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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마리 앙투아네트> 차지연 [No.134]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장소제공|고센(02-515-1863) 2014-11-19 7,079
혁명가의 마음을 지닌 배우

11월을 앞두고 만난 차지연은 곧 막을 내리는  <더 데빌>의 그레첸과 새로 막을 올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  둘 사이를 오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내년이면 데뷔 10년 차 배우.  늘 다양한 작품과 역할로 꾸준히 자기 혁명을  계속해온 그녀는 어느덧 작품의 다양화,  여배우의 가능성, 후배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배우가 됐다.  한계를 깨부수고 모두에게 더 좋은 세상을  여는 것이 혁명이라면 차지연은 이제 자신이  그 혁명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들림 없는 사랑, 그레첸                            

<더 데빌> 공연과 <마리 앙투아네트> 연습을 병행하느라 많이 바빴나 봐요. 살이 쏙 빠졌네요. 
<더데빌>을 위해 일부러 체중을 10kg 가까이 줄였어요. 날렵하지 못한 몸으로는 그레첸의 예민함과 처절함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서요. 

그레첸 역할은 감정 소모도 굉장히 클 것 같은데 힘들지 않나요?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심적으로 깊이 치유 받았어요.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관객뿐 아니라 저 스스로에게도 느껴지거든요.

어떤 메시지가 그렇게 울림을 줬나요?
그레첸의 사랑. 존이 가하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레첸이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면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어요. 정답은 단순했어요. 사랑이었죠. 사랑은 곧 희생인데, 나는 나를 온전히 버릴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던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돼있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지연 씨가 <더 데빌>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굉장히 사랑해요! 저 자신을 온전히 확 태워버릴 수 있는 작품인데, 사실 여배우로서 이런 작품, 이런 역할을 만날 기회가 참 드물죠. 

이지나 연출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요.
네, 사실 이지나 선생님을 뵙기 전까지의 저는 그냥 주는 대본에 맞춰 노래하고 연기하는 배우였어요. 그런데 1년 전 선생님과 <잃어버린 얼굴>이란 작품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온전히 함께한 거예요. 그때 제가 고민해서 쓴 대사가 채택되고, 그걸 무대에서 직접 말하는 기쁨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더 데빌>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죠. 『파우스트』를 출판사별로 다 사서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어떻게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어요. 성경도 많이 봤어요. ‘매드 그레첸’의 가사는 선생님과 제가 쓴 것 가운데 좋은 부분을 합쳐서 완성한 거예요. 전 이런 작업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에게도 권하고 싶을 만큼 많은 것을 배워요. 

€관객들 사이에서는 꽤 호불호가 갈렸죠. 
초반에 혹평이 많을 때는 너무 속상하고 아팠어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 같은 작품이라서.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오히려 제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관객의 평가는 존중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상처받고 쉽게 흔들리고 싶진 않아졌어요. 배우로서 제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기에, 좀 부족하더라도 창작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더 많은 창작자와 배우들이 두려움 없이 창작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게요. 그렇게만 된다면 관객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요? 


€모두를 위한 정의, 마그리드        

그동안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많은 뮤지컬이 올라왔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은 없었어요. 역사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작품을 새로 만날 때마다 팬 분들이 꼭 그에 맞는 책을 선물해주세요. 지금 그 책들을 틈틈이 읽고 있어요. 극중에서 나와 함께 혁명을 선동하는 ‘에베르’는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출간한 ‘페르 뒤센’은 어떤 신문이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있죠. 제가 맡은 마그리드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되도록 많은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 내에서 유일한 허구의 인물이죠? 어떤 캐릭터인가요?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무대 위에 무슨 선머슴 하나가 막 휘젓고 다니거든요. 마그리드는 거리의 아이이기 때문에 걸음걸이부터 말투, 제스처 모두 굉장히 거칠어요. 여린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더 센 척, 더 당당한 척하는 아이죠. 동시에 굉장히 총명하고, 끊임없이 진정한 정의를 갈구하는 아이기도 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시게 될 거예요. 

실제 성격도 선머슴 같은 면이 있어 보이는 걸요. 
네, 평소 저의 털털한 모습이 많이 묻어날 것 같아요. 가끔 마그리드가 아니라 그냥 차지연이 튀어나와서 민망하다니까요!

마그리드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드라마의 핵심을 이루죠. 초반에 마그리드는 왜 그렇게 마리를 미워하는 걸까요? 
저도 의문이었어요. 정의를 찾는 혁명가라고 했는데, 이건 단순히 왕비를 시기 질투하는 거 아닌가? 아, 이러면 관객들이 날 무지 미워할 텐데! (웃음) 하지만 분명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요. 왜 우리도 농담으로 ‘내가 아무개 회장 딸이었으면’ 하는 얘기 곧잘 하잖아요. 이 아이는 부모도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늘 질문했던 것 같아요. 왜? 너도 사람, 나도 사람, 너도 여자, 나도 여자인데, 왜 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왜 넌 거기서 그렇게 살아야 해? 중요한 건 이 운명에 대한 저항이 개인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단 거예요. 마그리드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모든 극빈자를 위해 정의를 찾아요. 그래서 혁명에 앞장서는 거죠.

그럼 그렇게 증오했던 마리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유는 뭘까요?
2막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녀로 들어가면서 그녀의 삶을 안에서부터 바라보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내가 믿는 정의, 내가 믿는 혁명이 과연 옳은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껏 이렇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 밀고 들어왔는데, 막상 다 깨부수려고 보니까 의문이 드는 거예요. 이게 진짜 네가 원했던 거야? 네가 알던 정의가 이 가족의 삶을 박살내는 거였어? 왜냐하면 왕족이라고 하는 이들도 알고 보면 다 똑같은 인간이거든요. 그 안에도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많은 사연이 있는 거죠. 그걸 봤을 때 자신이 정의라고 불렀던 것의 오만함을 깨닫고, 이전까지의 마그리드는 와르르 무너져요.

작품의 로고인 ‘M.A’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를 동시에 상징한다고 들었어요. 뮤지컬에서 이렇게 여성 캐릭터가 투톱으로 서는 건 흔치 않은 일이죠.  
맞아요. 그래서 별로 기대가 없었어요. 남녀 간의 사랑도 아니고 여자끼리의 이야기가 얼마나 눈물을 자아낼 수 있을까? 그랬는데 와! 이번에 런스루 돌면서 숨을 못 쉴 만큼 울었어요. 마리가 처형당하기 앞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전까지 쌓여온 감정이 정점을 찍으면서 막 심장이 찢어지는 거예요.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정말 여자들 간의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아니, 내가 여자 때문에 이렇게 울어야 돼?’ 하고 저희끼리 농담하곤 하는데, 저 뿐만 아니라 (옥)주현 언니, (김)소현 언니, (윤)공주 씨 모두 많이들 울어요. 

마리 역 여배우들과의 호흡이 각별하겠네요.
주현 언니하고는 <몬테크리스토> 이후로 4년 만에 다시 만나는 건데, 그동안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더 멋지고 자기 중심이 확실한 배우가 됐더라고요. 그동안 저도 저만의 중심이 생긴 만큼, 서로의 에너지가 만나면서 내는 시너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소현 언니는 이 작품으로 처음 뵀는데, 실제로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강력한 모성애가 있어요. 그게 저한테 크게 와 닿아요. 여배우들이 참 이렇게 멋있구나,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어요. 



€10년차 배우가 꿈꾸는 혁명        

<서편제>의 송화, <더 데빌>의 그레첸,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까지 올해는 유난히 비극적인 캐릭터가 많았네요.
늘 그래요, 늘! (웃음) 저 진짜 밝고 재밌는 코미디도 하고 싶거든요. 근데 참 안 만나져요. 마그리드는 씩씩하고 웃기기도 하는 캐릭터라 ‘아싸!’ 하고 시작했는데, 예상 외로 너무 센 작품이라 ‘어머 세상에!’를 연발하고 있어요. 제 목소리가 갖고 있는 색깔이 이런 작품들과 잘 맞나 봐요. 제 목소리에 슬픔이 있나 봐요. 물론 그건 저만의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비극적이고 센 캐릭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비슷한 캐릭터가 반복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드라마가 센 작품들이라도 성격이 다 달라서 괜찮아요. 동서양을 왔다갔다 하고, 시대도 왔다갔다 하고, 오히려 작품마다 극과 극으로 변하고 있는 걸요. 여러 가지로 바뀔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배우로서 제가 가진 목표인데, 그 목표대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무대가 정말 재밌어요. 내 안에 또 어떤 모습이 있을까, 또 어떤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돼요. 

그럼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로는 어떤 게 있나요?
두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여성 최초의 헤드윅. 두 번째는 머리를 단발로 싹 자르고 <넥스트 투 노멀>의 다이애나를 해보고 싶은데, 그 역을 맡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아요. 제가 나이를 먹을 때까지 그 작품이 건강하게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내년이면 데뷔 10년차 배우가 돼요. 마음가짐에 있어 달라진 게 있을까요?
많이 달라졌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만 급급했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이지나 선생님께서 뮤지컬과 수시 지망생 심사를 보고 오셨는데, 여학생 절반이 제 노래를 부르더래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수많은 친구들이 제 노래를 듣고 연습한다는 얘길 들으니, 책임감과 사명감이 막중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더 진실하게 무대에 서야겠구나, 다짐하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후배들을 위해서 더 많은 길을 개척해주고 싶어요. 제가 여배우가 갖는 한계를 더 많이 깨부수고, 가능성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후배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는 거잖아요. 다양한 개성의 배우가 다양한 개성의 작품에서 빛날 수 있게, 앞장서서 그 길을 열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4호 2014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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