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인연. 두 번째 만남이라 더욱 특별한
배우 박상원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통해 3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그가 맡은 배역은 극 중 ‘브로드웨이의 제왕’이라 불리는 최고의 뮤지컬 연출가 줄리안 마쉬. 대중에게는 탤런트로 익숙한 박상원이지만, 실제로 그는 1979년 현대극장이 국내 초연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통해 연기 데뷔한 뮤지컬 1세대 배우이다. 1986년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기 전까지, 그는 현대극장을 거쳐 서울시립가무단원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 올라 실력을 뽐냈던 무용수이기도 했다.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은 이후로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남과 북-DMZ>, <벽을 뚫는 남자> 등을 통해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왔던 박상원. 데뷔 30년을 맞아 참여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에게 조금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이번 공연에서 도로시 블록 역으로 함께 출연하는 이정화에게도 마찬가지. 1996년 <브로드웨이 42번가> 국내 초연 무대에서도 그녀는 같은 역으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애니> 이후 25년여 만에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된 두 배우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워냈다.
박상원(이하 박): 여긴 처음 와보는 거지?
이정화(이하 이): 네, 와보니까 무척 오빠스럽네요. 언제부터 작업실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박: 한 15년 정도 됐지. 작년부터는 (남)경주와 박앤남 공연제작소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잖아.
이: 뮤지컬에, 드라마에, 공연 제작에, 사진까지 찍고… 너무 바쁜 거 아니세요?
박: 정말 바쁘니까 오히려 덜 바쁜 것 같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연습과 드라마 <드림> 촬영 스케줄이 겹쳐서 개인적인 일정은 잡지 않거나 모두 취소했거든. 공연이 21일, 드라마가 27일에 시작한다고 하니 다들 이해해주더라고. 연습 초반에 동선이나 음악은 미리 익혀놓고 싶어서 촬영도 열흘 정도 미뤘어. 연초에 기부한 사진전 수익금 일부가 다일공동체로 전달돼서 6월 말에 중국 훈춘에 ‘박상원 도서관’이 개관하는데, 하루가 아쉬우니까 결국 참석을 취소하게 되더라.
이: 공연 연습은 잘 하고 계세요? 전체 연습을 하려면 조금 더 지나야 할 것 같던데.
박: 응. 재밌는 건 <42번가>에서 도로시가 발목 부상을 입자 애니의 추천으로 코러스였던 페기가 갑자기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잖아. 사실 나도 처음에 그랬거든. 79년에 현대극장에 들어가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초연할 때였는데, (유)인촌 형이 갑자기 공연을 못하게 된 거야. 관객 반응이 너무 좋아서 공연 일정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거든. 그땐 커버나 얼터 개념이 없었잖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니 연락도 쉽지 않아서 결국 공연 4일 남겨놓고 리허설 하러 모여서야 그걸 알게 된 거야.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지금 영화 제작하는 (이)춘연 형과 연출하는 (김)덕남 형이 날 추천했어. 비록 프로덕션의 막내였지만 그때 내가 안무 선생님 안 계실 때 안무 지도를 했었고, 음악도 전곡 다 외우고 있었거든. 빌라도 노래 세 곡을 완벽하게 부르고 나니 그제야 표재순 선생님이 연습하라고 하시는 거야. 사흘 밤낮을 연습해서 국립극장 무대에 빌라도 역으로 무대에 섰지. 입대할 때까지 <지저스…>를 105회 공연했는데, 빌라도 역으로는 33~35회를 출연했어.
이: 정말 <42번가>와 똑같네요. 그럼 오빠는 남자 페기 소여?(웃음)
박: 그땐 정말 옛날이야. 전화라는 게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밖에. 인촌 형이 공연 40분 전까지 극장에 도착하면 난 앙상블로 출연하고, 도착하지 않으면 빌라도로 무대에 서는 거야. 근데 어느 날은 공연 20분 전에 형이 도착을 한 거야. 난 빌라도 준비를 마쳤는데. 형도 마음이 쓰였는지 나더러 공연을 하라고 하더라고. 나중에는 김의경 대표님이 공연 때문에 군대까지 미루라고 할 정도였어. 빼주는 것도 아니고, (웃음) 언젠가는 가야할 거라면 제 때 가야겠다 싶어서 군대를 갔는데 휴가 기간에 맞춰 공연할 수 있게 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셨지. 현대극장에서 작품 하면서 설도윤 대표, 이혜영 등도 후배로 들어오고 뮤지컬 시장도 달라지기 시작할 때 방송으로 방향을 틀었지. 운 좋게도 방송에서도 잘 되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렸던 것 같아. 정화 넌 <판타스틱스>로 데뷔했지? 당시 (남)경읍 형, (송)용태 영, 경주 등이 같이 출연했잖아. 방송하겠다는 너를 뮤지컬 배우로 키워보겠다고 경주가 데리고 왔던 거 기억난다. 너 처음 공연하는 것도 내가 봤잖아. 그땐 정말 꽃처럼 예뻤는데.
이: 하하. 그땐 스물한두 살 때였으니까요.
박: 그 이후로도 우리 계속 봤잖아.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애니>를 같이 했구나.
이: 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1985년 겨울에 현대백화점 지하에 새로 생긴 예술극장 개관 기념 공연이었죠? 김효경 선생님이 호출하셔서 그때 뮤지컬 활동하던 배우들 거의 다 불려가서 앙상블로 출연했던 것 같아요. (남)경주 오빠, 이지나 연출도 있었잖아요. 그땐 정말 재밌었는데.
박: 우리가 앙상블 할 때는 아니었는데, (최)종원 형, 윤석화 선배, 최불암 선생님이 계시니 딱히 할만한 역할이 없었지. 뮤지컬 프로덕션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당시에 꽤 오래 공연을 했지? 극장이 작기도 했지만 정말 관객들이 꽉꽉 찼던 것 같아. 강남에서 뮤지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야.
이: 그랬죠. 강남에 극장이 생긴 건 최근의 일이니까. 오빠는 그럼 <애니> 이후에 제 공연은 안 보셨어요?
박: 왜~ <태풍> 때도 봤잖아. 정화야 뭐 자기 몫 충분히 하면서 잘 하고 있으니까. 너도 이제 왕고참이 됐겠다?
이: 배우들 중에 제 위로는 잘 없다니까요. 오빠는 정말 오랜만에 함께 하는 선배님이세요.(웃음)
박: 넌 도로시 역이 처음이 아니지 않아?
이: 1996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42번가> 공연할 때부터 참여했어요. 페기 역에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지고 임선애라는 신인 배우가 뽑혔죠. 미국 스태프들이 오디션 심사를 했는데 그들 눈에는 동양적인 외모의 선애가 예뻐 보였나 봐요. 서러운 마음에 입이 이만큼 나와서 울면서 공연했잖아요. 그때 제가 30대 초반이었고 한창 작품 활동할 때였는데 도로시 역을 시키니까. 그래서 프로그램북 사진 보면 독살스럽게 화장을 했어요.
박: 그럼 하지말지 그랬어.
이: 당시에 가장 큰 작품이었고 외국 스태프들과 같이 작업한다니까 욕심이 나잖아요. 페기 안 시켜줘서 한 맺힌 작품이었는데, 지금은 도로시 역이 딱 좋아요. 내 얘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웃음)
박: 이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됐나 보구나.
이: 그런가 봐요. 그때는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거든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싫고 불편했는데, 이제는 도로시가 이해도 되고 공감도 가고 좋은 것 같아요.
박: 나도 줄리안이 좋아. 열정적이고 일에 대해서는 카리스마도 강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신인을 주인공으로 세울 수 있는 과감함도 있고. 캐릭터에 감정 이입도 잘 되고. 마치 현실 속의 나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 하하. 못 살아. 초연 때도 줄리안은 남자 배우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역할이었어요. 많이들 욕심을 냈지. 결국 유인촌 선배와 박철호 선배가 캐스팅됐지만. 근데 오빠, 사진은 언제부터 찍기 시작하신 거예요?
박: 데뷔하기 전부터 찍었지. <지저스…> 할 때 5개월 정도 연습하고 10일 공연하고 10만 원을 받았어. 당시에는 엄청 큰 돈이었어. 거기에 2만5천 원을 더 보태서 카메라 줌 렌즈를 샀잖아. 정화가 왔으니까 내가 재밌는 사진들 보여줄게. <지저스…> 팀 야유회가서 찍은 사진도 있거든. (윤)복희 누나도 있고, 갖가지 대표 심상태 형도 있어.
이: 스크랩북이 몇 권이야…. 이런 걸 다 모아뒀어요? 초연 포스터도 있네요?
박: 나는 공연과 관련된 건 다 갖고 있어야 해. 대본은 물론 전 캐스트들의 악보도 있어야 하고, 무대 이미지, 세트디자인 이미지도 다 달라고 해. 작품을 꿰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거든.
이: 어머, 이 사진은 무용할 때네요?
박: 79년이었나?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공연으로 로열 발레단이 내한했을 때 사진이야. 내 인생의 첫 번째 작품이었지.
이: 이런 걸 다 모아둔 거 보면 참 꼼꼼한 것 같아요.
박: 저 안에 들어가면 지금까지 내가 출연한 작품들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모아뒀어. 심지어는 라디오 녹음테이프도 있는데, 내가 녹음한 것도 있지만 팬들이 보내준 것도 많아. 옛날 팬들은 정말 헌신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다들 인터넷에 접속해서 듣고, 마음을 쉽게 옮기곤 하잖아. 진짜 팬이 아닌 거지. 난 방송 대본도 단 하나 버린 것이 없어. 대학교 1학년 때 썼던 대본도 다 갖고 있고. 자신의 전부를 담아 읽었던 대본을 녹화가 끝났다고 바로 버리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
이: 생각이 짧은 거지. 저도 프로그램북, 악보, 대본은 다 보관하고 있어요. 근데 방송 대본은 공연과 달리 그 수가 무척 많지 않아요? 쪽지 대본 같은 것도 있잖아요.
박: 내가 연기하면서 썼던 것들은 거의 버리지 않고 보관했지. 방송용 대본을 나처럼 완벽하게 다 갖고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걸. 학교 때 배우기를 그렇게 배웠어. 정식으로. 겉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중장거리나 마라톤을 뛸 때는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 정화는 나를 어느 정도 알겠지만, 내가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지만 자연인일 때는 답답하게 살지는 않잖아.
이: 연습할 때 보니까 오빠가 유연한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늘 허허허 웃으시고. 후배들과도 참 잘 지내시더라고요.
박: 옛날에 표재순 선생님이 술을 따라주시다가 나 바로 앞에서 멈춘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고. 간택 받지 못한 느낌 같은 거 말야. 그래서 <42번가>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후배들 이름을 첫날에 다 외우고 계속 이름을 불러줘. 그건 선배로서 후배한테 갖춰야 하는 예의라고 생각해. 후배들한테는 내가 얼마나 어려운 대선배겠어.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앙상블이잖아. 서로 알고 친해져야 앙상블도 나오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 내가 먼저 후배들과의 벽을 깨고 다가가야지. 밥 먹을 때도, 술 마실 때도 다 같이 움직이려고 하고. 옛날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함께 있으면서 자기 연습 차례 기다렸는데 요즘은 연습 시스템도 바뀌고,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배우들도 많아졌잖아. 옛날 생각하면 굉장히 비합리적이긴 했지만 무척 아름다웠던 시간이었어.
이: 난 오빠처럼 그렇지 못해요. ‘편하게 살자’ 주의거든요. 대신 후배들이 함께 하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아요.
박: 그래도 선배들이 중요해. 누가 사람들을 한데 모으겠어. 프로덕션 분위기가 좋으려면 나나 정화가 선배 역할을 해줘야 해. 연습할 때도 후배들한테 누가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 하고. 사실 내가 방송국에 들어간 이유가 있어. 시립가무단에 들어가서 온 종일 연습하는데 주인공은 (이)덕화 형이나 인촌 형이 맡는 거야. 주인공을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겠구나 싶더라. 대학 시절에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탤런트 시험을 볼 때도 나는 방송국은 우습게보고 무대에 서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거든. 방송 데뷔 후 다시 무대에 선 작품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었는데, 매일 연습실에 가서 다른 배우들과 같이 연습했어. 이번에는 스케줄이 겹쳐 어쩔 수 없게 되었지만 가끔 와서 연습하고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는 배우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거든. 정화 넌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서 잘 모르지?
이: 당시에는 여자배우가 많이 않았잖아요.
박: 지금까지도 쭉 주인공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건방지지.(웃음) 강선생 알지? ‘얘, 정화는 그냥 놔둬라. 주인공만 하는 애가 단역의 서러움을 알겠지. 쟤가 뭘 알겠니~.’
이: (크게 웃으며) 오빠 그런 것도 하세요? 요즘은 알게 됐지만 옛날엔 진짜 몰랐던 것 같아요.
박: 그랬던 내가 어느새 참여하는 프로덕션마다 최연장자가 되어 있더라. 이번 <42번가>는 다행히 학교 1년 선배인 한진섭 연출이 함께 하지만 말야. 그동안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면 무척 허망했을 텐데 다행히 치열하게 살아와서 슬프진 않은 것 같아. 신기한 건, 내가 79년에 <지저스…>로 데뷔한 지 30년 만에 <42번가>에 출연하잖아. 페기처럼 인촌 형을 대신해서 빌라도 역으로 무대에 섰던 것도 그렇지만, 제일 막내였던 내가 어느새 당시 추송웅 선배나 복희 누나의 위치에 서 있다는 거야. 나이로만 보면 하늘같던 선배들보다 내가 더 늙은 셈이지.
이: 가는 시간을 못 느끼고 살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박: ‘하루는 굉장히 길지만 십 년은 굉장히 짧다’는 말도 있잖아. 요즘은 정화야, 내가 작품을 보면서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작가가 얘기하려는 이야기가 리딩 한번만으로도 확확 마음에 들어오더라. 그게 인생과 연륜인 것 같아. 모르고 살아야 하는데 어느새 세상을 너무 깊숙이 알게 된 거지. 이 세상을 완벽히 통달하면 그땐 눈을 감아야 한다는데…. 아, 나 왜 이러니. 노땅 다 됐어.(웃음) 우리가 이런 얘기를 나눈 게 얼마만이니. 살다보니까 너와 이렇게 또 다시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판타스틱스>로 데뷔했을 때 정화 너 꼬시려고 참 많이 노력했었는데.
이: 그땐 오빠뿐만 아니라 많이들 그랬거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