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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ERSONA] <식구를 찾아서> 지화자 [No.105]

글 |이민선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2-07-02 4,702

       내 마음에도 꽃이 피면

 

언제나 상냥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밝게 웃는 지화자 할머니이지만, 사는 동안 어찌 그에게도 고난과 역경이 없었겠는가. 여든 해에 가까운 인생의 시간은 그녀에게 웃음으로 슬픔도 외로움도 다 털어버리는 현명함을 안겨 주었나보다.

* 이 글은 지화자를 연기한 배우 주은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편지에 쓰인 주소 하나만 가지고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노인 병원에서 6개월간 있었는데, 더 이상 못 있게 하더라구. 나와서 집으로 갔는데, 집이 없어졌어요. 담보로 넘어갔다나. 아들은 북경에서 안 왔는지 소식이 없고. 그날 이웃집에 묵으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주위에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들을 찾을 길은 오로지 이 주소밖에 없으니까 첫차 타고 무작정 내려왔지. 물어 물어서. 대구에는 처음이었어요.


힘들게 주소지에 찾아왔는데, 생각지 못한 행색의 집인데다가 아들은 없고 다른 할머니만 있어서 무척 황당하셨죠?
그랬죠. 황당하고 놀랐고, 좀 무서웠지. 느낌이 확 오더라고. 아닌가, 일이 잘못됐나, 못 만나는 건 아닌가? 게다가 박복녀 할머니는 성을, 성을 내지.


박복녀 할머니가 매몰차게 몰아냈는데, 그래도 그 집을 떠나지 않으셨네요.
헤헤, 갈 데가 없으니까. 여기가 아님 다른 데 가서 찾을 방법은 더더욱 없잖아. 아들이 하필이면 이곳 주소를 적은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여길 와봤거나, 여기 땅을 사려고 둘러봤거나. 우리 아들이 사업을 했거든. 그때 당장은, 딱 봐도 아들 흔적은 없고, 우리 아들이 사는 집은 아닌 것 같았지만 나갈 수는 없었어요. 내게 뭐가 있어. 몸뚱어리랑 가방 하나 그게 단데, 달리 머리를 쓰고 생각할 상황이 못 됐지. 그냥 에라 모르겠다, 버티자, 그랬어요.

 

아들이 원망스러웠죠?
뭐… 그, 그렇죠. 이놈이 왜…. 근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집도 다 넘어간 상황이니…. 물론 괘씸하고 밉고 왜 연락을 끊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걱정이 더 많이 됐어요.

 

승진 씨는 어떤 아들이었나요?

아래로 동생들이 많았는데 내가 걔네들 다 돌보고, 막내는 내가 키우다시피 했어요. 우리 막내가 정말 예쁘게 생겼어요. 그래서 시집올 때 제일 눈에 밟히는 게 막내였어. 안 떨어지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거든. 그런데 시집오니까 고것이랑 똑같이 생긴 게 있더라고. 다섯 살 먹었는데, 애가 숫기도 없고 문 뒤에서 요렇게 쳐다보고 도망가는 게 너어무 예뻤어. 이 아이 하나가 내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지. 시어머니나 남편이나 누구 하나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어디 기댈 데도 없는데, 우리 잘생기고 잘난 아들, 고거 하나 보고 살았지.


아들도 어머니를 잘 따랐고요?
음 뭐, 내 생각에는, 그래도 잘 해준 것 같아요. 우리 승진이가 내성적이에요. 다른 애들처럼 싹싹하고 활달하고 그렇진 않았는데, 크게, 저기 뭐, 부딪힌 일은 없었어요.


시집가서 가장 힘들었던 건 뭐였나요?
내가 시집올 때, 남편이 아팠어요. 뭐, 난 일꾼으로 들어간 거지. 난 남편 병 수발하고, 남편은 남편 구실 한번도 해본 적 없이 저세상 갔고. 집안에 돈은 있는데, 돈을 계속 퍼 쓰는 상황이었어요.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남편 죽고 나서 몇 년 후에 내가 남은 돈으로 식당을 차려서 자식 하나 있는 거 키우면서 살았죠.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거, 나를 식구로 인정해주지 않는 거, 너무 외로웠어요.


이렇게 애교 많고 늘 곱게 웃으셔서 외로움을 아실 분 같진 않았어요.
호호호.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더 얘기도 잘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아유, 그렇게 사는 게 좋더라구. 힘들다고 얼굴 찡그리고 그러는 것보다 노래 한번 하고 산에 한번 올라갔다 오고, 그렇게 사는 게 좋아.

 

아, 시골 생활은 처음이신데 힘들지 않으세요?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처음엔 방에서 부엌 한 번 가려 해도 마루를 내려갔다 올라갔다, 아유. 집 앞에 가게가 하나 있길 하나, 뭐 하나 사려 해도 한참 나가야 하고. 그리고 내가 또 겁이 많거든. 시골은 밤에 깜깜하잖아. 밤만 되면 너무 무서워, 그게 제일 무서워. 헤헤헤. 그런데 복녀 할머니는 불도 잘 못 켜게 해.

 

그래도 고모동 이 동네에서 좋은 건 뭔가요?
내가 꽃을 정말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집 앞에 꽃밭을 만들었어. 사계절마다 다른 꽃들 심고, 꽃들이랑 이야기하고, 나 그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 옷도 꽃무늬만 입잖아. 호호호.


박복녀 할머니랑 워낙 스타일이 달라서 원망스러울 때도 있죠?
복녀 할머니가 잔소리를 많이 하거든요. 난 만날 야단을 맞는 거야. 그리고 복녀 할머니는 뭘 버리질 않아. 창고에 차고옥차고옥 쌓아두거든. 나는 꺼내서 쓰곤 필요 없으면 버리고. 만날 짜증부리고 혼내, 우린 너무 안 맞아. 헤헤헤.

 

그래도 정도 많이 드셨잖아요. 복녀 할머니를 첫인상과 달리 보게 된 건 언제였어요?
그게, 사진관에서. 내가 이렇게 복녀 할머니 화장을 해주는데 얼굴이 참 곱게 생겼더라고요. 눈도 참 예쁘고. 그동안에는 못 봤던 수줍은 모습도 보고. 아이고, 예전에는 참 예뻤겠네, 당신도 참 힘들게 살아왔구나, 수고 많았구나, 이렇게 쓰다듬어 주고 싶더라고. 복녀 할머니가 말은 무뚝뚝하게 해도, 내게 뭐 필요한 거 없냐, 뭐 먹고 싶냐 물어보고 사다주고 그래요. 남편 같아. 호호호. 우리 남편도 그렇게는 안 해줬거든. 늘그막에 누군가 날 챙겨주는 느낌을 처음 받아. 헤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서 아들을 기다려보는 것밖에 없겠죠?
노인 병원이랑 아들이 알 만한 사람들한테 여기 주소랑 연락처를 다 알려줬어요. 더 이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들이 찾을 때가 되면 찾아올 테고, 찾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들 만나면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아들이 좋아하는 거 만들어다 한상 딱 차려서 밥 먹고 싶죠. 내가 요리를 잘하거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5호 2012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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