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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rom Page to Stage] <모비딕> 프로덕션 노트 [NO.95]

2011-08-31 6,560

창작에서 개막까지의 짧은 일지 <모비딕>

 

우리나라의 모든 창작뮤지컬이 그래야만 하겠지만 <모비딕> 역시 길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개발과정을 거쳤다. 지난 7월 19일 두산아트센터에 개막공연을 치르고 난후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 작품은 유난히 그 과정이 드라마틱했던 것 같다.

 

 

 

1단계: 구상 (2010년 5월~7월)
뮤지컬 <모비딕>의 출발은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였다. 처음부터 클래식 악기를 활용한 중극장 규모의 액터-뮤지션 뮤지컬로 형식을 정했고 그 초현실적인 컨셉에 걸맞은 모던한 문체로 이루어져있으며 콘트라베이스를 닮은 고래가 등장하는 <모비딕>을 각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별 악기의 외관과 음색을 고려해 소설 속 캐릭터들과의 매칭작업을 했다. 먼저 흰고래 모비딕은 콘트라베이스, 작살잡이 퀴퀘그는 바이올린, 외다리 에이헙은 첼로, 선원이자 해설자 이스마엘은 손이 자유로운 피아노로 설정했다. 작곡가와 함께 합주의 밸런스를 위해 관악기 주자를 희극적인 캐릭터로 삼고 이를 플라스크로 통합시켰다. 원작에는 남자만 등장하지만 보컬의 밸런스와 작품의 상징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바다의 여신이자 만물을 주관하는 정령인 네레이드를 추가하고 무대 위에서는 한 대의 피아노를 이스마엘과 공유하게 했다. 여기까지는 실제로 이를 구현해줄 ‘액터-뮤지션들’을 한명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창작자의 머릿속에 있는 공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2단계 : 오디션 (2010년 8월~9월)
뮤지컬 <모비딕>은 창작을 하기도 전에 1차 오디션을 먼저 실시했다. 그 이유는 앞서 구상 단계에서 악기와 통합된 캐릭터를 수행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우리나라에 존재하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고, 만약 찾는다면 최대한 그 배우에 맞게 대본과 음악을 쓰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배우들을 끝내 찾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시기상조 일 것이다. 작년 8월 7일 두산아트센터 B연습실에서 열린 첫 번째 공개오디션에는 35명의 지원자가 왔다. (더뮤지컬 2010년 9월호 소개) 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배우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참가번호로 이일근(KoN)이 왔고 그의 연주와 노래에서 처음으로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았다.

 

 

 

 

3단계 : 창작 & CJ 아지트 첫 리딩 (2010년 9월~11월 15일)

1차 오디션을 마치고 우리는 새로운 단기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3개월 후인 11월 15일 CJ 아지트에서 리딩 발표회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CJ 아지트는 밴드 콘서트 및 뮤지컬 리딩 공연에 최적화된 공연장으로 무대 앞 공간에서 간단한 연기를 할 수 있었고 액터-뮤지션 형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본을 모두 외워서 진행하기로 했다. 리딩 계획이 확정되자 대본과 음악 작업에 가속이 붙었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9월 26일에 초고를 썼다. 가사는 작가가 수정 가능한 1차 가사를 먼저 작곡가에게 넘기고 작곡가는 이에 최종 가사를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한편 리딩 배우를 찾기 위한 프라이빗 오디션도 계속해 이지영(피아노, 네레이드)과 장효종(콘트라베이스, 모비딕/스텁)을 만났다. 하지만 연습 첫날까지도 나머지 배역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일근의 소개로 유쾌한 성격의 트럼페터 유승철이 플라스크 역으로 합류했고 마지막으로 뮤지컬 <쓰릴 미>의 반주자 경험이 있는 신지호를 이스마엘(피아노)로 확정했다. 이로서 전원 배우 경험이 전무한 전문 연주자 출신들 8명으로 우여곡절 끝에 리딩을 치루어냈다. 설문조사에서는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력 부족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앞으로 이 공연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하지만 그 초연 멤버 8명중에 절반이 넘는 5명이 두산아트센터 본 공연까지 함께 왔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4단계 : 두산아트센터 아트랩 워크숍 (2011년 2월 25일~26일)
CJ 아지트 리딩을 마치고 두산아트센터 본 공연 스케줄(2011년 7월 19일 ~ 8월 20일)이 확정되었다. 그보다 5개월 전인 2월 25~26일에는 두산아트랩이란 이름으로 워크숍을 실시하게 되었다. 리딩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작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본도 수정되었고 이소영 안무가가 합류해 움직임에 드라마성이 강화되었고 음악적으로도 4곡이 추가되며 90분이었던 러닝타임도 120분으로 늘어났다. 2차 공개오디션을 실시했고 그 자리에서 황건(첼로)을 만났다. 특히 황건은 연기자로 극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에어헙 선장에 적역이었다. 또한 상반된 희극적 인물인 필레그 선주까지도 1인2역을 맡아서 프로덕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스타벅으로는 첼리스트 이진우가 새롭게 들어와 선장과 일등항해사의 고뇌와 갈등이 한층 선명해졌다. 배우 숫자는 효율성을 위해 8명에서 7명으로 줄였고 새로운 두 배우가 합류해 활기가 넘쳤다. 연습은 3주간이었고 차수정 PD가 새롭게 합류해 프로덕션 제작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렇게 준비한 아트랩은 정식 공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페이스111 개관이래 최다 관객이 들어와서 3면 객석을 모두 열고 보조석까지 깔아야할 정도였다. 관심이 많은 만큼 개발 과정에 대해 지켜본 관객이 많았고 설문지에 다양한 의견을 남겼다. 대본의 보강에 대한 주문, 뮤지션들의 기본 연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안 등등.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과 새롭게 제기된 문제점을 감추지 않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 개선방안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5단계 :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참가 트라이아웃 (2011년 6월 24일~26일)
두산 아트랩 준비에 한창이던 1월말, <모비딕>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지원부문에 출품했고 아트랩을 마친 후인 3.13일에 선정 소식을 들었다. 따라서 서울 본 공연 직전에 대구에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트라이아웃을 할 수 있는 스케줄이 완성되었고 프로덕션의 연속성과 제작비 절감 효과도 있었다. 기존의 제작사와의 협업을 통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았다. 음악과 악기 연주를 중심에 둔 액터-뮤지션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주변에서는 상업화 가능성이 없다며 우려의 시선이 거두지 않았고, 연주를 못해도 알려진 뮤지컬 배우 중심으로 가라는 조언이 쏟아졌다. 이러한 반복되는 거절에 단련이 될 무렵, 처음 리딩 지원을 해주었던 CJ 문화재단에서 본공연을 위한 후속 개발지원을 해주었다. 이로서 대구에 이어 서울 공연까지도 이어지는 최소한의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를 행정적으로 수행할 프로젝트 컴퍼니로서 ‘모비딕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두산아트센터도 공동제작사로서의 대관/인력/장비 지원 등 구체적인 프로듀싱을 제공했다. 하지만 대구 공연준비는 쉽지 않았다. 신지호와 KoN은 그간 콘서트, 방송, 광고 출연이 늘었고 다른 배우들도 워크숍 리허설에만 전념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황건은 영화, 광고 촬영을 나가고 있었고 막내 이지영도 대학교 졸업반이어서 이들을 한날한시에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트랩 당시의 스타벅은 해외 콩쿨 준비로 하차해버려 새로운 배우를 구해야했다. 하지만 적당한 첼리스트를 구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드라마의 강화가 필요해 그간 뮤지션을 고집해왔던 이 배역에 처음으로 연기자를 기용했다. 그것이 뮤지컬 배우 이승현(기타)이었다. 하지만 이승현도 바쁜 스케줄로 인해 더블캐스팅이 필요해 유성재가 추가로 투입되었고 플라스크 역도 악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관악기라는 공통점을 감안해 그동안 뮤지컬 오케스트라 경험이 많은 조성현이 더블캐스팅으로 추가되었다. 스케줄을 관리하는 김현조 컴퍼니매니저를 비롯한 전체 스태프들과 액팅/보컬/안무 워크숍 일정을 잡는 업무는 작품 창작만큼이나 어려운 하나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대구에서의 5회 공연은 여신동 미술감독이 선택한 세트, 의상, 분장 등 모든 디자인 인력과 결과물을 갖춘 첫 번째 상업 프러덕션이고 두산아트센터의 조명, 음향, 무대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공연의 질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었다. 티켓 판매도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로 프로덕션 모두는 고무되었다.

 

 

 

 

6단계 : 두산아트센터 본공연 (2011년 7월 19일 ~ 8월 20일)
대구 공연과 서울 본공연 사이에는 3주의 시간이 있었다. 이제 <모비딕>의 최종 과실을 따야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구 공연을 거치며 최종 완성도에 대한 해답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바로 악기를 들고 연기와 노래를 해야 하는 액터-뮤지션들이 동선과 움직임을 작품 전체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마지막 단계의 작업이었고 그것은 아트랩부터 참여한 이소영 안무가가 협력연출 겸 안무가로 역할을 넓히며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대본과 음악도 다시 한 번 정비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정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7월 19일이 되었고 뮤지컬 <모비딕>은 뜻 깊은 개막을 맞았다. 대구 공연과 비교해 서울 공연은 많은 부분에서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개막 후에도 여전히 아쉬운 점이 보인다. 하지만 리딩-워크숍-트라이아웃-본 공연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수행하며 그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고 새로운 형식에 대한 키워드로 창작자/스태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제작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후퇴 없이 전진할 수 있는 기운을 얻은 것은 앞으로 <모비딕>의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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