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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cene Scope] <영웅> 무대 이야기 [NO.101]

정리| 배경희 2012-02-28 5,242

아이디어의 승리 <영웅>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뮤지컬 <영웅>은 높은 완성도 면에서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건 무대 미술이다. <영웅>의 무대 미술을 맡은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이 작품을 통해 무대는 상상력의 싸움이며,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데 기술이 사용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줬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가 들려주는 <영웅>의 무대 이야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느냐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하느냐. 즉, ‘동일화’와 ‘거리두기’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무대 디자인 작업의 첫머리다. 관객이 극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려면 무대는 사실적이어야 하고, 반대로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상징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떤 쪽인가. 우리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난 후 애국심을 느끼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세트가 도와야 했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장치로 사실적인 무대를 구현하면서 무대 미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쾌락을 안겨줄 수 있을까?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진, 무대 미학이 잘 살아난 장면이 바로 기차 신(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열차가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하얼빈 역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는 이 작품의 핵심 사건. 따라서 사건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열차의 도착 과정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의 하얼빈 행에 동행한 설희가 기차 안에서 그의 암살을 기도하고, 계획이 실패하자 철둑 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장면은, 이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설정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 장면이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학창 시절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쫓기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자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렸던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던 것.


 

 

 

이로써 장면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과제는 여기부터 시작이었다. 옆무대가 없는 극장의 환경상 실제 크기의 열차를 무대 옆에서 달려오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를 보여줘야 하지만, 기차가 달려오게 할 수 없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해낸 장치가 영상 사용이다. 대형 스크린에 눈발이 흩날리는 영상을 비춰서 멈춰 있는 기차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이 같은 시도는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물리적 한계가 오히려 역발상의 기회가 된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차 신이 제대로 연출되기 위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조명디자이너와의 호흡이다. 조명기의 각도가 아주 조금만 어긋나도 눈속임이 들통 나버리니 말이다. 매직이 간발의 차이로 코믹이 돼버리면, 그것만큼 창피한 일이 또 있을까.


<영웅>의 중심 장면이라 할 수 있는 기차 신에서 영상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작품 전체 양식이 됐는데, 영상이 효과적으로 쓰인 또 하나의 장면이 추격신이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역동적으로 보여주자는 게 의도. 수직적인 동선의 움직임을 넣어야겠다고 판단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생각했다. 무대의 기본 틀인 여섯 개의 벽돌 벽은 빔 프로젝트 영상을 비추기에 좋은 스크린이었다. 장면 변환이 많은 공연에서 기본 틀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환 방식을 결정하는데 <영웅>의 빈 무대를 벽으로 결정적인 계기는 여순 감옥의 벽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투옥해 갇혀 있었고, 우리 민족 전체가 일제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영상디자이너와 함께 추격전을 영화로 찍는다고 가정하고 독립군의 움직임을 생각해 건물 영상 제작에 들어갔다. 이때 사용된 사진이 현장 답사 중 찍어온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토크 건물 사진이다. 그 구성을 바탕으로 안무가가 동작을 짜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움직임과 영상의 합을 맞춰 보면서(벽은 전환수가 벽 뒤에서 직접 움직인다) 장면을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완성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던 장면이었다.

 

<영웅> 창작 팀은 2년에 가까운 제작 기간 동안 매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대본 회의를 했다. 무대디자이너가 초기 대본 회의에 참석하는 까닭이 의아한 이들도 있겠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물론 장면 배열 순서를 조율해야 한다. 무대 미술에도 기승전결이 있기 때문이. 가령 1막에 볼거리들이 잔뜩 몰려 있고, 2막에는 앞선 장면의 반복이라면 재미있을까? 스펙터클한 장면이 연달아 나온다면 또 어떨까? 누가 어떤 아이디어를 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그런 과정에서 상승효과가 발생한다. 뮤지컬에서 창작자들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웅>이 완성도 있는 공연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같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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