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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뮤지컬 속 Fact &Fantasy2. <명성황후>,<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사운드 오브 뮤직>,<바람의 나라> [No.68]

글 |김영주 명성황후,사운드오브뮤직,바람의 나라,홍계훈,헤롯왕,폰 트랩 대령,해명태자 2009-06-01 8,147

<명성황후>, 홍계훈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홍계훈 역시 극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처럼 조선 말기의 실존인물이다. 명문가인 남양 홍씨 출신이기는 하지만 생년이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 불우한 환경에게 성장했다. 홍계훈은 국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무예청 별감으로 관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천야록』에서는 ‘졸병에서 일어나 높은 지위에까지 이르렀으며 청렴하고 성실하며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뒤를 받쳐줄 만한 후원자가 없던 그가 출세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임오군란 때 위기에 처한 명성황후를 궁녀인 자기 누이라고 속여서 장호원으로 피신시키는 데 성공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왕실의 신임을 얻어 훈련대장의 지위에까지 오르는데, 동학농민항쟁 당시에는 전주성 전투에서 관군을 이끌기도 했다.
그가 을미사변 때 주한일본공사 미우라의 명령을 받은 낭인들의 침입을 저지하다가 순국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고종실록』에 의하면 목숨을 잃은 곳은 궁궐 안이 아니라 광화문 입구였다고 한다. 뮤지컬에서 묘사된 것처럼 궁 안에서 황후를 지키려다 죽임을 당한 이는 궁내부 대신이었던 문신 이경직이었다. 이경직이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 앞을 막아서자 일본 낭인들이 총으로 쏜 다음 칼로 베어 확인 사살을 했다고도 하고, 양 팔을 베어 죽였다고도 한다. 그의 죽음은 을미사변을 다룬 다양한 장르의 많은 창작물에서 재현된다. 
한미한 출신의 무사가 극적으로 왕비의 목숨을 구하면서 신분상승을 하지만, 결국 왕비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는다는 드라마틱한 실화는 대중을 주 소비층으로 한 역사물에서 홍계훈을 서구 기사도 문학의 남자 주인공과 유사한 위치에 올려 놓았다. ‘고귀한 신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보상받지 못할 사랑에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기사’라는 캐릭터는 다분히 전형적이다. 하지만 1965년에 만들어진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에서 이미 이러한 구도가 사용되었을 만큼 대중들의 감성에 어필하는 힘이 있는 설정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헤롯왕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예수를 심문하는 두 권력자는 상반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유대 왕 헤롯은 경박한 광대처럼 묘사된다. 예수의 삶과 관련해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왕은 두 사람이라 혼동하기 쉬운데, 그 둘은 부자지간으로 아버지를 헤롯대왕, 아들을 헤롯 안티바라고 부른다. 유대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에 2세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하라고 명령했던 것은 아버지인 헤롯 대왕이고, 그 후계자인 헤롯 안티바를 유명하게 한 에피소드는 따로 있다.
헤롯 안티바는 자신의 생일 연회에서 조카이자 수양딸인 살로메가 매혹적인 춤을 추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기로 약속을 하는데,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가 시킨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 안티바와 계수인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난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헤롯이 약속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은쟁반 위에 얹어 살로메에게 선물한 일은 그 후 오랫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 사건으로부터 3년이 지난 후, 헤롯 안티바에게 갈릴리 출신의 또 다른 죄수가 호송되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당시의 심문 장면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재현된다. 헤롯 안티바는 예수가 일으킨 기적에 대한 소문을 들어왔기 때문에 화제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 것에 기뻐하며 자신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자 조롱의 의미로 화려한 옷을 입혀 본디오 빌라도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헤롯 왕은 예수를 기이하고 흥미로운 존재, 일종의 초능력자처럼 여기는 이들을 대표한다. 일반적으로 헤롯은 관능적인 여성, 혹은 남성 무용수들에게 둘러싸여서 성적인 뉘앙스가 강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예수를 비웃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향락에 빠져서 타락한 오리엔탈 군주의 캐리커처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재현한 것이다. 헤롯의 심문 장면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쇼는 곧 이어 등장할 40번의 채찍질을 비롯한 예수의 수난이 작품의 분위기를 종교적인 엄숙함으로 몰아가는 것을 적절하게 멈추게 하는 역할도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 폰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엄격한 인상과 군대식 교육으로 기억되는 ‘캡틴 폰 트랩’은 실제로는 시대와 신분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새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마리아 폰 트랩은 그녀의 아버지가 젊은 해군장교 시절 보았던 마르키즈 제도에 모든 가족을 데려 가는 것을 꿈꾸었던 로맨틱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독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에 입대한 폰 트랩 남작은 1차 대전 당시 U-14의 함장으로 1만 2천 톤 규모의 프랑스 해군 순양함과 이탈리아 해군 잠수함을 격침시킨 전쟁 영웅이었다. 그는 1919년에 퇴역할 때까지 오스트리아 제국 군인의 최고 영예인 마리아 테레지아 십자훈장을 비롯한 13개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1922년 첫 아내와 사별한 후 남겨진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언제나 다정한 아버지였지만 그 유명한 호루라기 호출법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 묘사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고, 거센 파도 소리를 뚫고 부하들을 호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을 아이들을 찾기가 힘들 만큼 거대한 저택에 적용시킨 것이었다고 한다. 뮤지컬에서처럼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는 음의 높낮이와 길이로 구분된 자기만의 호출음이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 폰 트랩은 단 한 번도 형제들과 함께 행진을 하거나 군대식으로 열을 맞춰 서 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그들은 마리아가 가정교사로 오기 전부터 이미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폰 트랩 대령의 딸은 리차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는 마리아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었을 뿐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은 아니라며, 작품 속에 묘사된 것이 자기 가족의 삶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를 가장 실망시킨 것은 실제와는 너무나 다른 극중 아버지의 캐릭터였다. 자녀들을 위해 정원에 오두막을 직접 만들고, 감자 구워 먹는 법을 가르쳤던 아버지가 거의 아동 학대에 가깝게 아이들을 냉대하는 퇴역장교로 그려지는 것을 보면 섭섭할 만도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뮤지컬은 극적인 흥미를 위해 폰 트랩 가의 이야기를 완전히 재구성한 것인데, 그 변화를 꼼꼼히 체크해보면 리차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 폰 트랩 가족 합창단의 이야기가 어떤 점에서 미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추론해볼 수 있다. 
전쟁 영웅이 이끄는 폰 트랩 패밀리가 가족 합창단이 된 것은 나치 때문이 아니라 파산 때문이었다. 2차대전 직전의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맡겨두었던 폰 트랩 가(家)의 자산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저택의 빈 방을 내놓고, 닭을 키우고, 노래를 불러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건강한 가족은 굴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변화를 잘 헤쳐나갔다. 이 과정에서 뮤지컬에서 묘사된 것처럼 적극적이고 활달했던 마리아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이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간 것은 1959년의 일로, 2차대전 패전국 독일에 대한 반감과 승리에 대한 자부심이 미국인들에게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뮤지컬 제작자들에게는 프로 공연자가 된 남작 가문 아이들의 이야기보다는 나치를 피해 자유의 땅으로 드라마틱한 도피를 하는 전쟁 영웅 가족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나치와의 갈등과 도주는 사실 뮤지컬에서 그려진 것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폰 트랩 일가는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간 것이 아니라, 주위에 미국에 공연을 하러 간다고 말한 다음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거쳐서 미국에 정착을 했다. 

 

 

 

<바람의 나라>, 해명태자

 

 

 

 

 

 

 

 

 

 

 

 

 

 

 

 

 

 

 

 

 

 

 


유리왕과 대무신왕, 호동 왕자로 이어지는 부자 삼대의 비극을 다룬 김진의 『바람의 나라』는 첫 여섯 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스토리에 기댄 서사성에 공을 들이지 않은 이미지극이면서 캐릭터는 조연에 이르기까지 매우 충실하게 살려냈다는 점이다. 다만 1대에 해당하는 유리왕은 작품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그와 갈등을 빚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태자 해명이 왕가의 천형과도 같은 ‘부자간의 살’이라는 비극을 보여준다. 유리왕의 아들 해명태자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죽음에 이른 아들이라는 점에서 사도세자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도세자가 정신적인 약점들로 인해 함정에 빠진 인물이라면, 해명은 그 자신의 뛰어난 점들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경우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에 기록된 해명태자의 죽음은 매우 비극적이다. 유리왕의 아들 중 처음 태자가 된 것은 장남 도절이었다. 그런데 부여왕 대소가 왕의 아들로 볼모 교환을 하자고 요구하자 유리왕은 이에 응하려 했고, 도절이 두려워하여 길을 떠나지 못하다가 큰 전쟁이 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대소가 일으킨 군사들이 갑작스럽게 내린 눈 덕분에 얼어 죽어서 고구려는 화를 면하지만, 이 일로부터 6년 후 도절은 이유 불명의 죽음을 맞는다. 그 뒤를 이어서 태자가 된 해명은 형과는 반대로 담대하고 강인한 성격이었다. 그는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긴 뒤 졸본에 남아있었다. 그의 영웅적인 면모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황룡국왕이 움직이기 힘든 단단한 활을 보내 시험하려고 하자 해명은 쉽게 활을 구부려서 부러뜨린 다음,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활이 약한 것”이라고 조롱한다. 이에 유리왕은 후환을 두려워하여 황룡국왕에게 자기 아들 해명이 불효하니 대신 죽여 달라고 청한다. 황룡국왕이 해명의 인품을 보고 그를 차마 죽이지 못하자 유리왕은 아들에게 직접 자살을 명령한다. 해명 태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꾸로 꽂아놓은 창을 향해 말을 달려 몸을 던지는 것으로 젊은 생을 맺는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를 옮길 때는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옛 수도에 왕권의 잠재적인 도전자라고 할 수 있는 태자가 머문다면, 국왕의 입장에서는 위협이 된다. 『바람의 나라』에서 해명은 옛 고조선의 땅을 회복하려는 큰 웅지를 품은 태자이고, 이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잃어 후에 대무신왕이 되는 무휼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뮤지컬에서는 유리왕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이것이 유리왕 개인의 성격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왕 된 자의 피할 수 없는 비극임을 강조한다. 즉, ‘강한 고구려’라는 같은 꿈을 꾸었던 형이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왕인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애증을 느꼈던 무휼이 왕이 된 후 아비와 다른 부도를 꿈꾸는 왕자 호동 앞에서 자신이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같은 얼굴을 하게 되는 숙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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