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스태프들의 의견을 모아 주목할 만한 차세대 또는 신예 스태프들을 소개한다.
“연출은 해석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 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연출가와의 인터뷰에서 김민정 연출가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배우 하나하나의 동선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연출의 진짜 역할이라는 것이다. <씨 왓 아이 워너 씨>, <스프링 어웨이크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세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그의 연출로서의 면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성실하게 해석하되 배우들에게 쉽게 자신의 답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배우들 스스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든다. “(배우들이) 내 방법을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해석했으니) 이렇게 가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해보자고 하니까. (내) 목표점은 분명히 안다. 배우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정 모를 때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꼭 그 길을 통해 목표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마다 길은 다양하니까. 배우들이 그 길을 찾아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성실한 해석가이자 작품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김민정 연출가가 자신의 길을 알게 된 것은 여행을 통해서였다. 인간의 심리를 전공하고 싶었던 그는 5개월 간 홀로 길을 헤매며 여행한 결과 자신이 가야 할 길은 그 길이 아니라는 점을 직관을 통해 깨달았고, 연극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음악, 미술, 문학, 역사, 심리학 등에 대한 다양한 관심 때문에 스스로를 ‘잡종’이라 칭하는 김민정 연출가는 자신에게 연출 공부는 딱 맞는 길이었다고 회고한다.
졸업 후 은사이신 김우옥 선생님의 영향으로 어린이 공연 작업을 하고, 국립국악원과 무용, 연극 공연 등을 작업하다가, 함께 작업했던 작곡가 및 번역가인 박천휘에게 ‘연극 같은 뮤지컬’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작품이 바로 <씨 왓 아이 워너 씨>였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구로자와 아키라를 좋아한다는 존 마이클 라키우사와의 교집합에 이끌린 김민정 연출가는 이 작품으로 뮤지컬 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뮤지컬 경력이 전무했던 그녀를 협력연출로 발탁한 뮤지컬 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뮤지컬을 포함하여 기존의 사고방식에 굳어있지 않은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녀의 경력이 그런 점에 부합했다”며, 김민정 연출을 “침착하고 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외유내강형의 연출가”로 평가했다.
이어 준비기간만 1년이 걸렸던 ‘첫 연출 작’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대중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레플리카 프로덕션이라는 자유롭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배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자유로운 마음이어야 하는 어렵지만 운명 같았던 작품이었다. 뮤지컬 연출 경력이 협력연출 두 편에 불과했지만, 성실한 해석력과 감성을 극대화하는 연출력을 인정받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0주년 기념 공연의 연출을 맡아 기존의 해석을 도발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재해석 부분에 대해서는 호오가 나뉘었지만 라이선스와 재공연이 많은 업계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신진 연출가가 있다는 점은 그의 미래에 기대를 갖게 한다.
독일의 부퍼탈탄츠테아터와 영국의 호페쉬섹터 컴퍼니 등 강렬한 본능을 지닌 단체의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좋아한다는 김민정 연출가는 현재 사회성이 강한 실험적인 뮤지컬을 진행 중이라 전했다. 로맨틱 코미디나 쇼 뮤지컬이 흥행한다지만, 자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자신을 운명처럼 부른다고 느끼는 그는 “어떤 과정을 거칠지 모르지만, 나를 부르고 있으니 나는 움직일 뿐”이라 덧붙였다.
“오기가 생겼어요.” 한 가지 장르에 묶인 춤을 추고 싶지 않았던 무용학도는 우연한 기회에 본 <대장금> 초연 3차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뮤지컬 안무가 궁금해졌다. 뮤지컬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들께 한번만 만나주십사 전화를 걸었고 그런 중에 <댄서의 순정> 오디션을 보게 됐다. 이란영 안무 감독은 그가 준비해간 6분의 춤을 맘에 들어 했고, 그렇게 뮤지컬로의 인연이 이어졌다. <댄서의 순정>에 배우로 출연한 그는 이후 실제 축구를 하는 듯한 남성 군무가 매력적이었던 <뷰티풀 게임>부터 조안무 감독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3때 우연히 TV에서 댄스 가수가 나이키 춤을 추는 걸 보고 열심히 따라 했다. 춤추는 걸 반대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재즈아카데미를 다니며 백댄서 활동을 하다, “차라리 무용과를 가라”는 말씀에 대학에 진학해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하지만 한 가지 춤에만 집중할 것을 원하는 무용과 내에서 춤이라면 다 익혀보고 싶었던 그는 늘 정체성이 모호한 존재였다. 새롭고 다양한 춤에 대한 관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조안무로 참여했던 <모차르트!>의 연출가 유희성은 “원하는 춤이 있다면 일본에 가서 배워오는” 열정적인 자세를 높이 샀다. 이런 특성은 드라마에 따라 다양한 안무가 필요한 뮤지컬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그가 안무가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스페셜 레터>. <햄릿-월드버전>에서 각각 조연출과 안무 조감독으로 만나게 된 동갑내기 연출가 박인선과 의기투합한 것. ‘군대스리가’라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군무가 탄생되기 까지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실험을 많이 했다. 함께 했던 박인선 연출은 안무가로서 정도영에 대해 “드라마 해석력이 좋고,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안무에 특출하다. 작품에 맞게 다양한 춤을 구상하고, 자신의 스타일과 잘 융합해낸다”고 평가했다.
최근 공개된 <스트릿 라이프>의 연습실 영상을 찾아보면, <스페셜 레터>에 이어 남성적인 역동성이 돋보이는 안무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이 봤을 때 시선을 빼앗길만한 쇼 안무에 능한 그이지만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다. 이란영 안무가와 함께한 5년은 정도영에게 드라마의 중요성을 일깨운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음악을 듣고 그에 맞는 동작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대본이 우선이에요. 대본을 보고 드라마적으로 잘 붙는 안무를 찾죠.”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새장 속의 광인들(La Cage aux Folles)>이다. 클럽에서 일어나는 작품이라 화려한 춤이 많이 등장하지만 등장인물의 춤마다 드라마가 녹아있어 충분히 그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작품은 (용어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쇼 드라마’다. 한 작품이 쇼-드라마-쇼-드라마의 패턴으로 진행되거나 쇼를 느린 템포로 하여 뒷배경으로 보여주며 드라마를 보여주곤 하는 일반적인 방식보다는 쇼와 드라마가 무대 위에서 같은 템포로 진행되면서 조명으로만 포인트를 주는 것을 의미하는 정도영 만의 용어다.
“개성이 있는 것이 좋아요. 또, 남들이 안 하는 생각을 찾는 걸 좋아해요. 좀 그로테스크적인 것도 좋아하기도 하고요. 일반사람들이 많이 접해보지 않은 것을 하고 싶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