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초연을 앞둔 <어쩌면 해피엔딩>과 웨스트엔드 관객을 만나고 있는 <마리 퀴리>, 해외 시장에서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유앤잇>, 그리고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국가 곳곳에서 공연 중인 각종 창작 뮤지컬까지! K-뮤지컬은 탄탄한 대본과 뛰어난 만듦새를 인정 받아 빠른 속도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더뮤지컬이 6, 7월 두 달에 걸쳐 한국 뮤지컬의 해외 시장 진출 현황과 글로벌 뮤지컬 시장의 흐름을 들여다봅니다. 먼저 한국 창작 뮤지컬을 해외 시장에 선보인 제작자, 창작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뒤, 최승연 평론가가 세계 시장 속 한국 뮤지컬의 활약을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사의찬미> <비스티> 등 대학로 대표 흥행작을 꾸준히 선보인 주식회사 네오가 이제는 세계 무대로 발을 넓힌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을 기반으로 <배니싱> <더 라스트맨> 등의 작품을 통해 해외 관객과 만난 것이다. 영미권 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 동시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네오 이헌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식회사 네오는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 진출, 사업 확장 등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재미있고 즐겁게 일하는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웃음) 무엇보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관객을 알 수가 있고, 관객을 파악해야 좋은 공연을 기획, 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잘 모르지 않나. 상대 국가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공연을 올리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팬데믹을 겪으면서 위기의식이 크게 들었고, 회사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먼저 해외 시장의 문화, 관객에 대해 조사한 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배니싱> <사의찬미> 등을 중국 시장에 진출시켰다. 중국 제작사와 어떻게 연을 맺었나.
2021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 온라인 로드쇼’를 통해 중국에서 <사의찬미>와 <배니싱>의 영상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그때 중국 공연 관계자들이 두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다. 7~8개 제작사와 화상으로 미팅을 진행했고, 그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력을 지닌 제작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제작 과정을 거쳐 두 작품 모두 2023년 하반기 상해에서 공연됐다. 두 작품의 라이선스 공연을 위해 해당 제작사와 왕래를 하던 중 중국 측 프로듀서가 한국에 방문해 네오의 또 다른 뮤지컬인 <사칠>을 관람했는데, 그걸 계기로 <사칠>도 계약을 맺어 지난 5월 상해에서 짧게 공연했다. 추가로, <배니싱>은 작년 10월 홍콩의 초청을 받아 한국 배우들이 오리지널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공연 관계자들도 많이 관람했는데, 공연의 높은 완성도와 배우들의 실력에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
<더 라스트맨>은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영미권 중기 개발지원 사업의 중간 결과물이었다.
한국에서도 배역의 성별을 제한하지 않는 1인극이기 때문에 뉴욕에서도 여성 배우 한 명, 남성 배우 한 명과 리딩 쇼케이스를 했다. 작년에는 각색을 최소화하여 한국 버전을 최대한 살리는 방항으로 진행했다. 다만 마지막에 생존자가 보호 센터 같은 시설로 보내지는 결말로 변화를 줬다. 공연 속 캐릭터가 마주한 문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창작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야기 안에서 인물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각색 과정에서 우세했다. 그런데 그런 결말은 마치 인물의 고독과 단절이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해외 창작진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저는 작품에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반영해야 공연이 성공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올라가는 시장의 문화가 그렇다면,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뉴욕에서 추가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 대본 각색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에 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현지화 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충분히 확장성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국가별로 꼭 똑 같은 버전으로 공연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라이선스 공연을 진행할 때 적극적인 각색을 추구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작품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국가별 관객에게 와닿는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작품이 지닌 본질,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의 적절한 각색은 필요하다고 본다.
<더 라스트맨>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라이선스 계약 제안이 온 상황이다. 언젠가는 각기 다른 버전의 <더 라스트맨>이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공연되길 바란다. 지구 상 어디에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자가 있으니까. 전 세계에 있는 ‘생존자’에게 우리 작품의 메시지가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더 라스트맨> 공연 장면.
<마지막 사건>은 ‘K-뮤지컬 로드쇼 in 아시아’에 선정되어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개최했다. 앞서 일본에 한국 뮤지컬 전용관을 설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일본 시장에서의 한국 뮤지컬의 가능성을 어떻게 봤나.
<마지막 사건>은 일본과 라이선스 계약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다. 일본 라이선스 공연은 일본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성재준 작, 연출가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26년쯤 라이선스 공연과 투어 공연을 함께 진행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일본은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한국 뮤지컬 시장과 문화적으로 유사한 부분도 많다.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부가가치가 높은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본에 한국 뮤지컬 전용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더 시장 조사를 한 후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작품의 해외 진출 관련 업무가 과중해 지면서 전용관 설립 계획은 아쉽게도 잠정적 보류 상태다.
이제 막 세계 시장에 뛰어든 프로듀서로서, 해외 시장 진출에 도전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저는 사업가로서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웃음) 안정을 추구하고, 더 많은 수익보다는 손실을 줄이는 것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이 필요했다. 해외 시장 진출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고민했던 점도 ‘수익을 낼 수 있는가’였다. 들어가는 비용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각종 지원 사업이 해외 진출의 첫 단계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어떤 일을 하든 성공 사례가 없다면 도전을 주저하기 마련인데, 첫 시작을 지원해 준다는 점이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