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8일 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과와 한국뮤지컬 창작연구소가 주최하는 ‘한국 창작뮤지컬 활성화 방안을 위한 세미나’가 신촌의 더스테이지에서 열렸다. ‘한국 창작뮤지컬 제작의 바람직한 프로덕션 모델 구축방안’에 대한 토론은 세 시간 동안 2부에 걸쳐 ‘한국적인 소재 발굴과 제작’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1부는 뮤지컬 연출가 김규종이 진행을 맡았으며, 청강문화산업대학의 이유리 교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조광화, 장소영 작곡가, 뮤지컬 칼럼니스트이자 제작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용신이 발제자로 나서, 각자 준비해온 분야별 소주제에 대한 발제를 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흐름과 극복 과제
“앞으로 우리 뮤지컬 시장의 화두는 창작뮤지컬이 될 것”이라며 서두를 뗀 이유리 교수는 한국 창작뮤지컬이 기존에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져 왔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시대별로 구분했다. 예그린 악단이 활동했던 1960년대부터 88예술단과 동랑레퍼토리 극단이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까지를 태동기로, 삼성영상사업단이 활동했던 1990년부터 10년간을 도약기로, 공연 전문 프로듀서들이 등장하며 산업화의 길을 들어서게 되는 2000년대를 성장기로 나누었다. 또한, 대형 창작뮤지컬의 실패와 흥행에 따른 변화와 해외 진출, 뮤지컬 페스티벌의 활성화, 창작 지원 제도의 변화 등 최근의 한국 뮤지컬의 현안도 조목조목 설명하며 한국 뮤지컬이 극복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 - 빈약한 소재와 스토리텔링, 부족한 창작 인력, 미비한 개발 지원과 투자 여건, 협소한 내수 시장의 한계, 뮤지컬 전용극장의 부족-을 짚었다.
서양의 그릇, 한국의 정신?
두 번째 발제자인 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는 “세계의 보편적 드라마에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화두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다”면서 자신이 참여했던 작품 <서편제>와 <남한산성>의 작업 과정을 예로 들며, 전통적 소재를 취한 창작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말했다. <서편제>의 경우 ‘판소리’라는 한국적 소재를 음악으로 풀기보다는 극의 소재로 풀어내며 뮤지컬적인 면을 살렸으나 관객들이 가진 작품에 대한 선입견에 부딪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한계를 지적했고, <남한산성>은 시대극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역사를 다루며 쉽게 빠질 수 있는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기대지 않기 위한 노력이 힘겨웠다고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 선보일 작품 <프랑켄슈타인>(가제)에 대해 미리 들려주었는데,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모티프를 가져오지만 배경은 조선시대로 풀어 나가려 한다며, 전통적 소재로 만드는 창작뮤지컬에 대한 작가.연출가로서의 시선을 차근히 풀어갔다. 그는 뮤지컬이라는 서양의 그릇 안에 보편적인 정신과 원형을 담은 드라마와 캐릭터를 한국적 판타지와 감각으로 포장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작업 중이라고 발제를 마쳤다.
한국적인 소재로 뮤지컬 음악 만들기
이어 장소영 작곡가 본인이 작업했던 작품의 경험을 토대로 발제가 계속되었다. 최근에 서양 음악에 한국 음악을 접목시켜 글로벌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며, 국악의 받고 매기는 기법이 뮤지컬에서 꽂히는 멜로디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전했다. <영웅을 기다리며>에서는 조심스럽게, <형제는 용감했다>에서는 조금 더 과감하게, <피맛골 연가>에서는 아주 대범하게 국악과 양악의 음악적 접목을 시도했는데, 작업을 하면서 독창적인 느낌이 들 수 있는 좋은 조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작곡가의 입장도 밝혔다. 이에 더하여 한국 음악을 뮤지컬에 사용하는 자신만의 세 가지 방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첫째는 한국 음악에 서양 악기를 사용하는 방법, 둘째, 서양 음악에 한국 악기를 사용하는 방법, 셋째, 서양 음악에 원래 있었던 전래 동요, 민요, 연주곡을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창작자를 위한 제언: 전통 소재와 창작의 출발점
“사실 뮤지컬과 전통 소재라는 만남을 왜 해야 하는지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운을 떼며, 조용신 감독의 마지막 발제가 이어졌다. 영화의 경우 산업 성장을 위해 전통적 소재를 굳이 이용하려 하지 않았던 점, 오히려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한 SF나 블록버스터급 판타지물이 참패했던 사례를 꼽으며 왜 전통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 다른 콘텐츠보다 뮤지컬장르에서 중요해졌는지에 대한 배경을 말했다. 첫째, 그동안 우리가 경험적으로 답습한 서양에서 온 뮤지컬은 역사극이 많아 이를 장르적 소재와 같이 이해하게 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 두 번째, 전통적 소재를 끊임없이 시도했던 공공 단체가 창작뮤지컬의 맥을 이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매력을 가진 장르인 뮤지컬은 그 안에서 음악과 드라마가 싸우게 되는데,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역사적인 스토리와 위인 같은 캐릭터가 음악이 등장하는 상황의 어색함을 상쇄시키며 포괄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피지컬 프로덕션의 비주얼을 담당하는 무대 세트에서 역사물이 현대물보다 환상을 그리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실질적인 이유로 들었다. 이어 창작자를 위한 제언으로 창작자가 가진 아이디어, 소재 등의 기본 요소를 뮤지컬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음악이 단지 드라마를 윤택하게 해주는 조미료의 역할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다른 장르로 표현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 음악은 드라마를 최종적으로 휘감아서 정리해줄 수 있는 위상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2010년에는 이러한 음악적 도전을 했던 창작 작품이 많았고 그런 음악의 도전이 창작뮤지컬 발전 과정의 역사가 되리라 본다고 전했다.
이어진 2부 토론 시간은 조용신 감독의 사회로, 뮤지컬 해븐의 박용호 프로듀서와, <피맛골 연가>, <모차르트!>의 연출가 유희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제작자와 창작자의 입장에서 현재까지 창작뮤지컬의 성과와 발전을 위한 개선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창작자들의 꾸준한 연구와 그를 밑받침할 수 있는 제작 여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는데 국내 창작 여건과 공모전 등에 대한 창작자와 제작자의 상반되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토론을 마치며 이유리 교수는 “세미나를 기획하면서 늘 느끼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제작자와 창작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과, 어떤 주제를 정해도 결국에 참여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원론적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뮤지컬 시장이 원론을 해결해야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리는 내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국 뮤지컬의 세계화가 필수인데, 그러기 위해 자유롭고 다양한 소재의 발굴 그리고 창작진의 끊임없는 연구와 그를 뒷받침할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창작자와 제작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더 많은 준비를 통해 세미나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날의 세미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관계자, 관객들이 모여 한국 뮤지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는 의미 깊은 자리였다. 특히 작곡가, 작가, 연출가, 평론가, 그리고 제작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 창작뮤지컬에 대한 노력과 비전을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객석에도 뮤지컬 연출가, 관계자, 작가, 마니아, 학생들이 가득 차, 뮤지컬 현안에 대한 토론의 장이 그동안 부족했으며 이러한 자리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을 방증해주었다. 더 많은 소통의 장이 형성되어 뮤지컬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계속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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