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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프리실라> 마이클 리·김다현·김호영 [NO.130]

글 |송준호 사진 |김호근 스타일링 | 윤미경 2014-07-30 6,727
편견을 넘어 성장해가는 여정



초로의 트랜스젠더와 게이 콤비로 구성된 ‘드래그퀸 쇼 원정대’. 각 배역을 트리플 캐스팅해 총 아홉 명이 나서는 <프리실라>에서 굳이 마이클 리와 김다현, 김호영을 모은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각자가 이 작품을 선택한 뒷이야기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일정상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하는 세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따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세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묻기도 전에 극 중 인물과 자신들을 둘러싼 편견에 대한 생각들을 쏟아냈다. <프리실라>는 단순히 성 정체성에 대한 작품이 아니며, 인간이 성장해가는 여정을 담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공통의 해석과 함께. 




일상이라는 작은 여행

처음부터 그가 ‘꽃다(팬들 사이에서 김다현의 별명)’였던 건 아니다. 전형적인 미남형의 얼굴은 물론, 어떤 사진에서도 ‘굴욕샷’이 없는 완전무결한 외모가 ‘꽃’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더 결정적인 건 <헤드윅>과 <라카지>를 통해서였다. 특히 <헤드윅>에서는 다른 캐스트를 압도하는 미모와 몸매로 팬덤을 이끌고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퀴어 캐릭터마저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는 그에게서 ‘꽃다’가 발견된 건 당연해 보였다. 

게다가 올해는 연극 에 이어 <헤드윅>과 <프리실라>까지 잇따라 맡으면서 여자로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라고 이런 행보에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할 만한 퀴어 캐릭터는 다 했고, <라카지>를 마지막으로 비슷한 역은 맡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바꿀 정도로 버나뎃은 색다른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버나뎃은 삶 자체가 유머러스하면서도 고독과 슬픔을 지닌 인물이에요. 또 틱, 아담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리더로서 모든 것을 보듬고 해결해주는 모습이 흥미로웠죠.”

의젓하고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그는 사실 막내다. 그럼에도 이 역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건 그가 실제로는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형과 누나가 다 있지만 제가 부모님을 모셨거든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운 경험이 나이의 벽을 깨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왕년의 드래그퀸 스타 버나뎃은 50대다. 30대 중반의 김다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주로 젊고 예쁜 캐릭터를 소화해온 김다현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럴 때 <라카지>의 앨빈은 그에게 힘이 되어준다. “그때도 연출가나 제작진들이 ‘일부러 늙게 연기할 필요 없다’. ‘그 나이에서 풍기는 페이소스만 보여주면 된다’며 용기를 북돋워줬어요. 다행히 좋은 평이 나왔고 제 나이에도 그런 연기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죠.” 

사실 김다현이 <프리실라>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틱 역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버나뎃을 선택한 건 진짜 트랜스젠더 같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배우로서의 욕심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진짜 드래그퀸 쇼’를 선보일 수 있다는 욕심이다. “제가 전부터 퀴어 캐릭터들을 분석하면서 쇼를 보러 해외로 많이 다녔거든요. 진정한 드래그퀸 쇼의 특징 중 하나가 과장스러운 립싱크인데, 이번에 그걸 실제로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버나뎃의 대사 중 마음에 든 부분도 립싱크에 관한 것이다. “과장된 몸짓과 목 근육의 현란한 사용, 목젖에서 울려 퍼지는 끝없는 울림, 그리고 몽환적인 아랫입술의 떨림. 버나뎃은 이게 진정한 예술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립싱크가 더 기대돼요.”

여성인 척하는 연기와 퀴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김다현은 관찰을 통해 퀴어 피플들의 말투나 습관, 표정, 감정 상태 등을 포착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그런 결과 그런 요소들은 실제 그의 삶 속에 깊숙이 체화됐다. “생활 속의 그런 부분들이 무대에서 저절로 나와요. <헤드윅>에서는 정말 트랜스젠더 같다는 말도 들었어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언제부턴가 남성 관객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더군요.” 이렇듯 그는 거부감 없이 퀴어 캐릭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 <헤드윅>의 홍보 동영상으로 찍은 ‘슈가 무브먼트’에서는 <프리실라>의 안무를 그대로 빌려와 화제가 됐다.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헤드윅> 공연 때 이 춤을 모두 일어나게 해서 추고 있는데, 아마 <헤드윅> 팬들도 <프리실라>를 보러 오시면 ‘어? 저 춤?’ 하면서 반가워 할 거예요. (웃음)” 

<프리실라>는 여행을 통해 각 인물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김다현은 바쁜 스케줄 탓에 여행할 시간마저 내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에겐 본격적인 여행 대신 일상 속의 사건 하나 하나가 작은 여행이다. “누구와 함께 어떤 공간에서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중요해요. 일상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지만, 생각해보면 극장 가는 길도 굉장히 설레는 일이잖아요. 가장 큰 경험은 관객과 만나는 순간이고요. 그런 것들이 모여 저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 어쩌면 ‘우리’다

아홉 명의 남자가 화려한 꽃 가발을 쓰고 진한 색조 화장을 한 채 교태를 부리고 있다. <프리실라>의 제작사에서 했던 티저 이벤트 속 사진이다. 무대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한 이들의 정체를 맞히는 이 행사는 예상 밖의 고난도를 자랑하며 네티즌의 정답률을 낮췄다. 답을 유출한 제작사의 실수가 아니었다면 몇몇 인물은 끝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건 마이클 리였다. 그가 <프리실라>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돈 건 꽤 오래 전이었다. <서편제>의 동호만큼이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캐스팅이었기에 단순한 루머로 일축하는 이들이 많았다. 성실한 모범생 같은 그가 연기하는 드래그퀸 캐릭터는 예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이클 리는 퀴어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 어떤 다른 역보다도 현실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틱도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게이’보다는 ‘한국인(동호)’이나 ‘프랑스인(그랭구아르)’ 캐릭터를 고민하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요.” 그는 <서편제>를 할 때 시대적 배경과 한국의 정서를 몰랐기 때문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 역시 15세기의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텍스트로만 접했기 때문에 사실적인 표현이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반면 <프리실라>의 틱은 게이여도 가족 안에서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보여서 상대적으로 익숙했다는 설명이다. “틱처럼 좀 더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험이고 지금의 저에게는 오히려 도전 같아요.” 더구나 그가 생각하는 게이는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개념과 그 범위가 다르다. “사실 게이인 것과 게이가 아닌 것의 경계도 확실하지 않거든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게이 친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성격과 성향이 천차만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가 보여주고 싶은 건 게이들의 시끌벅쩍하고 화려한 모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관심 있는 부분은 그 과장된 화려함의 이면에 있는 진솔한 고민과 사연이다.

이처럼 성별 정체성이라는 진부한 편견을 벗고 보면, 틱은 사실 마이클 리가 잘 해낼 수 있는 유형의 인물이다. 퀴어 피플로서의 고충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등 인간적인 고뇌의 표현은 온전히 마이클 리의 영역이다. 게이와 드래그퀸이라는 설정이 마이클 리의 기존 이미지와 잘 매칭이 안 되지만, 그건 듀티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벽을 뚫는 남자>가 공개되기 전, 듀티율이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주는 캐릭터가 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랭구아르와 듀티율, 동호로 이어진 마이클 리의 최근 선택은 자신에 대한 편견을 무너트리는 과정 같다는 인상을 준다. 

마이클 리는 이번에는 틱을 통해 그 편견과 맞선다. 문제는 화려한 의상과 댄스 등 비주얼이나 퍼포먼스에 관한 부분이다. 개막을 앞두고 <프리실라>의 전 배우들은 오전 일찍부터 밤 9시까지 매일 강도 높은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마이클 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연기나 노래가 중요한 작품이었다면 이번에는 안무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요. 결국 연습량의 문제죠. 그래도 안무가가 배우별 맞춤 안무를 해줘서 즐기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웃음)” 자신은 댄스 실력이 좋은 배우는 아니라고 겸양하지만, 촬영장에서 잠깐씩 보여준 그의 몸짓에는 미국 본토의 그루브가 살아 있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거리에서는 마침 퀴어문화축제의 일환으로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 단체 등 보수단체의 방해 등으로 전경과 대치하는 등 한차례 잡음을 빚기도 했다. 비록 퀴어 코드의 작품이 어느 해보다 많이 공연되고는 있지만, 퀴어 피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 리는 <프리실라>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어느 정도 변화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며, 쇼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연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공연 자체도 재미있지만 <프리실라>는 개인의 책임감을 찾는 여정이에요, 그래서 더욱 공감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난 여전히 잘 노는 배우 

김호영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일정은 <더뮤지컬>과의 인터뷰였다. 입대 하루 전날이라 ‘빡빡머리’였지만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 김호영의 모습에서는 ‘역시 김호영’이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 에너제틱한 타입의 배우에게 병역이라는 짧지 않은 전환기는 특유의 에너지를 잃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전역 후 <미스터 쇼>의 MC 역할로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온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오히려 에너지가 더 강해졌어요. 물론 군대에서 달라진 게 있긴 있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구들과 있다 보니 자연스레 상담역을 많이 맡게 됐는데, 결국 제가 할 일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더라고요.” 워낙 어린 나이에 일찍 데뷔한 김호영에게는 뭘 해도 ‘나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잘해도 어린 나이에 비해 잘한 것이고, 못하면 어리니까 못한 거였다. 인정받기 위해선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열정이 지나쳐 정의의 사도마냥 웬만한 일에는 다 나섰다.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그냥 순리대로 내버려두어도 되는 거잖아요. 너무 날이 선 채로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성숙되고 노련해진 김호영은 전역 후 한 번의 무대 경험으로 금세 감을 되찾았고, 본격적인 복귀작으로 <프리실라>를 택했다. 인기 많은 사고뭉치 게이인 아담은 김호영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려의 시선도 있다. “드래그퀸(<렌트>의 엔젤)이나 게이(<라카지>의 자코브) 같은 역을 또 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는 걸 알아요. 그런데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희소가치가 있는 역 또한 그런 것들이잖아요? 군대 다녀왔다고 무조건 안 해본 역에 도전하기보다는 원래 제가 가진 끼를 분출해 발랄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김호영은 넘치는 끼 때문에 대책없는 천방지축 캐릭터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특장점을 잘 알고 그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는 영악한 배우다. 그런 그가 답답해 하는 것은 퀴어 캐릭터에 대한 편견 또는 좁은 인식이다. “사람들은 엔젤과 자코브, 아담을 그냥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요. 그냥 한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죠. 가령 제가 다음에 틱이나 버나댓을 해도 ‘또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할 걸요? 그런데 이들은 성적 취향이 같을 뿐이지 다 다른 사연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거든요. 인물 구축하는 방법도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물론 그도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를 안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편견조차도 자신의 연기로 극복해야 할 대상인 것도 알고 있다. 이를 위해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무기는 결국 ‘김호영스러움’이다. “제게 중요한 건 내가 하나의 브랜드나 아이콘이 될 수 있느냐이거든요. 절 봤을 때 어떤 배역이 잘 어울린다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아담 역에 제일 먼저 떠올렸던 배우다. 하지만 그 예상만큼만 해내는 건 그의 성에 차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두 후배 아담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도 뽐내야 한다. “일단 그들은 20대고, 저는 30대잖요. 그 나이에 나오는 에너지나 발랄함은 흉내낼 수가 없어요. (웃음) 특히 (조)권이는 특별히 뭘 안 해도 그냥 통통 튀고 예뻐요. 아담이 딱 그래야 하거든요. ‘나도 20대 중반 때 너처럼 펄펄 날았는데’ 하고 농담도 해요.” 

하지만 엄살과 달리 그는 여유만만하다. 2년 넘게 발산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온 끼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김호영스러움’을 제대로 뿜어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대되고 설레요.” 게다가 그는 전에 부족하던 관록과 노련미마저 장착했다. “다른 배우와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상대 캐릭터가 더 돋보여야 하는 대목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저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부분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능숙함이 생긴 듯해요.” 그런 그가 이번 작품에서 바라는 모습은 예전의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요즘 제가 내세우는 카피가 ‘미친 듯이 행복해지는 <프리실라>’거든요. 정말 미친 척하고 아담에 푹 빠져서 사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노련한 김호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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