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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애비뉴 Q> 이야기 [No.119]

글 |송준호 2013-09-04 4,998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애비뉴 Q>까지

 

발상의 전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살짝 비틀어보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한 것이 <애비뉴 Q>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들이 성인이 되면 어떻게 변했을까’에서 시작된 호기심을 실제 현실에 접목한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인형극’이라는 저연령층의 아이콘은 이 뮤지컬에서 온갖 종류의 성인 코드와 결합하며 관객들을 당황시키고 폭소를 유발한다. 이로써 <애비뉴 Q>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배경에는 여전히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형들이 구축해온 역사가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와 머펫 캐릭터들

1980년대 주한미군방송인 AFKN(현 AFN)을 통해 국내에서도 볼 수 있었던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미국을 대표하는 어린이용 교육 프로그램이다. 1969년에 PBS에서 처음으로 방송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래는 미국 내 저소득층과 소수 민족의 취학 전 아동들을 사회화시키고 지적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후 총 118개의 에미상을 받았을 정도로 양질의 콘텐츠를 자랑하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140여 개국에서 방영될 만큼 폭넓은 인기도 얻었다.

 

이 보편적인 인기의 원인은 개성 있는 인형 캐릭터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상징인 거대한 노란 새 ‘빅 버드’, 쾌활한 빨간 괴물 ‘엘모’, 쿠키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털북숭이 괴물 ‘쿠키 몬스터’, 서수남·하청일 콤비를 연상시키는 어니와 버트, 쓰레기통에 사는 투덜이 ‘오스카’ 등은 아이들에게 지금의 ‘뽀로로’ 급의 사랑을 받았다. 인형극의 대가 짐 헨슨(Jim Henson)이 만든 이 인형들은 실을 사용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이나 손에 끼워서 움직이는 퍼펫(Puppet)보다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활용되는 인형들만을 가리켜 ‘머펫(Muppet, Marionette+Puppet 또는 Monster+Puppe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체가 불분명해서 더 초국적인 친밀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 머펫들은 각 나라에서 저마다 고유한 캐릭터와 테마로 변용될 수 있었다. 가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서미 스트리트>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카미’라는 머펫이 등장해 대주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머펫은 이처럼 아이들에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종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심어주는 좋은 학습 도구의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

 

사실 <애비뉴 Q> 역시 이런 교육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신체적으로는 모두 성장한 사회인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자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20~30대의 청장년층이 보기에 적합한 뮤지컬이다. 하지만 <세서미 스트리트>가 결국 <애비뉴 Q>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역시 남녀노소를 초월해 통하는 유머 감각이 중요했다. 특히 유명한 인물이나 다른 작품들을 자기 방식으로 패러디해 웃음을 유발하는 수법은 오히려 성인 시청자들에게 더 효과적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세서미 스트리트>의 시청자층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세대가 변화상에 맞춰 시청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40여 년째 반복되면서 <세서미 스트리트>는 세대를 초월한 방송이 되고 있다. <애비뉴 Q>의 제작자 로버트 로페즈와 제프 막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무대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는 데 뜻을 모았고, 머펫의 개성과 유머 감각을 본격 성인 코드와 결합해 파격적인 머펫 뮤지컬을 만들게 된 것이다.

 

 

 

 

 

 

머펫의 아버지 짐 헨슨과 <머펫 쇼>

할리우드에서 아직 컴퓨터 그래픽 작업이 본격적으로 쓰이지 못했던 시절, 특수효과를 할 때는 주로 인형이나 모형에 의지해야 했다. 그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있던 이가 짐 헨슨이다. 훗날 대표작이 되는 <세서미 스트리트>가 탄생하기 전, 그는 학창 시절에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5분짜리 텔레비전 인형극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그가 최초로 창조한 머펫이 개구리 캐릭터로 유명한 ‘커밋(Kermit the Frog)’이다. 이후 <세서미 스트리트>가 방영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76년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머펫 쇼>를 따로 만들었다. 촌철살인의 유머가 인상적인 <머펫 쇼>는 노래와 유명 연예인들의 게스트 출연으로 구성된 버라이어티 쇼로, 머펫 버전 이라고 할 수 있다. 커밋과 미스 피기(Miss Piggy), 포지 베어(Fozzie Bear) 등의 머펫들은 이를 통해 전 세계적인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헨슨의 머펫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손가락만으로 조종하는 퍼펫류이고, 또 하나는 ‘빅 버드’나 맘모스 캐릭터인 ‘스너플루페이거스(Snuffleupagus)’처럼 사람이 직접 탈을 뒤집어 쓴 대형 머펫이다. <애비뉴 Q>에서도 트레키 몬스터가 두 명의 조종자를 필요로 한다. 퍼펫류는 손 하나를 끼워 입을 움직이고 나머지 손 하나로 팔을 조종하면 되지만, 중대형 머펫은 적어도 두 명 이상이 있어야 머리와 양팔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헨슨이 창조한 매력적인 머펫 캐릭터들이 많이 있지만 그가 세운 ‘머펫 제국’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는 역시 커밋이다. <머펫 쇼>의 MC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 전부터 커밋은 머펫이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인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머펫 쇼>에서는 파트너로 유명한 미스 피기와 함께 본격 성인극으로서의 머펫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커밋과 미스 피기의 관계는 미국에서 다른 인종 간의 사랑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다. 개구리와 돼지도 사랑을 할 정도이니 인종이나 국적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비뉴 Q>에서 인간 캐릭터와 머펫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는 <머펫 쇼>에서의 이 같은 관계가 전제되어 있어서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애비뉴 Q>의 전체적인 틀을 제공했다면, 19금 코드와 코믹한 요소는 <머펫 쇼>로부터 나온 셈이다. 다만 커밋과 미스 피기를 비롯해 머펫과 관련한 대부분의 동물 캐릭터는 2011년 디즈니에 인수됐기 때문에 <애비뉴 Q>에서는 동물 머펫을 발견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 퍼펫과 몬스터 캐릭터만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9호 2013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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