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과 기사단이 마련한 웃음의 성찬
2010년 연말은 <스팸어랏>이 있어 행복했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의지는 강한 아서 왕과 그의 충복 펫시, 그리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네 명의 기사들-랜슬럿, 로빈, 갈라핫, 베데베르 경-이 성배를 찾아 떠난 여정에 동참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인생 뭐 있나요, 웃어 봐요. 인생 별거 없죠, 웃어 봐요’ 하는 팻시의 노래 한 소절을 따라 부르며 극장 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또 얼마나 가벼웠던가.
우리의 단군신화만큼이나 익숙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스팸어랏>은 엉뚱하고 어이없는 패러디와 언어유희,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가득한 요절복통 코미디 뮤지컬이다. 거의 모든 장면에 웃음 유발 장치들이 장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코미디계의 비틀즈’라 불리는 영국의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의 70년대 영화 <몬티 파이톤과 성배>가 원작인 이 작품은 ‘Spamalot’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풍자가 시작된다. 모든 음식에 스팸이 투입되는 내용의 몬티 파이톤 시리즈에서 딴 ‘많은 스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서왕의 성 ‘캐멀럿(Camelot)’과 비슷한 발음의 ‘스패멀럿’ 즉 ‘스팸으로 가득 찬 캐멀럿’이라 불리며 왕의 권위를 깔아뭉갠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웅 의식에 젖은 아서왕이 기세등등하게 말을 타고 등장하지만, 실은 그의 곁에는 말 대신 코코넛 열매 껍질을 부딪쳐 말발굽 소리를 내는 펫시가 있을 뿐. 아서왕이 찾아간 성의 병사 로빈과 베데베르는 그저 펫시가 두드리는 코코넛이 어떻게 영국에 떨어질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보이고, 음식 대신 진흙을 구하던 데니스(갈라핫)는 ‘내가 당신들의 주인이며 왕’이라 소개하는 아서를 향해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 뽑은 적 없다’면서 ‘지나가는 여자가 빵 주면 그 사람은 빵집 사장이냐’고 빈정댄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완의 연출로 만난 <스팸어랏>에서 돋보인 것은 패러디 장면들이다.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키며 등장하는 갈라핫과 호수의 여인은 ‘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 사랑의 노래, 웬만한 작품엔 꼭 부르는 노래, 서로 마주보면서 오버하는 노래…’라는 황당한 가사를 우아한 선율에 맞춰 불러 폭소를 자아내고, 원탁의 기사가 되지 못한 돈키호테와의 짧은 만남도 반가웠다.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겁쟁이 로빈 경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성공 공식을 아서왕에게 설명하는 장면 ‘You Won`t Succeed On Broadway’는 이번 공연의 백미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킬 앤 하이드>, <시카고>, <헤드윅>, <아이다> 등 친숙한 뮤지컬 속 인물들이 코러스로 등장시킨 이 곡은 국내 실정을 반영해 원작의 유태인 대신 연예인 출연을 비판했는데, 공연에 출연 중인 박영규와 예성을 연상시키며 더 큰 웃음을 선사했다.
<스팸어랏>의 웃음 코드를 제대로 살려낸 배우들의 열연 또한 훌륭했다. 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한 랜슬럿 경을 비롯해 무한 욕설을 퍼붓는 프랑스 성문지기, 생각대로 말하는 니의 기사, 마법사 미미로 변신한 정상훈은 절정의 코믹 연기를 보여주었고, 로빈 경과 더불어 고음으로 징징대던 연약한 게이 왕자 허버트를 완벽히 소화해낸 김재범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진단 및 처방
“흥행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뮤지컬 코미디로서는 선전한 작품이었다.” 신춘수 대표는 뮤지컬 코미디를 한국 관객에게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뮤지컬 관객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작품의 재미, 특히 패러디의 재미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코미디와 패러디는 알고 봐야 재밌다.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영국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톤’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국내 관객들이 <스팸어랏>을 완벽하게 즐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의 원작인 영화 <몬티 파이톤의 성배>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이주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주일처럼 모습을 보고 웃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재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원작 영화의 소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혜원 칼럼니스트는 작품의 인지도와 더불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공연장과 극과 어울리지 않는 한국식 유머코드를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조용신 칼럼니스트는 “다양한 뮤지컬을 패러디한 <스팸어랏>은 마니아성이 강한 작품이다. 작품의 규모를 줄여 그들의 재관람을 유도한다면 흥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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