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대본과 뛰어난 만듦새를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는 K-뮤지컬.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더뮤지컬이 6, 7월 두 달에 걸쳐 한국 뮤지컬의 해외 시장 진출 현황과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연 제작에 뛰어든 다미로 작곡가. 창작자를 넘어 공연 제작사 겸 매니지먼트의 대표가 된 지 어느덧 3년, 첫 제작 작품인 <유진과 유진>을 시작으로 자신의 신념을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 그는 오래도록 좋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길 꿈꾼다.
뮤지컬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공연 제작사이자 매니지먼트 회사인 낭만바리케이트를 설립한 지 3년이 흘렀다. 창작자 겸 제작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나.
우스갯소리로 공연업을 할 때 ‘낭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회사다. (웃음) 뮤지컬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믿음 중 하나는 ‘뮤지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성이 있는 뮤지컬도 좋지만, 우리 공연을 보고 난 후 관객분들이 ‘이 혼란한 시대에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깨달음을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첫 제작 작품이 <유진과 유진>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고 뮤지컬로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뮤지컬로는 흔치 않은 여성 2인극이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문을 두드린 제작사마다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제작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처음 시작할 때는 작곡가가 어떻게 공연을 제작하냐고 걱정 혹은 우려 섞인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 역시 평생 악보, 대본만 보다가 제작자의 입장에서 매출, 데이터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덧 4년 차가 됐다. 이제 메시지와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통해 내실을 다질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연 제작뿐만 아니라 배우, 창작진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서서 뮤지컬계의 불합리한 구조를 조금이나마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13년째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데, 창작비는 13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하락한 것이다. 그래서 내 후배들은 노력한 만큼 보장받는, 지금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창작자의 생계가 보장되어야 뮤지컬 전문 창작자의 수가 늘어날 것이고, 그래야 한국 뮤지컬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 제작 작품인 <유진과 유진>이 지난해 11월 리딩 공연으로 대만 관객을 만났다. 해외 진출 도전 역시 ‘내실 다지기’의 일환인가.
사실 뮤지컬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포화 상태 아닌가. 대부분의 작품이 공연만으로는 이익을 얻을 수 없고, 신생 제작사의 경우 공연장 대관 기회를 얻는 것조차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대학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해외 시장으로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작곡을 맡은 뮤지컬 <어린왕자> 공연을 위해 대만에 갔을 때 현지 제작사인 C뮤지컬의 장심자 대표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을 제작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성향이 잘 맞는다고 느꼈고, <유진과 유진>의 이야기를 대만 관객에게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 사업을 통해 대만에서 리딩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장심자 대표님이 대본, 악보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작품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믿음이 생겼다. 대만 문화에 맞게 각색도 재치 있게 해주셔서, 큰 문화적 이질감 없이 대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 <유진과 유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대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동시다발적으로 이 이야기가 공연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아동 성폭력 근절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지만 슬프게도 아동 성폭력이 근절되는 것은 아직까지는 쉽지 않을 테니, 이 작품을 통해 그런 범죄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조금이나마 변화하길 바란다. K뮤지컬국제마켓의 ‘뮤지컬 드리밈’ 피칭 프로그램에서 <유진과 유진>을 해외 관계자에게 소개했는데, 가장 먼저 일본 측 관계자에게 계약 제안이 왔다. 관광객이 많은 브로드웨이 특성상 쇼적인 요소가 강한 뮤지컬이 주를 이루다 보니, 영미권 관계자에게 ‘이런 작품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 선보임’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번 더 위치>를 소개했다. 지난해 진행한 작품 낭독회 ‘작곡열전’에서 처음 공개한 작품인데,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번 더 위치>는 개발 단계부터 영미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 마녀사냥을 당하는 마녀와 대중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스타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내용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지닌 것은 물론, 해외 관객에게 익숙한 소재와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 해외 시장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식 공연 때는 독특한 형태의 무대로 매력을 더하고 싶어서 구상 중에 있다.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머시브 형태의 공연을 계획 중이다.
낭만바리케이트의 해외 진출 관련 추후 목표가 궁금하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가.
영미권 시장 진출이 최우선 목표다. 이번 토니어워즈에서도 한국계 디자이너 두 명이 상을 받지 않았나. 향후 10년 안에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뮤지컬이 등장해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믿는다. 낭만바리케이트도 글로벌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앞으로 펼쳐질 한국 뮤지컬의 활약에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 아직 해외 시장 진출에 있어서는 시작 단계이다 보니 협업 국가와의 소통이나 계약 내용 조율 등 진출 과정에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작품성 측면에서는 걱정이 없다. 한국 뮤지컬의 완성도는 이제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