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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ersona] 먼 곳에서 오는 상처 <위대한 캣츠비> [No.86]

글 |박민정 일러스트레이션 | 권재준 2010-11-12 5,598

 

하운두는 사과를 깎으려다 말고 그냥 껍질째 베어 물었다. 그는 반짝이는 칼날을 보면 날선 칼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드는 상상을 하게 된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흉터가 남아있다. 상처가 아문지 오래인데 아직도 칼을 만지는 것이 무섭다. 칼에 찔렸던 불쾌한 기억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흉터가 생기면서 살이 조금 더 딱딱해졌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하운두는 부드러움을 잃었다. 무방비 상태로 기쁨을, 만족감을, 희열을 표현했던 때가 까마득하다. 겁 없이 맹수의 우리로 아장아장 기어들어갔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야성은 이제 없다.


무표정한 하운두 옆에 나란히 앉은 캣츠비가 속없이 웃는다. 으하하하하,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큰 소리로 웃는다.
“넌 순수한 거냐? 멍청한 거냐?”


다른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드는 하운두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그대로 간직한 캣츠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캣츠비는 6년 사귄 여자 친구가 버리면 버림받았고, 다시 찾아오면 망설이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상황을 억지로 바꾸려하는 법 없이 물 흐르듯 유연하게 살았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좀 투덜댔지만 뭔가 바꿔보기 위해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반면 하운두는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았다. 그는 일단 눈앞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했다. 섣불리 짐작하기보다는 일단 겪어보고 판단하는 쪽이었다. 자신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물 아래 감춘 두 발을 분주하게 내저으며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과시하려 했다.


“운드야, 나 아무래도 멍청한 게 아닐까? 널 죽이고 싶었던 마음은 다 잊어버렸어.”
“그래, 캣츠비 너, 참 단순하고 밝은 놈이다. 상처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사람 같군.”
“뭐, 어쨌든 페르수가 내 곁에 다시 왔으니까.”
“사랑 때문에 마음이 너그러워 지셨다? 안심하긴 일러. 넌 아직 페르수를 몰라.”


하운두는 누구보다도 페르수를 잘 안다고 자부했다. ‘미운오리새끼’의 상처를 모르는 캣츠비는 끝내 그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네가 페르수와 연애하기 바쁠 때 난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돌렸어. 취직을 했고 돈을 벌었지. 넓은 세상으로 나가니까 날 멋진 놈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야. 그런데 날 모르는 사람들이 칭찬해주면 듣고 있기가 어색했어. 그들이 진짜 내 모습을 알면 날 싫어할 것 같았거든.`
“진짜 네 모습이 뭔데? 네 껍데기도 너고, 네 알맹이도 너라구!”
“미운오리가 백조가 되면 뭐하냐. 어릴 때부터 자기와 다르게 생긴 오리들한테 구박받은 기억이 발목을 잡히는데.” 
“그게 페르수를 아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우린 서로의 상처를 금방 알아봤으니까.”


캣츠비는 하운두의 거만한 태도에 콧방귀를 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운두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캣츠비, 넌 투명하고 맑은 물 같아.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만 그 쨍한 맑음이 뭔가 불안해. 물이 맑을수록 깊이를 짐작하기가 힘들지. 얕은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 빠져죽을 수도 있잖아?”
“……”
“너무 실망 마라. 너의 그런 면을 페르수가 좋아했는지도 모르지.”
“…….”
“그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욕망을 안다는 거야. 넌 아직 페르수가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
“난 내가 원하는 것조차도 모르는데 뭘.”


하운두는 행복을 성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5분 더 생각하는 대신 5분 더 일찍 나서서 원하는 것을 찾으러 간다. 원하는 걸 가져본 사람만이 성취하는 즐거움을 아는 법이다. 마음속에 무기력이 싹을 틔우고 삶을 갉아먹기 전에 몸을 움직였다.


“캣츠비, 넌 포기가 빠르고 수동적인 게 문제야. 언제까지 페르수가 네 곁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그런데 너처럼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 아니야?”


하운두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닌 척했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졌던 페르수가 왜 등을 돌리게 되었는지 모르지 않았다. 사실, 페르수에게 부담을 느낀 하운두는 그녀의 넘치는 열정을 교묘하게 메마르게 했고 예민한 페르수가 재빨리 그의 마음을 파악한 것이다. 하운두의 말투나 표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운두의 심장에서 퍼져 나오는 내밀한 파동, 그 메시지가 너무나 명징했던 것뿐이다.


“내 말 듣고 있어? 사람의 마음은 안간힘 쓴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캣츠비는 반복해서 소리쳤지만 하운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왜 고통에 대한 반응이 늘 뒤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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