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기획-3] 포스터가 이야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No.97]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2011-10-21 6,131

브로드웨이의 타임스 스퀘어에는 언제나 다양한 작품의 공연 포스터들이 가득하다. 그곳을 지나는 많은 관객들, 특히 관극할 작품을 딱히 정해놓지 않고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은 제목이나 포스터가 주는 이미지로 작품을 선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공연의 포스터는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공연 포스터 = 공연 브랜드
포스터로 대변되는 공연의 아트워크는 공연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경우 대부분 오픈런을 전제하고 공연되기에 한번 정해진 작품의 이미지가 수년간 사용될 수도 있고, 만약 작품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포스터를 볼 수도 있다. 한정된 기간에만 공연되는 연극이나, 스타 캐스팅에 집중한 작품, 배우의 실제 모습이 작품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간혹 특정 배우의 얼굴을 포스터 이미지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뮤지컬의 포스터에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대변할 수 있는 이미지를 디자인해 아트워크를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광고 마케팅 에이전시인 세리노 코인(Serino Coyne)의 대표 낸시 코인(Nancy Coyne)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위키드> 등의 작품을 예로 들며 아트워크가 브로드웨이 작품의 흥행에 매우 주요한 요소임을 이야기한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포스터를 비롯한 아트워크로 대변되는 공연의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공연 제목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의 특징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특히 포스터는 별다른 텍스트 없이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타임스 스퀘어 주변을 걷는 관광객이 극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서쪽 마녀 엘파바와 동쪽 마녀 글린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위키드>의 경우 코인은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여자들인 반면, 남녀 간의 로맨스는 주된 요소에서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여자들 사이의 이야기가 중심에 위치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보기에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두 주인공 간의 우정과 우리가 모르는 비밀스런 이야기가 작품의 주요 테마임을 보여주기 위해 귓속말을 하고 있는 두 마녀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프랭크 벨리조(Frank Verlizzo)는 디즈니 시어트리컬의 <라이온 킹>의 아트워크를 작업할 당시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오고 갔다고 전한다. 그중 자신은 수년 전에 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가장 먼저 기억나는 이미지였던 동굴에 새겨진 심바의 얼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이를 발전시켜 총 50여 개의 심바의 머리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란 바탕에 심바의 얼굴과 볼드 타입으로 ‘THE LION KING’이라고 새겨진 포스터가 바로 전 세계에서 14년간 사용되고 있는
<라이온 킹>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브로드웨이 vs.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작품이 웨스트엔드로 자리를 옮기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 작품의 포스터 이미지는 동일하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두기도 한다. 앞서 예로 들었던 <위키드>의 경우도 2006년 웨스트엔드 개막을 준비하며 기존의 브로드웨이 포스터에서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디자인은 유지하되 캐릭터와 배경의 색감과 질감에 변화를 주어 좀 더 입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이 같은 변화는 런던 프로듀서들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웨스트엔드 프로덕션 자체가 영국 관객들을 위해 대사나 안무, 특수 효과 등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으며 이에 따라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에도 변화를 주기 원했기 때문이다.
<매리 포핀스>의 경우도 유사하다. 영국의 프로듀서 캐머런 맥킨토시와 디즈니 시어트리컬이 공동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2004년 웨스트엔드에서 먼저 막을 올렸다. 당시의 공연 포스터는 마치 소설책의 표지 같은 서정성이 강조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2년 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 제작되면서 런던 프로덕션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더욱 선명하고 시선을 끄는 이미지로 완전히 다른 아트워크 작업이 진행되었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들의 공동 제작 작품이라고는 해도 웨스트엔드에서는 캐머런 맥킨토시의 목소리가, 브로드웨이에서는 디즈니의 입김이 더 많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각 시장의 관객 성향과 <메리 포핀스>에 대한 관객의 기억까지 고려해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같은 작품, 다른 포스터
수년간 공연된 롱런 작품들의 경우도 간혹 포스터 디자인의 변화를 꾀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브랜드가 되어 그 작품을 각인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이 오래 지속되거나 캐스팅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을 경우 오래된 포스터는 오히려 해묵은 작품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렌트>의 오리지널 공식 포스터는 앤소니 랩, 아담 파스칼 등 오리지널 캐스트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개발 단계부터 참여한 오리지널 캐스트의 의미가 강한 작품이기도 했고, 배우보다 캐릭터를 대표하는 그들의 모습은 작품의 이미지를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공연 기간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젊은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유도해야 했던 프로듀서들은 이전의 포스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더 밝고 젊은 느낌이 강조된 핑크색 톤의 포스터로 작품의 이미지 환기를 시도했다. 또한 2008년 9월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린 후 3년 만인 2011년 여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로 다시 돌아온 <렌트>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공식 포스터는 흰색과 검정색만으로 “RENT”라는 제목만이 강조된 형태로 제작되었다.
리바이벌 프로덕션마다 새로운 포스터가 제작되는 것은 일반적이다. <렌트>의 오프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이전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에도 공식 포스터로는 아니지만 홍보용 자료나 머천다이징 상품에서 자주 쓰던 이미지를 포스터로 다시 사용함으로써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보통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이전 프로덕션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1983년 초연 당시 검정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강렬하게 표현된 무희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새장 속의 광인>의 경우 지난 2004년, 2010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포스터를 선보였다.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같은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공연되지만 연출자를 비롯한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톤은 물론 배우의 연기와 무대, 의상 디자인 등 여러 요소에서 오리지널 프로덕션과는 구별된다. 특히 <새장 속의 광인>과 같이 초연 프로덕션이 막을 내린 지 약 15년이나 지난 뒤 공연된 첫 번째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이전 프로덕션과의 차별성이 한층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작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되 새로운 프로덕션의 이미지도 함께 가미해야 하기에 경우에 따라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포스터 제작이 초연 작품의 작업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새장 속의 광인>의 2004년 프로덕션의 포스터는 한층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해진 무대만큼이나 포스터 디자인 역시 화사한 색감이 더욱 강조되었다. 2010년에 막이 올랐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2008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프로덕션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이다. 이번 프로덕션은 제작 당시 런던의 소규모 공연 단체인 미니어 초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에서 규모를 대폭 축소하며,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작품이었다. 이에 따라 포스터의 디자인도 더욱 생기 있고 입체감을 살리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이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인 소니아 프리드만(Sonia Friedman)은 작품의 성격을 가장 잘 묘사하는 포스터 디자인을 찾기 위해 후보작들을 자신의 사무실 벽에 일주일간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과연 내가 이 포스터와 앞으로도 내내 함께하고 싶을 것인가?”였다고 한다.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광고 에이전시 스팟코(SpotCo)의 대표인 드루 하지스(Drew Hodges)와 프리드만은 브로드웨이행을 결정한 이후 포스터 디자인을 두고 많은 고심을 했다. 프리드만은 후보작들을 두고 ‘작품의 한 가지 요소를 강조한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코믹하거나 또는 섹시함을 강조한 포스터는 작품이 지닌 다른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녀는 <오페라의 유령> 같은 유명 뮤지컬을 보기 위해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아트워크가 아니라 실제로 <새장 속의 광인>의 관객이 될 수 있는 뮤지컬 관객 또는 뉴욕커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야 함을 강조했다. 장고 끝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이트클럽의 느낌을 물씬 풍기면서도 새로운 <새장 속의 광인> 프로덕션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있는 마지막 포스터로 결정되었다.
공연의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하며 긴 시간이 소요된다. 공연의 메인 이미지가 확정된 이후라야 본격적인 마케팅, 홍보 작업에 착수할 수 있기에 보통은 개막일 이전 최소 6개월을 전후한 시점에 포스터 이미지를 결정짓는다. 이미지로 가장 먼저 공연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공연 포스터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7호 2011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