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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연출노트] <섬: 1933~2019> 바람에 실려 온 사랑

글 |이솔희 사진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2024-06-26 1,554

 

음악극 <섬: 1933~2019>(이하 <섬>)은 1930년대 소록도의 한센인, 1960년대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2019년 서울의 발달장애 아동 가족, 세 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다시금 퍼트리는 창작 집단 ‘목소리 프로젝트’(박소영 연출가, 이선영 작곡가, 장우성 작가)의 두 번째 작품으로, 2019년 초연 이후 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박소영 연출가의 연출 노트를 함께 펼쳐 보자.

 


 

<섬>은 공연 소품으로 천을 중점적으로 사용합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인물에게 뗄 수 없는 오브제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환자들을 치료하며 사용했을 붕대가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붕대, 즉 천의 이미지를 공연에 전체적으로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천은 장면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우선, 처음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한센병 환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습니다. 발병에 의한 외적인 변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희의 단순한 표현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섬>은 3대에 걸친 이야기잖아요. 한센병 환자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3대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구분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1930년대의 한센병 환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얼룩덜룩한 잿빛의 천을 배우들에게 둘러서 표현했어요. 1960년대 한센병 환자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증세가 조금은 완화된 모습을 따뜻한 색감을 지닌 황토색 천으로 표현했고요.

 

2019년 현대의 인물에게서 천의 요소는 고지선의 아이인 지원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업: 보통 사람 되기’ 장면인데요. 그 장면에서 지원은 한 배우가 맡아서 연기하지 않고, 여러 명의 배우가 ‘지원’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번갈아 가며 등장합니다. 이 모자 역시 천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표현 방식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죠. 이렇게 극 전반적으로 인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되 천이라는 소품을 통해 관객분들이 인물을 분별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사랑이 머물던 시간

<섬>은 시대적 배경에 따라 음악적 색깔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해요. 1930년대는 드라마틱하면서 국악적인 색채가 있고, 1960년대는 성스럽고 따뜻한 느낌이 강해요. 2019년대는 베이직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고지선의 남편이 게임 개발자로 등장하는 점에서 착안해 게임 음향 같은 소스를 활용하기도 했어요. ‘사랑이 머물던 시간’은 이런 음악적 특색이 잘 느껴지는 넘버예요.

 

앞서 말했듯이 <섬>에서는 천을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이 넘버에서는 천으로 바람을 표현해요. 실제로 소록도에는 바람이 많이 불거든요. 극 중 인물들이 소록도에서 살아가며 온몸으로 느꼈을 바람을 관객분들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길 바랐어요. 이뿐만 아니라, 천을 자유롭게 휘날리는 모습을 통해 이제 우리 공연 안에서 이 천들의 쓰임새가 자유자재로 바뀌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기도 했고요.

 

늘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다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소록도를 떠났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을 바람이 부는 듯한 안무를 통해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또,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이 장면에서 마치 소록도를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처럼 움직이고, 소록도의 사람들을 바라보듯 애정 어린 눈으로 객석을 바라봐요. 모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사랑이 머물던 시간을 관객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랍니다.  

 

 

수업: 보통 사람 되기

지선이 지원과 함께하는 자신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에요. 게임처럼 빠른 리듬의 음악을 통해 지선이 하루하루가 게임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하는 숨 가쁜 과정처럼 느껴지게 표현했죠.

 

이 장면에서 모자를 쓴 여러 명의 지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잖아요. 지선이 잡으려고 하면 빠져나가고, 잡으려고 하면 또 빠져나가죠.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엄마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이때만 해도 지선은 자신이 앞으로 아이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잘 모를 때예요. 그 방법을 배워 나가기 바쁘고, 이 아이를 키워내기 바쁜 지선의 모습이 이 장면에 담겼어요. 누구에게나 인생은 처음이잖아요. 지선이라는 인물이 아이를 능숙하게 키워낸 슈퍼우먼이 아니라, 계속해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현실을 버거워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너지고, 지치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수선과 지선의 대화

마지막 장면, 수선과 지선이 대화를 나눠요. 지선이 “나 진짜 잘하고 있냐”고 물으면, 수선은 덤덤하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죠. 사실 지선은 지원이를 잘 보살피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속에 명확한 답을 품고 있지는 않아요. 지원이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사람들을 마주했던 지하철에서의 그 짧은 순간 동안 어떤 가능성을 확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거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절망감을 느껴야 할까 두렵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선이가 던지는 질문은 긍정을 향해 나아가지 않아요. 그래도 안 되면? 또 해도 안 되면? 이렇게 계속 의문을 갖죠. 해도 해도 안 되는, 그런 순간들을 이미 너무 많이 겪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수선의 입을 통해 스스로에게 해줘요. 될 때까지 하면 된다고. 네가 할 수 있는 거를. 그래서 수선이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할 때 꼭 객석을 바라봐 달라고 배우들에게 요청했어요. 그 말이 지선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를 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삶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좌절했던 우리 모두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리길 바랐어요. 그 말을 들은 지선이 힘차게 외치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 ‘정말 힘들지만, 내가 한번 해볼게!’라는 마음이 담겨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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