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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우리가 정말 소통했을까 <빨래>의 나영 [No.69]

글 |박민정 2009-06-08 6,230

“‘안-녕-하-세-요?’라는 솔롱고의 첫 인사. 그의 어색한 말투를 기억해요. 그의 고유한 말투라기보다 전형적인 외국인 말투겠죠. 받침을 약하게 발음하거나 조사를 빼먹고 말하는 등… 길가다가도 이런 식의 목소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뒤돌아봐요. 꼭 솔롱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서….”
몽골 남자 솔롱고를 만나 결혼에 골인한 한국 여자 나영. 새색시 같은 모습을 기대했는데 오늘의 그녀는 좀 지친 표정이다.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두 분 이야기 듣고 싶었는데, 솔롱고 씨는 왜 함께 안 왔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좀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어색한 한국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솔롱고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난 ‘그’가 아니라 ‘그의 말’을 사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면서 나영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내게 들려준다. 어느 날 솔롱고가 그녀에게 “나영, 당신은 개처럼 친절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솔롱고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개처럼’ 이었을까. 한국어에서 ‘개’라는 단어를 붙어서 사용하는 말은 그다지 사랑스러운 표현은 아니지 않나.
“제가 일하는 서점의 사장은 언제나 설교조의 달변으로 다그쳤어요. 그의 군림하는 말을 하루 종일 듣다가 솔롱고의 어색하지만 참신한 표현을 접하면 마음의 위안이 되었어요.”
나영은 그들의 현실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 대신 피상적인 말만 이어나갔다. 몇 개월이 흐르긴 했지만 결혼할 당시의 소신 있고 용기 있는 모습에서 멀어진 그녀 모습이 낯설었다. 
“보통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잖아요. 그런데 솔롱고 씨는 용기 있고 적극적으로 나영 씨에게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솔롱고는 서툰 한국어로 말할 때에도 자기감정을 잘 표현했어요. 그게 그의 성격이겠죠. 소통의 수단이 달라진다고 그 사람이 바뀌진 않아요. 어딜 가든 누구와 함께 있든, 결국 사람의 근본적인 기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죠.” 
“나영 씨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는 없었어요?”
“물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국제결혼의 높은 이혼율을 들먹이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행복했으니까요.”  
그들은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르는 좁은 골목을 산책했고 그 남루한 풍경이 노을빛에 물들면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세상은 아름답구나’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무엇인들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무지개빛 환상(공교롭게도 솔롱고의 이름이 몽골어로 무지개를 뜻한다)은 오래 가지 않았나 보다.
“처음엔 언변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솔롱고와 난, 말을 넘어서는 그 무엇으로 소통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한계를 느꼈어요. 체화되지 않은, 단순히 학습으로 익힌 언어로 ‘사랑해, 미워해, 아름다워,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그 단어 자체를 발음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모국어냐 외국어냐의 차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 같은 모국어로 대화한다고 해도 서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솔롱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거 아닐까요?”
“어느 순간부터 그의 불평이 잦아졌어요. 결혼 후 솔롱고는 더 이상 불법 체류가 아니었고 전보다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죠.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하고… 내가 몽골어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몹시 섭섭해 했죠. 그러고 보니 한 번도 그의 몽골식 이름 ‘솔롱고스’로 불러준 적이 없네요.” 
나영은 솔롱고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점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처음 느꼈던 연민과 감동이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린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점점 피곤해졌어요. 내 말이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그는 일일이 그 뜻을 되물었고, 그 후부터 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말만 하려고 애써야 했으니까요.”
그녀는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었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밀란 쿤데라에 의하면 연민이야 말로 ‘고도의 감정적 텔레파시의 기술을 요구하는 최상의 감정’이 아닌가. 밀란 쿤데라는 ‘동정심을 갖는다는 건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의 책 속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진짜 서로에게 연민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자주 우리의 ‘약함’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쉽게 무너지고, 쉽게 사로잡히고, 쉽게 감동하고, 또 그만큼 쉽게 회복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약함’은 또 하나의 힘이 되는 거라고 서로를 위로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에 실망할 일이나 슬퍼할 일이 계속 생기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당신 남편 솔롱고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솔롱고는 몽골의 가족들을 보러 갔어요. 곧 돌아올 거예요. 솔롱고가 서울을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난 몽골에 가서 살 자신이 없거든요.”
그들이 둘다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힘없이 걷는 그녀를 보면서 부디 솔롱고가 몽골에서 하루 빨리 돌아와 그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69호 200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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