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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우리가 지지한 뮤지컬 6 <스핏파이어 그릴> [NO.101]

글 |김영주 사진제공 |쇼노트 2012-03-02 5,899

달무리를 벗어나 찬란한 숲의 빛 속으로


 

 

 

보통 두 시간을 가뿐히 넘기는 음악과 이야기로 진행되는 뮤지컬을 놓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뮤지컬의 첫 장면에서, 어째서인지 알기도 전에 감정이 치받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07년 봄,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의 개관작으로 올라왔던 <스핏파이어 그릴>에 대한 이야기다.


10년 전에 개봉한 동명 원작 영화의 포스터가 좋은 느낌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선입견도 기대도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어둡고 좁은 무대 한 쪽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선 조정은이 ‘창밖엔 저 달 달무리에 갇히고 철창 사이 가득 바람의 노래가...’로 시작하는 ‘A Ring around the’의 첫 소절을 부른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왈칵 눈물이 났다. 의붓아버지를 죽인 펄시가 감옥에서 보낸 5년의 시간, 그리고 복역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낯선 마을 길리하드에 당도하기까지의 메마르고 쓸쓸한 여정이 담겨 있는 노래였다. 스위치를 켜듯이 마음을 툭하고 건드린 것은 박복하고 기구한 펄시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라, 그녀 몫의 고독 이었다. 


<스핏파이어 그릴>은 죽어가는 마을에서 해묵은 상처들을 서로 토닥여가며 삶을 되찾는 세 여자 펄시(조정은), 한나(이주실), 쉘비(이혜경)에 대한 이야기다. 주 관객층이 2,30대 여성이고, 그들에게 어필하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 열쇠처럼 여겨지는 한국 뮤지컬계이지만, <스핏파이어 그릴>은 뮤지컬을 보면서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만큼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느낀 유일한 작품이었다.


오프닝 넘버 ‘A Ring around the’과 대구를 이루는 노래는 아마도 ‘Shine’일 것이다. 영혼을 옥죄어왔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순간의 환희로 가득한 이 노래는 조정은의 증언에 따르면 ’정말로 펄시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그 음정으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는’ 곡이다. 그 장면에서 이우형 조명감독은 마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환상적인 빛으로 협소한 무대를 구원의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식당이었던 곳을 개조한 작은 극장 무대에 다시 고립된 마을의 오래된 식당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한나의 식당을 오가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도 때로 아프거나 슬프다. 그 평범한 사람들 중에는 또 유독 끔찍한 운명을 짊어진 이도 있다. 사람들이 모두 제몫의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그리고 슬픔을 털어내야 하는지 잔꾀 부리지 않고 보여주는 뮤지컬이 <스핏파이어 그릴>이었다.

 

 

 

 

진단 및 처방

2006년, 쇼노트 임양혁 이사는 에이전트를 통해 대본과 음악을 먼저 접했던 <스핏파이어 그릴>을 시카고의 로컬 시어터에서 처음 보았을 때 반했던 것은 거칠고 파워풀하면서도 내면의 결이 잘 드러났던 한나 역의 여배우였다. 척 봐도 여자 중심의 잔잔한 드라마인 이 작품이 우리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그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흥행의 공식이라는 것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음악이었고, 여주인공이기는 하지만 펄시와 식당 여주인 한나의 캐릭터였다. 완성된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예상보다 더 컸다. 협소한 무대를 역으로 잘 이용했고, 정석적인 연출도 탄탄했다.” 다행히 흥행 면에서도 재앙이나 좌절 수준은 아니었다. 올해 초 쇼노트의 신년 워크숍에서 버릴 작품과 다시 올려야 할 작품을 이야기할 때 <스핏파이어 그릴>은 후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당장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재공연이 된다면 초연 당시 약점으로 손꼽혔던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나 캐릭터의 애매함은 연출적인 선에서 수정보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2007년과 비교하면 다양한 세부 장르들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관객층이 생겼다고 믿는다. 그때보다는 훨씬 해볼 만하다. 초연 때는 연출적으로는 진지한 톤으로 가면서 중간 중간 숨을 쉴 수 있는 유머가 있었는데 재공연을 한다면 기본을 유지하되 조금 더 빠른 페이스로 완급조절을 통해서 작품에 높고 낮은 리듬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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