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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우리가 지지한 뮤지컬 9 <프로듀서스> [NO.101]

글 |정세원 2012-03-02 4,927

이들이 없으면 뮤지컬도 없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무대를 배경으로 ‘제 아무리 작품 좋고 배우가 좋다 해도 프로듀서가 없다면 공연 못한다’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맥스와 레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2006년 1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뮤지컬 <프로듀서스>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척 설렜다. 2001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티켓 한 장에 480달러나 하는 특별 좌석권까지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누린 최신 히트작인 데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토니상 12개 부문의 수상 기록을 갖고 있는 브로드웨이 정통 뮤지컬 코미디, 게다가 무대와 의상 등 제작 전반의 시스템을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공수해 선보이는 공연이라니 기대될 수밖에. 지금이야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최신작들이 거의 시차 없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지만, <프로듀서스>의 국내 상륙은 당시 뮤지컬계의 뜨거운 이슈였다.


코미디와 풍자가 난무하는 <프로듀서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캐릭터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 귀를 즐겁게 하는 브로드웨이 멜로디와, 늘씬한 쇼걸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춤과 의상, 40여 차례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무대 세트 등이 더해져 어느 한 장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연이었다. ‘흥행에 실패하는 뮤지컬을 올려 투자금을 챙긴다’는 설정부터가 얼마나 기발한가. 작품이 망하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지 않고 투자금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물 간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작자 맥스와, 라이너스도 아니면서 하얀 담요를 지니고 다니는 소심한 회계사 레오는 망할 수밖에 없는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최악의 대본과 연출, 배우를 찾아 나선다.


재미를 위한 설정들을 제하면 작품 내용은 실제로 프로듀서들이 뮤지컬 한 편을 제작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대본들 중에서 가장 황당하고 형편없는 대본을 찾는 것으로 시작되는 맥스와 레오의 고군분투는 눈물겹지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레더호젠과 독일 병정 헬멧을 쓴 히틀러 추종자 프란츠가 쓴 <히틀러의 봄날>의 공연권을 얻기 위해 바지를 걷어 올리고 히틀러가 좋아한다는 춤 ‘구텐 탁 풀짝’을 추고 ‘지그프리드 서약’까지 하고, 크라이슬러 빌딩을 연상시키는 은빛 드레스 차림의 실력 없는 게이 연출가 로저와 게이들로 구성된 스태프들을 설득하기 위해 작품을 ‘가볍게, 환하게, 게이하게, 해피하게’ 바꿀 것을 약속한다. 맥스가 외로워하는 돈 많은 유태인 할머니들을 유혹해 200억 달러의 투자금을 마련하는 장면에서 선보이는 보행 보조 장치를 이용한 할머니들의 탭 댄스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핑크색 하트가 난무하는 무대 덕분이었는지, 성적인 유머를 거침없이 내뱉던 할머니들의 절도 있는 춤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깨끗하게’를 잘못 이해한 백치미 넘치는 글래머 울라가 선물한, 빈틈없이 새하얗게 칠해진 사무실은 파란 조명과 무척 잘 어울렸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오른 극중극 <히틀러의 봄날>도 기억 남는 장면이다. 우스꽝스러운 히틀러와 발레 하는 탱크, 실물 크기의 나치 병정 인형, 맥주컵과 프렛젤, 소시지, 독수리 등 독일을 상징하는 소품을 활용한 여인들의 의상 등 화려하고도 기상천외한 장치들로 가득한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진단 및 처방
설도윤 대표는 상업적인 뮤지컬을 비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것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당시 프로덕션 매니저였던 조용신 칼럼니스트 역시 “브로드웨이에서 공수해 온 오리지널 무대 세트에 비해 극장이 너무 커서 무대 위의 디테일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시기도 조금 일렀다. “공연 비즈니스계의 사기극이라는 소재나 ‘뮤지컬 프로듀서’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인식이 부족했다. 일단 보면 재밌는 작품이지만 그들을 극장으로 불러오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한국화 작업의 부족을 지적한 원종원 교수는 “코미디는 이성의 산물이다. 납득이 되어야 웃을 수 있는데, 원작을 거의 훼손 없이 옮긴 공연을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할 수 있다’ 장면에서 워싱턴이 델라웨어를 건너는 얘기 대신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을 넣거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제목을 비튼 네온사인(‘KATS’, ‘47th STREET’, ‘SOUTH PASSAIC’, ‘DEATH OF A SALESMAN-ON ICE!’ 등)을 한국어로 대체하는 등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유머코드를 더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로듀서스> 재공연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도윤 대표 역시 “다시 공연을 한다면 한국 정서에 맞게 고칠 수 있는 권한을 많이 가지고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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