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찬란함 속에서 봄날이 눈뜰 때
자신을 브로드웨이의 미래라고 말했던 조나단 라슨이 <렌트>가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나서, 한동안 뮤지컬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뮤지컬을 만날 수 없었다. <금발이 너무해>와 같은 청소년들의 감수성에 맞춘 작품이 없지는 않았지만 가볍고 발랄한 젊은이들의 취향을 따라 갔던 작품으로서는 <렌트>의 후계자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2006년 오프 브로드웨이에 올려진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비록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지만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강렬한 비트의 록 음악을 내세워 10여 년만에 뮤지컬 무대에서 <렌트>의 영광을 재현하였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인 프랭크 베데킨트의 희곡을 토대로 만들진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2007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을 비롯해 작곡상, 안무상, 극본상 등 주요 8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권위적인 사회와 자연스러운 본능에 충실한 젊은이들이 대립하는 구도를 비롯해 등장인물이나 사건 등은 원작 그대로를 따랐지만 부분적으로는 현대적으로 스토리를 다듬었다.
어렵게 세상에 눈뜬 베데킨트의
<스프링 어웨이크닝>
<스프링 어웨이크닝>에는 엄격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눌려야 했던 세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예민한 감성을 가진 모리츠는 낙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살을 한다. 벤들라는 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되고 중절수술을 받다가 죽는다. 권위적인 사회에 비판적인 멜키오는 성적 욕망에 이끌려 벤들라를 임신시키고, 모리츠에게 써준 성에 대한 메모가 발각되면서 감화원에 감금된다. 그리고 감화원을 탈출하여 벤들라를 찾아가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덤가에서 모리츠의 유령이 나타나 그를 죽음으로 유혹 할 때 복면 신사는 모리츠의 유혹을 꾸짖고 멜키오를 삶으로 인도한다.
베데킨트가 1890년 집필하기 시작해서 1891년 완성한 이 작품은 ‘어린이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에 앞서 쓰여진 『엘린의 각성』(1887)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이고 있는데, 『엘린의 각성』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베데킨트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소재를 학창 시절 자신의 경험에서 취했다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자살한 그의 친구 프랑크 오벨린은 이 작품의 직접적인 창작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화가로서 활동하다가 자살한 모리츠 뒤르는 작품 속 모리츠 슈티펠의 모델이 되었다. 비판적이었던 멜키오에게는 베데킨트 자신의 청소년기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주석에도 이와 같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는 아무 계획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쓰려는 의도에서 쓰기 시작했다. 계획은 3장 이후에 가서야 세워졌고, 내 개인적인 경험이나 학교 친구들의 체험으로 채워졌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사건과 일치한다. 심지어는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습니다’(모리츠 아버지가 모리츠의 장례식장에서 자살한 아들을 부정하며 한 말)라는 말이 너무 지나친 과장이라고 비난받고 있는데 이 역시 실제 있었던 말이다.”
이 작품의 초판은 작가 자신이 자비로 1891년 취리히에서 출판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은 뮌헨에서 제 4판 인쇄를 할 때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혁신적인 연출가인 막스 라인하르트가 비사실주의 연출 기법으로 1906년 11월 20일 베를린 캄머슈필의 무대에 공연을 올리고 난 후였다. 초판이 발행된 지 무려 15년 만의 일이다. 작품이 올라가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베데킨트의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새로운 관심이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검열의 허가를 받을 수가 없었고, 주연급의 어린 배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빈번한 장면 변화는 당시 무대에서 실현하기에 곤란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검열의 문제였다.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베데킨트는 작품의 여러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감화원 장면(3막 4장)과 포도밭 장면(3막 6장)은 삭제되었고, 멜키오와 벤들라가 등장하는 1막 5장과 2막 4장은 수정되었다. 그밖에도 장면 중간중간 단어나 문장도 수정해야 했다. 이를 테면 3막 1장의 ‘동침’을 ‘자손의 번성’으로 대체해야 했고, ‘낙태약’은 ‘비약’으로 수정해야 했다. 풍자성을 가진 교사들의 이름도 이완시켜야 했다. ‘원숭이 기름(Affenschmalz), 통나무몽둥이(Kn웤peldick), 말더듬이(Zungenschlag), 주린배(Kahlbauch), 파리죽음(Fliegemod)’ 등 풍자성이 가득한 교사들의 이름은 ‘온순이, 착한둥이, 묵묵부답, 깜찍이, 아침노을’ 등 어정쩡한 이름으로 교체되어야 했다. 이를 다 받아들여 1906년 무대 상연본을 개작하였으나 이 개작판도 처음에는 출판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또 베를린에서 초연한 후에도 1908년 뮌헨과 1910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상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1912년 2월 29일 베를린 고등 행정 재판소에서 작품의 상연 금지 조치에 대한 폐지를 판결하면서 비로소 최종 공연 허가와 개작판의 출판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뮤지컬의 조명과 음악, 표현주의극적 요소
베데킨트가 활동했던 19세기 말 독일에서는 현실의 병폐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는 자연주의가 대세였다. 베데킨트 역시 학창 시절 자연주의 문학도들과 교류를 했지만 그의 작품은 그보다 한 단계 앞선 표현주의적인 방식을 선취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발표 당시 곧바로 공연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성에 대한 지나치게 솔직한 내용 때문이었지만, 이 작품이 가진 구성적으로 느슨한 플롯과 잦은 장면 전환을 자연주의 공연양식에서는 해결하기 힘들었던 점도 한몫 했다. 1900년대 회전무대의 등장과 사실적인 장면 묘사를 하지 않는 양식적인 무대가 도입되면서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독일 표현주의 작가인 뒤렌마트나, 서사극의 브레히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브레히트는 그를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극작가’라고 극찬하며 존경을 표시했다.
베데킨트의 작품에서 표현주의적인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모리츠가 자살한 이후 성에 대한 메모가 발견되고 학교 선생님들이 멜키오를 교무실로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교사들은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유형적 인물로 그려지는데, 학생의 진로 문제보다는 ‘창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비인간적으로 과장되게 희화시킨 교사들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남긴다. 무덤 장면에서 등장하는 모리츠의 유령은 멜키오의 죄의식을 의인화한 존재로 볼 수 있는데, 개인의 내면적인 심리를 외면화하는 것은 표현주의극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원작에서처럼 드라마적으로 튀는 부분은 자제한다. 교무회의 장면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권위적인 장면으로 만들었고, 무덤 장면에서 모리츠와 벤델라가 등장하지만 ‘Those Yor`ve Known’을 부르면서 실제라기보다는 모리츠의 죄의식이 반영된 장면으로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간다. 원작의 표현주의적인 색채가 뮤지컬에서는 음악과 조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덤 장면에서 죽은 모리츠와 벤들라가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음악과 조명이 분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핸드 마이크를 옷에서 꺼내들고 노래를 부르는데, 종종 노래를 부를 때 시간이 멈춘 듯 동작이 정지된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를 판타지로 처리한다. 이때는 시종 무채색으로 억압적인 분위기를 주었던 조명에서 마치 콘서트를 하듯 화려한 조명으로 전환하여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억압 속에서 왜곡되어 분출되는 성
벤들라는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지 못해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작품에서 젊은이들의 성(性)은 건강하게 노출되지 못하고 억압되고 왜곡된 형태로 드러난다. 한센의 자위 장면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충격적이다. 한센은 <오델로>에서 오델로 장군이 데스데모나를 살해하는 장면의 대사를 읊조리며 자위행위를 한다. 죽음으로 이끄는 힘과 성적 긴장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성적 흥분을 극대화한다. 뮤지컬에서 이 장면은 한센과 게오르그의 왜곡된 성애 장면으로 병치된다. 한켠에서 한센이 자위행위를 하고 있고 아버지는 간격을 두고 문을 두드리며 한센의 행위에 제동을 건다. 무대 다른 편에서는 게오르그가 피아노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다가 조명이 바뀌면서 선생님을 애무하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로 전환된다.
성적으로 문제가 되는 장면은 멜키오와 벤들라의 정사 장면이다. 본능에 이끌려 멜키오와 벤들라가 정사를 나누게 된다. 이들이 정사를 나누는 공간은 건초창고이다. 베데킨트의 원작에서는 “후덥지근하고 어두워. 뼛속까지 젖겠다.”(벤들라), “건초냄새가 근사해.”(멜키오) 등의 대사로 건초창고의 후덥지근하면서도 아편처럼 야릇한 냄새를 통해 둘 사이에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뮤지컬에서는 원작에서 멜키오와 벤들라가 숲속에서 만나는 장면을 두 번으로 나누어 서로에게 이끌리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첫 만남에서는 ‘The Word Of Your Body’를 부른다. 이때 서로의 손이 맞닿으며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느낀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타인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고 싶다는 벤들라가 멜키오에게 때려달라고 요청한다. 벤들라를 때리던 멜키오는 자신도 억제하지 못하는 묘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의 만남이 바로 건초창고에서인 것이다. 서로에게 생긴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서로 위로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일어나고 정사를 벌인다. 뮤지컬에서의 배경도 건초창고이지만 장소를 알 수 있는 것은 대사에 의해서일 뿐이다. 그들이 정사를 나누는 공간을 그네처럼 네 개의 줄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널따란 판자로 설정해서 성에 이끌리지만 무지로 인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심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원작에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뮤지컬에서는 한센과 에른스트가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멜키오와 벤들라가 처음 만났을 때 부르던 ‘The Word Of Your Body’를 리프라이즈해서 다소 코믹하게 연출했다. 원작에서는 둘이 이미 사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뮤지컬에서는 이 곡을 리프라이즈하기 위해 처음 서로에게 끌리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다.
삶의 에너지와 그를 억압하는 세력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기성세대의 억압된 세계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려는 청소년 세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본능을 제도화된 교육 속에 억압하려는 교사들은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교사들의 풍자적인 이름이나 희화화된 교무회의 장면은 기성세대의 비판적인 시각을 분명히 한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목사 역시 비판된다. 목사는 모리츠의 장례 때 기도를 하면서 “자기 고집대로 육신을 부정하고 주님께 바칠 영예를 악에게 바친 자는 육신의 죽음을 당하리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낙제에 대한 불안과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 모리츠는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모리츠의 아버지는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어”라며 자식을 부정한다.
연출가에 따라 대사는 그대로 두더라도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 이를 테면 기성세대에 속한 아버지의 의식세계와 아들을 잃은 비통한 마음을 충돌시켜 굉장히 가슴 아픈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에서도 이 장면은 매우 인상 깊은 연출로 표현된다. 모리츠의 무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그의 아버지는 멜키오―이때 멜키오는 꼭 멜키오라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어떤 심정일 것이다―가 천천히 다가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면 큰 뭉치의 슬픔에 얻어맞은 듯 주저앉아 오열한다.
교사, 종교인, 부모 등 원작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본연의 욕구를 부정하고 억압된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뮤지컬에서는 기성세대들을 두 명의 배우가 모두 연기해낸다. 본능적인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청소년들과, 이를 억압하는 기성세대를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교사, 목사, 부모들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다소 사회상을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긴 하지만 19세기 말 팽배한 억압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십분 이해가 간다.
베데킨트의 원작에서는 무덤 장면에 복면신사를 등장시켜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멜키오를 이끈다. 모리츠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제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일제는 의미상 복면 신사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복면 신사가 등장하지 않으며 일제에게 현실을 벗어난 일탈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구원자 대신 젊은이들의 분노가 춤과 노래, 욕설로 표출되고 해소된다. 엄격한 교사의 불만을 담아낸 ‘The Bitch Of Living’이나, 모리츠가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분개해서 부르는 ‘Totally Fucked’에서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거친 욕설과 록 음악으로 방출한다. 특히 ‘Totally Fucked’에서 안무가 빌 T. 존스는 거의 몸부림에 가까운 춤으로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표출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