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본질
김수용을 만난 후 새삼 느꼈다. 선입견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불필요한 수고일까?
편견 없이 보이체크를 만나 그를 위해 스스로를 꾹 쥐어 짜내고 있다는 김수용.
그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을 때 상대와의 만남은 더욱 그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걸, 자연스레 상기시켜 주었다.
『보이체크』가 뮤지컬로? 김수용이 보이체크를? 이런 물음표가 품고 있을 선입견은 이제 고이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그저 있는 그대로 배우와 무대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반갑게 기다려보자.
선입견 없는 만남
한창 <보이첵> 연습 중이죠?
다들 이 악물고 연습하고 있어요.
더 야윈 것 같아요. 김다현 배우는 완두콩을 먹고 있다면서요?
네. (웃음) 제작 발표회 때 큰 이슈가 됐죠. 다현이는 완두콩 먹고 있는 걸로. 저는 불쌍해 보이는 걸로. 윤호진 연출님 말씀 때문에 굉장히 동정 어린 사람으로 소문나 버렸어요. 불쌍, 동정, 이런 것들이 김수용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됐더라고요. 그런데 저 그렇게 불쌍해 보이지 않죠? 하하.
이참에 오해를 풀어볼까요? 실제로 김수용은 어떤 사람인가요?
음…긍정의 아이콘? (웃음) 물론 사람이라는 게 부정적인 면도 있고, 소심한 부분도 있지만, 나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공연계 종사자들이 인간성이 최고인 연예인으로 수용 씨를 꼽은 적이 있었어요. (본지 104호 기획 기사-공연계 종사자 실태 조사 결과)
아, 맞다! 저도 들었어요. 이런 건 기사에 꼭 써주세요. (웃음) 제작사 관계자 분들도 염두에 두세요. 제가 작업할 때 제일 편한 배우랍니다. 그럼요. 그러니 캐스팅할 때 영순위는 김수용! 하하. 사실 그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냥 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기분 좋았죠.
긍정의 아이콘이 어쩌다 비운의 인물 보이체크를 만나게 된 거죠?
2년 전인가요. <영웅>에 출연하게 되기 전이었어요. <영웅>을 해보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윤호진 대표님을 만나 뵀어요. 그런데 <영웅> 전에 <보이첵>에 대한 말씀을 먼저 하셨어요. <보이첵>이란 작품을 할 예정인데, 네가 제격인 것 같으니 생각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되물었죠. 아니 제가 어떻게 보이체크를!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냥 제가 생각 나셨대요, 살찌우지 말고 준비를 좀 해놓으라고 하셨죠. 그래서 바로 말씀드렸죠. 감사합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보이체크에 제격이라는 말, 어땠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칭찬이 아니었나 싶어요. 보이체크 하면 너인 것 같아. 네가 생각났어. 네가 잘할 수 있을 거야. 화려한 미사여구보단 이런 말 자체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거잖아요. 물론 뮤지컬계에서 마르기로 소문난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라 절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웃음) 말씀 자체가 정말 감사했죠.
이후에 보이체크를 연기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 있어요?
아니요.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았어요. 궁금했거든요. 『보이체크』가 뮤지컬로? 미완성 희곡인 데다 연극 무대에서 파격적인 시도가 많았잖아요. 음악이 붙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음악이 가장 궁금했고, 또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까? 나름의 기대를 하며 첫 연습을 기다렸어요. 오히려 역할에 선입견을 가지고 뭔가 준비했다면,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이질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어, 이렇게 바뀌었어? 오히려 이질감이 없었기 때문에 작품에 녹아들기 쉽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다현이는 완두콩을 먹는다고 했는데, 저는 여기서 살을 더 빼면 살아있을 수가 없어요. 실은 고민이에요. 작품 때문에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 동료들이 연습실에서 볼 때마다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해요.
왜 자꾸 살이 빠지는 걸까요?
연습 하면서 신경을 정말 많이 써요. 역 창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거든요.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갖고 연기를 하며, 그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 어떻게 보면 춤이나 노래는 기술이라는 게 있고 내 정서가 백 퍼센트 들어갈 수 있지만, 연기는 막연해요. 내 정서가 다 들어가면 김수용이 보이니깐 안 되잖아요. 이런 작업들이 저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거예요. 그 시간 동안 살도 빠지게 되고. 그런데 이 와중에 작은 광명이라도 보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막 헤헤거리게 되죠. 열의 아홉 반은 힘들어 죽겠는데, 그중에 영 점 오의 뭐가 보이면, 우와, 대박!
우리 모두의 이야기
직접 연기해보니, 보이체크는 어떤가요?
대본 처음 읽고, 연출님이 모든 배우들에게 소감을 얘기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한 말은, 우리들의 이야기 같다는 거였어요. 시대가 백 년 전이고, 상황도 연극적인 특성상 굉장히 무겁지만 결국 인물 한 명 한 명이 이런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는 다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이런 선택지가 놓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번민은 다 똑같다고 봐요. 그래서 꼭 보이체크란 인물을 떠나서라도, 나의 모습이 여기 충분히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작부터 여느 작품보다 더 인물을 가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거죠.
보이체크의 순간들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뭐죠?
그냥 보이체크의 삶 자체요. 왜 저는 보이체크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을까요? 우리네 부모님들이라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모든 걸 던졌겠지. 당연히 그랬을 거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보이체크가 이 극 안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그냥 다 와 닿았어요.
음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영국의 인디밴드 싱잉 로인스의 음악이 참 독특하던데.
전반적으로 제 예상을 깼어요. 처음엔 굉장히 어두운 음악이 나올 줄 알았어요. 어둠의 끝! 근데 이게 웬걸요. 음악이 정말 트렌디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두세 곡을 먼저 받아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루비 목걸이’였어요. 이 노래가 어디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엔딩에 나온대요. 엔딩에 이렇게 트렌디한 음악이 나와요? 오, 색다르구나! 기존 뮤지컬 문법과 차별화돼서 좋았어요. 그런 음악과 극과 만나니 새로운 매력이 있더라고요.
『보이체크』를 뮤지컬로? 지금은 이런 물음표가 사라졌을 것 같은데, 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이 작품의 매력을 꼽는다면?
뮤지컬 무대에서 이렇게 극의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 올라가는 건 흔치 않을 거예요. 다른 작품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보이첵>이 뭔가 본질에 충실하고 정통적인 작품에 목마르셨던 관객들을 다분히 충족시켜드릴 수 있는 작품이란 말이죠. 또, 배우들 자체도 굉장히 연기에 목말라 있어요. 연기적으로 좀 더 파고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한 배우들이 다 모여 있으니, 과감히 선택하셔도 후회 없으실 거예요.
왠지 팀 분위기도 돈독할 거 같네요.
고생을 많이 하면…뭐랄까? 전우애가 생기는 거 같아요. (웃음) 지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거든요. 모두들 어려운 와중에 스스로를 쥐어짜고 있거든요. 다현이도 오죽했으면 완두콩을 먹었겠어요. 저 역시 하루하루 빨래 짜듯이 쫙 짜내고 있고요. 어제도 연습 끝나고 서로 모여서 했던 첫 마디가 “고생 많이 했어.” 이렇게 서로를 다독이는 분위기에요.
언젠가, 반드시
올해는 <아가사>부터 <모차르트!>, <보이첵>까지 다양한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후엔 또 어떤 역을 맡고 싶어요?
남자가 할 수 있는 배역은 다 맡아보고 싶어요. 딱 하날 꼬집어서 이야기하긴 그렇고, 드라마틱하고 이야기가 많은 배역은 다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또 저만큼 선입견을 많이 받는 배우가 없더라고요. 김수용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딴 건 모르겠는데, 제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인물을 만들어 내는 건 참 열심히 해내는 것 같아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잘 해낼 수 있으니 앞으론 선입견은 버려주세요. (웃음)
장르 불문하고요?
그럼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해보고 싶은 건 배우 누구나 지닌 소망일 거예요. 장르 불문하고 제가 필요한 곳에서 열심히 연기할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요?
연기 외에 또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삼 년 전에 발목 인대가 파열됐어요. 그 이후에 완치하려고 노력하느라 운동을 많이 못하고 있어요. 빨리 나아서 여름에 힘껏 뛰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그다음은… 사실 하고 싶은 건 머릿속에 굉장히 많아요. 곡을 써서 어딘가에서 조용한 발표회를 한다거나, 소극장에서 뮤지컬 쇼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또 나이 들면 연출에 도전하고도 싶고. 나중에 사업을 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앞으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분명히 해낼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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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보이첵> 김수용 [No.133]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4-10-29 6,034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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