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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블랙메리포핀스> 강하늘 [No.105]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12-06-11 5,952

 

꺾이지 않는 고집  

 

강하늘을 처음 본 건 2009년 <쓰릴 미> 연습실에서였다. 이름 세 글자로 그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을까 싶은 말간 얼굴의 소년은 새하얀 도화지처럼 빛이 났다(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그는 프로덕션의 제안을 받아 언더 스터디로 작품에 참여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삶의 고통이라곤 모를 만화 속 아이 같은 모습은 꽃미남 배우의 등장 그 이상을 기대하게 하진 않았다. 그런데 강하늘은 젊고 예쁜 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타고난 외모라는 장점을 이용하는 대신 좀 다른 길을 걸었다.

 

 

캐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만 해도 관심을 모을 만큼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쓰릴 미>로 혜성처럼 등장한 강하늘이 그 후로 3년 동안 출연한 건 겨우 세 작품. 자의였을까,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출연한 작품을 살펴보면 연기자로서의 지향점이 뚜렷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그가 선택했던 소재나 장르가 제각각인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왕세자 실종사건>, <블랙메리포핀스>는 소위 말하는 작품성 있는, 영화로 치자면 독립 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니까. 연기자로서의 신념을 필모그래피로 보여주겠다는 고집이 느껴진다. “몇 년 전에 우연히 권위 있는 예술 영화제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 심사위원 선정 기준은 필모그래피래요. 유명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연출한 작품들로 그 자격을 얻는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자신의 신념대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것, 그게 줏대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저를 볼 때 중심이 서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자, 살아가는 기준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지나치게 진지한 건 아닐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고, 또 그 나이 대에 하고 싶은 청춘물에 관심이 많지 않을까? “주위에서 네 나이 대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물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 공연이든, 영화든,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좋은 작품을 하고 싶거든요. 공연 쪽에서는 운이 좋아 시작이 좋았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제게 어느 정도의 선택권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나 방송 쪽에서는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인지도를 쌓으려면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공연 쪽에서만큼은 제 무게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상한 고집이라면 고집인데, 전 그렇게 가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 중 고집이 세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의 고집에 대해서라면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정도다. 특히 연기라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고집있게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진지한 배우라는 수식어는 괜히 얻는 별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생각이 도리어 연기를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접어도 될 것 같다. “<쓰릴 미> 때까지는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시선을 어디에 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잖아요.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게 좋은 연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보여준다는 건 관객들에게 ‘내가 이걸 할 테니까, 여러분은 이걸 느끼세요’라고 강요하는 거니까. 그냥 보여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온전히 극 안에 집중했을 때의 여유로움, 그게 제가 이번 작품에서 얻어 가야 하는 거예요.”

 


무엇이 그를 이렇게 성숙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제가 어렸을 때 왕따였어요. 초등학교 때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초고도비만아였거든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성격은 내성적이 됐죠.”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을 온전히 인정하게 된 건 그가 이어서 덧붙인 말이었다. “중학교 때 내가 이대로 뭐가 될까 싶어서 살을 빼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자신감에 차서 학교를 방방 뛰어다녔죠. 근데 담임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자신감과 자만의 차이를 알라고. 그때 정말 뭔가 쿵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1차원적으로 생각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진지하다고 해서 반듯하기만 할 거라고 오해한다면 그건 그를 잘 모르는 것이다. <왕세자 실종 사건> 마지막 공연을 하고 나서 어쩐지 집에 가기 싫은 마음에 돌연 전주로 내려가서 치킨을 먹고 여관에서 하룻밤 묵고 오고, 차비만 들고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거지가 돼서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가 거리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다.이건 친구들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을 아꼈지만 몇 번의 추궁 끝에(?) 털어놨다. “번화가에서 하얀 소복 입고 하회탈 쓰고 1인극을 해요. 컨셉을 잡고 대본 아닌 대본을 만들어서 공연을 하는 거죠. 커플에게는 내가 탈을 벗으면 여자친구가 나한테 반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고. 하하. 관객들하고 노는 게 재미있어요.” 그는 거리 공연이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리에서 표현한다는 자체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금 준비 중인 레퍼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어느 날 뉴스에 거리에서 로미오와 티볼트가 싸우는 소식이 나오면 저인 줄 아세요.”


신인 연기자들이 늘 그렇게 말하듯 강하늘 역시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강하늘입니다’ 하고 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제 꿈이에요. 배우는 불가능이 없는 어떤 존재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가 그만한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이 정도면 배우지, 하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고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얼마큼의 진심이 담긴 말인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도록 하자. 강하늘에게 완전히 매료된 건 이 말이다. “좋은 연기자는 너무나 많지만 배우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아직 없어요. 제가 배우라고 부르게 될 사람은 제가 처음이고 싶어요.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할 게 무한한 거잖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5호 2012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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