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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김종욱 찾기> 첫사랑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No.89]

글 |이민선 2011-02-15 6,156

  <김종욱 찾기>

 


“음……. 벌써, 대머리가 됐던데요?”
카페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남자는 여자가 나오자마자 “그 남자는 어떻더냐”고 물었고, 위와 같은 답변이 돌아오자 남자는 아닌 척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카페에서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첫사랑. 7년 전만 해도 턱 선의 외로운 각도와 콧날의 날카로운 지성을 자랑했던 그 남자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인지, 아니면 정말로 머리숱이 적어졌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첫사랑을 사막에서 발견한 신기루 같은, 삶의 에너지가 되는 환상으로 남겨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사랑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는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로맨틱 드라마가 보여주는 결말의 정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새로운 사랑에 희망을 안겨주는 일은 얼마나 인간적이고, 또 쉬운가.


여자는 7년 전 인도 여행에서 첫사랑 김종욱을 만났고, 귀국 후 헤어진 첫사랑을 이제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첫사랑과 왜 헤어졌나, 아니 왜 시작도 안 했는가? 운명적인 사랑을 원했던 그녀는 우연히 만난 김종욱이 ‘정말 내 운명이 맞다면 아무리 밀어내고 돌아선대도 꼭 한번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번번이 그들의 인연을 시험했다. 오사카행 비행기 안에서도, 인도의 자이살메르에서도, 귀국길의 공항에서도 일부러 상대를 피하면서 말이다. 하늘이 맺어준 상대라면 헤어지더라도 꼭 다시 만난다고 믿는 사람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영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 사라 역시 부메랑처럼 돌아올 인연을 바라며,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의 연락처가 적힌 지폐는 사탕을 살 때 지불해버리고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초판 영역본 도서는 어느 헌책방에 팔아버렸다.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이 책이, 이 돈이 돌고 돌아서 서로에게 가겠죠?”라며. 영화에서 두 남녀는 ‘세렌디피티’라는 제목처럼 상대에게 돌아온 헌책과 지폐를 통해 운명적인 사랑을 확인하는데 이런 낭만 100퍼센트의 결말이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 치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사라가 헌책방에 팔았던 책이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로 유명한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첫사랑과 헤어진 후 50여 년을 기다렸다가 첫사랑의 여인 페르미나 다사에게 다시 구애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이야기이다. 열일곱 살의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열세 살의 페르미나 다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시와 음악, 춤을 즐겨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청년이었다. 김종욱의 턱 선에 버금가는 그의 외모에 대한 표현은 이렇다. “그는 비쩍 마른 체격에 머리칼은 원주민처럼 새까맸고 향내 나는 포마드를 잔뜩 발랐으며, 근시 때문에 안경을 썼는데 그것은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그의 애처로운 모습을 더욱 부각시켰다.” 어딘지 모르게 가냘파 보이는 외모는 뭇 여성들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며, 감상적인 취미는 여심을 흔들곤 하지 않는가. 20세기 초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글이나 끼적대는 폐병 환자 같은 외모의 남정네들이나 술에 찌들어 살면서도 여자들은 꼬이는 치들처럼 말이다. 우체국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던 플로렌티노는 전보를 전하러 간 집에서 처음으로 페르미나를 보았고, 그 후 그녀의 학교 앞 공원의 벤치에 혼자 앉아 매일 그녀를 훔쳐보았다.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족해 ‘점차 그녀를 이상화시켰고, 검증할 수 없는 미덕과 상상의 감정을 그녀에게 부여하곤 했다.’ 우리가 보지 못한, 한 여자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던 김종욱의 콧날에 부여된 지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아버지를 둔 페르미나는 엘리트 의사 우르비노와 결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티노는 첫사랑 여인에 대한 열망을 식히지 않고, 50여 년이 지나 우르비노 박사가 죽고 난 후 페르미나를 다시 찾아가 사랑을 구한다. 노인이 된 그들이 다시 만나 우여곡절 끝에 함께한 일은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당시 곳곳에 퍼진 콜레라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할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배에서 내리지 않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콜롬비아 해안 지방을 배경으로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이 기나긴 소설은 이 시기의 콜롬비아의 정치사와 사회상을 개관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고 있으며,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로 본다고 해도 순수한 사랑보다는 성적 금기와 억압에서 벗어난 에로티시즘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플로렌티노의 첫사랑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가 페르미나에게 보여준 열정은 지독하리만치 병적이다. 병에 걸린 사회에서 질병 같은 첫사랑을 앓은 남자의 이야기를 ‘콜레라 시대’라는 제목으로 포괄하고 있는 셈이다.

 

                    


첫사랑을 추억하는 소설과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시간이 흐른 후 과거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데 적극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아름답게 기억하는 첫사랑의 이미지가 실제로는 상당 부분 변질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의나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플로렌티노는 어떻게 첫사랑과 재회하고 또 여생을 함께할 수 있었을까? 그는 늙어가는 페르미나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으며, 마음속 동정은 잃지 않았지만 육체적인 자유를 누림으로써 아주 ‘쿨’하게 첫사랑을 간직했다. 게다가 다시 그녀 앞에 서기 위해  50년이나 기다리지 않았는가.


이리도 용감하게 첫사랑을 다시 만난 유명 인사로 ‘위대한 개츠비’ 씨를 빼놓을 수 없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연인 데이지와 헤어진 개츠비는 5년이 지난 후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이미 결혼했음을 알게 되고, 돈 많은 남편을 곁에 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재산을 모은다. 데이지와 다시 만난 개츠비는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로 첫사랑을 되찾는 환상과 이상에 젖어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흥청망청하던 시기의 미국에서, 큰 저택을 짓고 파티를 즐기며 사람들과 어울리던 개츠비가 마음속에 품었던 것은 물질적 성공을 향한 기대와 첫사랑에 대한 성취욕이다. 그는 첫사랑 데이지를 다시 만나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을 갖고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개츠비의 첫사랑에 부여한 것은 전후의 회의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이상과 환상의 힘이다. 결국 개츠비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목숨도 빼앗겼지만, 꿈을 이루려는 열의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던 이 낭만주의자의 ‘위대함’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의 입을 빌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라고 동경심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여하튼 개츠비와 첫사랑의 재회는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 용감하고 위대했을지언정, 첫사랑과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일은 늙어 죽든가, 총에 맞아 죽든가, 하여간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일인가 싶어 참으로 마음이 팍팍하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은 변변치도 않았을 첫사랑에 목숨 걸기보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데 더욱 큰 열의를 갖게 된다. 실패한 일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덜 두려우니까. 그리고 뭐, 첫사랑이 별건가. 지금 내 곁의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최면 거는 수밖에. 아니면 또다시, 순서 매기기도 귀찮은 ‘새로운 첫사랑’을 만나거나!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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