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뮤지컬계의 최전선에서 한 발도 물러선 적이 없는 전투적인 인물, 이지나 연출가에게 올해는 가장 흡족한 한 해였을 것이다. 2011년 창작뮤지컬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성취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지나 연출은 언제나처럼 직설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올해는 유난히 강행군인 것 같다. 뭘, 항상 이랬다. 올해는 그래도 쉬웠다. 번역극이 많았으니까. <아가씨와 건달들>같이 원래 잘 만들어져 있는 작품은 쉽다. 제일 어려운 건 창작이지.
2011년을 정리하면 이지나라는 이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더라.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광화문 연가>가 성공해서. 큰 작품이고, 창작 초연이었다. 창작 초연의 대극장 작품이 처음부터 그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명성황후> 같은 작품도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처럼, 작품이 잘 나와도 초연 때는 보통 BEP를 못 맞추고 어느 정도 선방을 하면 공연을 계속 하면서 궤도에 올라서게 되는 식인데 <광화문 연가>는 처음부터 반응이 왔다. 물론 작품 때문이 아니라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 때문이지만 어쨌든 창작 작품이 잘되는 건 좋은 일이다.
그 정도 반응이 올 줄 알았나. 그 정도로 터질 줄은 몰랐지. <광화문 연가>를 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노래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스토리를 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가사가 똑같은 상황을 이야기한다. 헤어진 직후. 그래서 걱정은 많았지만 노래의 힘을 믿었고 캐스팅이 좋아서 흥행에 대해 크게 걱정은 안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 때 개연성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개사를 한다거나 추가로 곡을 넣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들 때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나? 그걸 왜 하나. 이영훈 작곡가의 그 명곡들을 가지고 대학교 입학식 장기자랑에서 하는 그런 걸 우리가 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누가 뭐라고 해도 스토리를 억지로 엮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맘마미아>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아바의 노래는 굉장히 다양한 이슈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는 모두 사랑을 떠나보내고 부르는 노래다. 옛날 장진 감독의 <아름다운 사연>이라는 연극처럼 한 열다섯 명이 나와서 ‘너는 어떻게 헤어졌지?’ ‘그럼 너는 어떻게 헤어졌니?’ 서로 물어보면서 자기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는 꽁트 식으로 풀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람들이 다 이야기들은 많이 하지만 막상 만들어보면 또 다른 이야기다. 일단 이영훈 작곡가에 대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느 나라든 문화 아이콘이 필요하다고.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아이콘, 스타는 조승우 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아이콘일 때 변치 않는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뮤지컬계 인사 누군가가 외부에서 유명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작품, 작업으로 인해서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이 나와야한다는 뜻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적 성취를 첫 번째 목표로 놓고 작업을 할 때와 상업적인 성공을 최종 목표로 두어야 하는 뮤지컬 작업을 할 때, 즐거움을 찾는 방법도 달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좋자고 하는 작업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작업을 하고 싶으면 총체연극을 해서 에든버러나 아비뇽에 가야지. 내가 ‘빨강이라면 이건 빨강인 거야!’라고 우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뮤지컬은 그보다 더 어렵다. 결국 만드는 내내 관객을 불러들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 관객이 누구냐는 것이 문제다. 나는 이런 관객들을 만족시킬 거야, 라는 타깃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뮤지컬 관객층이 타깃을 나누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좁다. 연출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나. 좋은 작품은 좋은 사람들이 온다고 믿고 가야한다. 그런데 스타가 확보되면 좋은 작품이 아니어도 관객이 온다. 반대로 스타가 확보되지 않은 작품이면 출발점부터 리스크를 안고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스타가 없으니까 나는 웃기기라도 해야겠다고 개그 콘서트를 해야 할지, 스타가 없어도 정공법으로 갈지는 만드는 사람의 양심에 달려있다.
뮤지컬 마니아의 주를 이루는, 반복 관람을 하는 2~30대 여성 관객들의 티켓 파워로 인해 캐스팅이 지나치게 젊은 남자 배우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떤 배우에게 꽂히면 같은 영화를 30번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명작 영화를 서른 번 보지는 못했다. 힘들어서.(웃음) 지금 이 나이의 나도 호아퀸 코르테스가 플라멩코 공연을 한다면 그걸 보면서 행복하고 싶어서 13만 원을 주고라도 일주일에 두 번은 갈 것이며, 내 주변의 그를 모르는 가엾은 여자들에게 열심히 전도해서 그녀들과 같이 공연을 보고 2차까지 가서 술을 마시면서 그 춤을 찬양할거다. 이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여자의 심리다. 나는 그런 마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그 스타와 함께 ‘좋은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은 스타 배우들의 테이스트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관객을 탓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영향력 있는 스타 10명의 테이스트를 말하고 싶은 거다.
10년 전에 비해 인터넷으로 직접적으로 의견이나 감정을 표출하는 관객들이 많아졌다. 연출가로서 그 변화가 어떻게 느껴지나. 때로는 공격적인 반응들도 있을 텐데. 그렇게 직접 던지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정치인, 연예인과는 달라서 내가 뮤지컬계에서 아무리 욕을 많이 먹는다고 해도 40명 안팎이다. 욕도 자기 그릇 크기다. 빚이 그 사람의 재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욕먹는 것만큼 그릇이 커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두려워하면 안 된다. 옛날에는 신경을 썼다. 그런데 안 들으면 된다. 그걸 굳이 찾아서 봤던 건 작품에 대해 모니터를 하려는 거였는데 이제는 안 그런다.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 <서편제>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서편제> 때 내가 욕을 많이 먹기 시작했고, 그때 내가 가장 전투적이었다. 나는 분했다. 많은 사람을 공격하고, 많은 사람을 원망하고, 많은 사람을 무시하면서 적을 많이 만들었다. 그건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서편제>로 치유를 받았다. 남자한테 데인 여자는 남자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선진국이 왜 선진국이냐면, 예술이든 정치든 어느 정도 선에서의 예측이 가능하다. 이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너무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연도 그런 과도기에 있는데 <서편제>라는 작품이 흥행성은 없다고 나도 인정을 하고 시작했지만 그렇게 욕을 먹을 작품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막말로 어떤 대의명분이나 이유 없이 누가 봐도 아닌 작품 때문에 외국에 돈 갖다 바치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거다. 메이저 단체도 아니었고 업계 외부에서 온 신진 제작자였고 그리고 뮤지컬화될 수 없는 콘텐츠였다. 그러니까 그때 그 작품에 대해 쏟아지는 비웃음과 무시를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2011년 한 해 동안 창작뮤지컬 분야에서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나는 <서편제>가 거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상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흥행에 그렇게 실패한 작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재조명을 해주었고,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면서 생명을 얻은 것으로 나는 치유를 받았다. 그 와중에 <광화문 연가>가 사랑을 받으면서 내 마음의 증오가 많이 사라지고 어찌 되었든 창작뮤지컬이 분명히 빛날 날이 올 것이고, 아직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 거다.
<광화문 연가> 이후 고전 뮤지컬인 <아가씨와 건달들>을 연출했다. 쉬운 작업이었다고 했지만 관객들은 변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는데. 그렇지만 원래 구성 그대로 썼다. 명작은 손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쉽다는 것이다. 부술 필요가 없다. 부수면 이상해진다. 세계적인 명작, 고전으로 인정받은 작품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 구성이 굉장히 튼튼하다. 그런데 <아가씨와 건달들>이 요즘 센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 취향에 안 맞다고 이미 죽은 작곡가 대신 누구를 불러다가 곡을 쓰게 해서 넣거나, 없는 신을 넣으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나는 캐릭터에 변화를 준 것이지 원래 없는 노래를 넣거나 스토리의 앞뒤를 바꾸거나 추가한 건 없다. 내가 손을 댄 부분은 가사, 캐릭터, 표현 방법 정도다.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 부분들이 있으니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 변화를 주는 이런 작업은 연출가라고 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나는 그 기본을 한 거다. 그에 비해서 창작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는 거다.
그렇게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한 창작 작업이 <바람의 나라>, <서편제>, <광화문 연가>였는데 난이도가 또 달랐을 것 같다. <광화문 연가>는 확실히 <서편제>보다는 쉬웠다. 왜냐면 음악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편제>는 아무리 원작이 명작이라고 해도 ‘이걸 뮤지컬로?’라는 정서의 차이 아래서 과연 이걸 악극으로 가야하나부터 온갖 가능성과 경우의 수가 수천 가지가 있는 가운데서 내가 결정을 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여러 사람이 하는 일에서 판단을 하고 총대를 멘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연출가와 프로듀서의 역학 구도는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프로듀서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이미 그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창작뮤지컬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왜냐면 번역극은 이미 원작이 검증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프로듀서도 나한테 와서 ‘요즘은 남자 배우가 잘 팔리니까 체를 주인공으로 바꾸고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를 체가 부르게 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번역극을 같이할 때는 프로듀서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 창작을 같이하면 이 프로듀서가 어떤 성향,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가 정확하게 나온다. 제작자, 연출가, 작가 다 마찬가지다.
<미녀는 괴로워>의 일본 공연을 연출했는데, 한국 재공연은 합류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미녀는 괴로워>는 춤추고 노래하는 쇼 중심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으로 일본도 가고 중국도 가니까 끊임없이 앙상블들이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쇼 뮤지컬로 만드는 게 좋다고 봤다. 그런데 일본에서 공연을 올리고 2~3일 모니터를 한 후에 원작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동 제작사이자 투자사인 KM컬쳐 쪽에서 어쨌든 <미녀는 괴로워>는 영화 원작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이 공연은 원작과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쪽에서는 2008년 버전처럼 가기를 원했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서로 좋은 선에서 정리가 됐다. 프로듀서가 정확하게 판단을 하는 확신이 있으면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좋게 끝났고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나. 나한테 무기가 없으니까 나도 힘들더라. 내가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스토리와 배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나한테 창작 제안이 들어왔을 때 하고 싶어죽겠다고 생각한 작품은 없다. <바람의 나라> 이후로는. 막말로 <광화문 연가>도 정말 힘들 거 뻔히 알았다. 노래는 좋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이 얼마나 힘들 것이며, 어떻게 해도 좋은 말 못들을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안했으면 어쩔 건가. 이건 건방진 말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극장 창작을 할 사람이 정말 없다. 왜? 대극장 콘텐츠를 가지고 오는 프로듀서가 없으니까. 소극장은 오밀조밀하게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대극장은 관객들에게 12만 원, 이제 13만 원을 내게 해야 한다.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몹신이 있어야 하고, 웅장함이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한다. 까다롭다. 그런데 이걸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가져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창작뮤지컬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거절하나. 창작은 무조건 한다. 가리지도 않는다. 도의적인 책임감 때문이다. 번역극을 취소하고서라도 하려고 한다. 페이는 더 적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많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때까지 들어온 걸 다 했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도 들어오면 ‘정말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정도가 아니면 하려고 노력할 거다. 해보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든다.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영감을 주는 배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작품에서 배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배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우리 작품의 모든 핵심이 그 사람을 통해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그 배우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이 사랑하는 배우들은 사실 극 중 캐릭터다. 그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만드는 거다. 그런데 어찌됐건 이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배우가 그 외양을 갖춰야 한다. 내면까지는 솔직히 바라지 않는다. 진실한 연기는 배우의 내면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일단 배우는 기술직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 점을 간과한다. 물론 기술이 떨어지지만 그 사람 자체로 너무나 향기로운, 프레젠터블한 배우도 있다. 정말 드물지만 그런 배우들은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려도 된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작품에 필요한 게 뭔지 바로 이해하고 충실하게 해줄 때 같이 작업하는 게 편하고 고맙다.
2011년의 가장 기뻤던 일과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 기뻤던 일은 <광화문 연가>가 잘된 것. 그리고 올드하다는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와 건달들>이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가장 기뻤던 건 흥행을 못한 <서편제>가 다시 무대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거. 아쉬웠던 건 한국 뮤지컬이 해외 시장에 진출을 한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작품을 파는 게 아니라 스타들을 향한 팬심에 기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다.
한국 시장에서 지금보다 다양한 소재의 뮤지컬이 사랑받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시대 활극, 코스튬 드라마 취향이 일본만큼 오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슬슬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하고, 한국인들의 장점이자 단점이 성격이 급하다는 건데, 우리 관객들은 취향이 변하는 것도 굉장히 빠르다.
2000년에 데뷔를 했다. 현재 스스로의 위치에 만족하나. 그리고 내년의 목표는? 나는 굉장히 빨리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주위에서 박수 칠 때 떠나야 하니까 빨리 은퇴하라고들 성화다. 내년의 목표라… 그때그때 사는 게 버거워서… 우리나라에서 내년의 목표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프로듀서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제작하다보니 제작자의 마음이 아주 이해가 잘된다.(웃음) 제작자가 참 고생을 많이 하는 직업이구나, <버자이너 모놀로그> 외에는 그 어떤 작품도 제작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벙어리 삼룡이』, 『각시탈』, 일본 소설 『Go』 등 콘텐츠 개발을 하고 싶은 작품들은 있다. 그런데 프로듀서가 맡아야 하는 돈과 관련된 일들을 하기에는 나는 그릇도 작고 겁도 너무 많다.
뮤지컬의 무엇을 제일 좋아하나. 음악? 춤과 음악.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은 책을 읽는 게 제일 재미있고, 그것보다 좀 더 심플한 스토리텔링이면 만화가 더 재밌다. 치정극은 아침 드라마가 재밌고, 예쁜 배우들은 주말 드라마에 나온다. 영화에는 미장센이 주는 즐거움이 있어서 나는 박찬욱 팬이고. 그러니까 뮤지컬은 음악과 춤이다. 언젠가는 <백조의 호수> 같은 무용극을 만들어 보고 싶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9호 2011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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