이란 쇠붙이는 그리로 빨려가 버리고 못 같은 산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하여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허물어져 떨어지는 널빤지 조각에 깔려서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지난 시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무대 세트로 난파선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바로 이 편지에 있다. 작품의 무대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책을 다시 읽어 보게 됐는데, 저 구절에서 숨이 턱 막혔다. 베르테르는 롯데를 향한 그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석산에 난파당하는 배 이야기는 베르테르 자신의 이야기였으리라. 자석산 이야기에 꽂혔던 나는 난파선이야말로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생각했고, 공연 개막을 한 달 앞두고 디자인을 변경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극적인 모험을 벌인 결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대에 배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 없었던 걸로 봐서는(배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두고 트랜스포머 같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쁜 시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00년에 초연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여러 번 재공연되면서 무대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어 왔는데, 상징적인 무대 세트가 최근 디자인의 특징이다. 이는 지난 시즌이 10주년 기념 공연인 만큼, 기존의 공간 설명적인 무대에서 탈피해 새로운 것을 보여주자는 고민 끝에 나온 결과였다. 작품이 가진 색깔의 유지와 새로운 시도 사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우리의 전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컨셉을 찾자는 거였다. “‘베르테르’의 무대는 ○○○이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명료한 주제 전달을 위해 우리는 원 세트 무대에 최소한의 도구만 가지고 장면 전환을 연출하는 것으로 디자인 방향을 정했다. 그 핵심 오브제가 앞서 언급한 난파선이다(여러 개의 레이어로 무대 바닥을 꾸몄던 이유는 부서진 배의 파편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난파선이 무대 전면에 드러나는 건 딱 한번, 바로 베르테르가 자살하는 엔딩 장면에서다. 베르테르가 배에 올라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면 배가 객석을 향해 움직이는데, 이로써 관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랐다. “나는 죽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사실 재공연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지난 시즌의 무대를 좀더 정돈해 올릴 예정이었지, 디자인 자체를 바꾸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애초의 계획은 그랬다. 하지만 작업이 시작되자 나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의욕에 넘쳤고, 결국 일이 커지고야 말았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무대 디자인의 변화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위에서 발하임의 숲을 펼쳐낼 예정이다. 디자인의 주제를 자연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베르테르에게 자연은 중요한 요소인데, 지난번엔 그 부분을 간과하고 지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자연 속에 있을 때 아닌가. 따라서 이번엔 자연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8미터 극장 높이에 다다르는 커다란 고목나무를 극장 상부에 세울 계획이다.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뎌내고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이는 200년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베르테르의 사랑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9호 2012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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