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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형제는 용감했다> 김도현 [No.106]

글 |김슬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심주호 2012-07-12 5,330

 

배우의 낭만을 꿈꾸는 배우

 

정말 청산유수에 달변가다. <형제는 용감했다>로 시작된 이야기는 배우로서의 삶과 연기, 인생 전반을 넘나든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 한다고, 어쩌면 배우라는 존재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외로워서 그만큼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강한 이들이 아닐까, 라고 자못 진지해졌다가도,“<형제는 용감했다> 잘 되면 전 배우, 전 스태프 모두 안동에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거 잊지 않으셨죠?!”라고 이내 장난스런 협박(?)을 꼭 기사화 해달란다.

 

 

안동의 종갓집 사람들은 어쩌면 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금 먼 나라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용감했다>가 벌써 몇 년째 공연을 거듭하며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저력을, 김도현은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 조금만 뒤집어 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종갓집처럼은 아니지만 다들 제사지내고, 명절 때는 차례지내야 하고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재래문화를 물려줘야 하는 부모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걸 이어받아야 하는 자식들도 있으니까요.”


자신이 맡은 석봉 역할은 오히려 도화지를 깔고 하얀 배경이 되어주는 기능이라고 한다. “석봉은 말하자면 실제로는 B급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인데, 엄청난 의무감만 떠안고 있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죠. 그런 보편성을 가지고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저 묻어가지도 않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석봉이 중심인물임에는 분명하나, 그 자신은 오히려 다른 모든 이들이 더욱 선명해 보일 수 있도록 연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는데, 제가 가진 색깔이 그들과 같은 색이거나 섞여서 이상한 색이 되어버리면 곤란하거든요.”


최근에 그는 그간 해왔던 작업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마음을 빼앗겼던 인물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극단에 처해있는 인물들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평균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김도현 연기 요즘엔 별 거 없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요즘 평범한 역할들에 대해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칫 존재감 없어 보일 수 있는 역할인데, 김도현이 하면 중심은 잘 잡더라,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그는 대사의 어미 처리 하나, 구부정한 등의 기울기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연기를 고민하는 것이다.

 


대학로에서 처음으로 정식 계약을 하고 공연했던 것이 1999년, 벌써 10년이 넘게 무대를 지켜왔다. 어쩌면 자연스레 배우로서의 삶을 돌아보고, 또 새로운 앞날을 내다봐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애써 부인하려고 해봤는데, 이제는 청년 배우로서 막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치기 어린 젊은이로서가 아니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최근에 자신이 너무 진지해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와의 인터뷰에서 느껴졌던 건 자신의 뜻대로 삶을 뜨겁게 향유할 줄 아는 열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조심스레 아버지 얘기를 물었다. 분명 편안하거나 반가운 질문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는 조근조근 말을 고른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故김동훈 선생은 그에게 늘 10년 후를 내다보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어릴 때였지만 그 말씀만은 제게 아주 강렬히 남아 있어요. 그땐 내일 당장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던 때인데 말이죠. 아버지는 저에게 모든 것의 기준이에요. 물론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는 일상의 신 같은 개념이라고 할까요.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도, 아버지는 저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활동하셨던 거잖아요. 전 그보다 더 잘해야 아버지한테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화술’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는, 이전에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100년 후에 21세기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이 내 대사를 참고했으면 좋겠다’라고. 무슨 뜻인지 재차 물으니 조금은 낭만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영국의 로열셰익스피어 극단 배우들은 작위도 받는다고 하잖아요? 그게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배우라는, 소위 ‘딴따라’를 귀족으로 대우해 준다는 것도, 그렇게 해도 전 국민이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도.(웃음) 그들이 생각하는 배우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나잖아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영어를 공부하러 온 외국인들에게 제일 먼저 극장에 가라고 얘기한다. 배우의 화술은 정확하게 다듬어진 동시대 언어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듯 배우의 대사가 가장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던 그가 뮤지컬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언젠가 어떤 뮤지컬 넘버를 듣는데, 저 가사를 만약에 독백으로 바꾼다면 저렇게 호소력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럴 것 같지 않았어요.” 참으로 배우다운 접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그는 뮤지컬과 연극, 방송을 넘나드는 활동을 하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한테 뮤지컬은 일종의 광장 같은 느낌이에요. 여러 방향으로 뚫린 길들이 그곳에서 만난다고 할까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만나는데, 자기 고유의 색깔을 좀 줄이고 뮤지컬이라는 이름하에 하나로 어우러지죠.”


 

이제 막 상반기가 끝나 가는데, 올해에만 벌써 6번째 작품을 하고 있다는 그는 그것이 관객들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지난 2년간 뮤지컬을 아예 쉬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고, 이제는 새로운 문을 열 준비를 마쳤기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고. “그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장르와 작업들에 대한 가능성들을 열었어요.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시간들을 계속 가질 거예요. 다만 이제는 뮤지컬과 병행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해서 올해는 정말 죽도록 달려보겠다, 생각하고 있죠.” 용감한 그의 도전이 쉼 없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더 깊은 눈을 가진 배우로 그만의 무대를 지켜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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