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벤자민 버튼>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 <벤자민 버튼>이 지난 11일, 가슴 따뜻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작품의 연습 현장부터 창작진, 배우 인터뷰까지! <벤자민 버튼>의 모든 것을 더뮤지컬이 들여다봅니다.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이 주인공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벤자민 버튼>은 오는 6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됩니다.
김재범은 뮤지컬 <벤자민 버튼>을 만나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말이다.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 이제야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차분히 받아들이게 됐다는 그는 오늘도 끝나지 않을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나간다.
최근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요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정말 바빠요. <벤자민 버튼> 공연하고 있고,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도 공연 중이고. 동시에 뮤지컬 <등등곡> 연습도 하고 있어요. <등등곡>도 <벤자민 버튼>처럼 창작 초연작이기 때문에 관객분들에게 새로운 공연을, 잘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한동안은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에 다시 출연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올해는 <웨스턴 스토리>부터 <벤자민 버튼> <등등곡>까지 세 작품 연속 새롭게 참여하는 뮤지컬이에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2022년 즈음, 드라마 촬영 때문에 공연을 자주 못 했던 시기가 있어요. 그 이후에도 말씀하신 것처럼 한 번 출연했던 작품의 새로운 시즌에 다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봐요. <웨스턴 스토리>는 2022년 초연 때 참여하기로 했던 작품인데, 아쉽게도 촬영이 겹쳐서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작사 분들께 재연 때 불러 주시면 꼭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시즌에 다시 찾아 주셔서 함께하게 됐죠. 사실 <벤자민 버튼>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는 이미 <등등곡> 출연이 확정된 상황이었어요. 제안 주신 김에 대본이라도 읽어 보자는 마음에 대본을 읽어 봤는데, 따뜻한 매력에 마음이 끌렸어요. ‘나이 듦’과 이별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도 공감이 많이 됐고요. 다행히 <등등곡> 측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신 덕분에, 스케줄을 조정해 두 작품 모두 함께할 수 있게 됐어요.
<벤자민 버튼>의 따뜻한 매력에 이끌렸다고 했는데, 작품의 어떤 점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던가요?
대본을 읽고 쇼케이스 영상을 찾아봤는데, 퍼펫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화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동화처럼 판타지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이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따뜻한 순수함과 <너를 위한 글자>의 잔잔한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이전까지는 에너지를 많이 쏟아내야 하는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보니,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던 것 같아요.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가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퍼펫을 통해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퍼펫과 함께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 녹록지 않았겠죠?
‘퍼펫의 존재를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관객분들이 퍼펫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함이 있었어요. 연습 초반에 쇼케이스 공연 영상을 봤는데, 저 역시도 처음에는 퍼펫이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배우에게만 시선이 가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관객분들이 퍼펫과 함께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 더 잘 집중하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연습 초반부에는 벤자민 퍼펫과 벤자민 버튼 역할의 배우가 거의 모든 행동을 같이 했는데, 그보다는 배우가 퍼펫의 내면을 잘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공연 중에는 퍼펫에게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행동하는 장면도 많아요. 또, 퍼펫을 조종하면서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문득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이 퍼펫을 조종하고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인 거지?’ 연출님과 이야기 나눈 끝에, 저는 벤자민을 조종하는 제가 벤자민 퍼펫의 내면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내가 내면이고, 저와 함께 퍼펫을 조종하는 다른 배우들은 벤자민의 뼈와 살, 근육이 되어주는 거죠. 그렇게 모두가 벤자민을 구성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 벤자민 버튼이라는 인물에게 더 깊이 공감 되더라고요.
벤자민 버튼은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반대로 흐르는 인물이잖아요. 이러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외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나이 든 목소리로 어린 감성을 연기해야 하나?’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노인의 몸을 연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연출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꼭 외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각 나이대의 정서만 잘 가져가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린아이의 순수함, 청춘의 패기, 노인의 차분함 등이요. 물론 연기하면서 각 나이대에 따라 목소리 톤에 어느 정도의 차이를 두긴 하지만, 외적인 차이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연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서의 차이에 집중하고 있어요.
뮤지컬과 원작을 공유하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인물의 특징이 크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통해 벤자민 버튼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니 그의 인생이 왠지 안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맞아요. 저는 벤자민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경험을 겪어 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커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평범한 일인데 말이에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아이가 겪었을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서도 마음이 쓰이고요. 아마 벤자민은 그래서 블루에게 더 빠져들었을 것 같아요.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 순간이 강렬했기 때문에 벤자민은 평생에 걸쳐 블루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거죠. 여담이지만, 치매에 걸린 블루가 잠시 기억을 되찾고 벤자민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벤자민이 “3분이라도 함께해서 좋았다”는 말을 하거든요. 저는 그 대사가 참 좋더라고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블루의 곁을 지키는 벤자민에게는 그 3분이 얼마나 기쁘면서도 눈물 나는 순간이겠어요.
마지막 장면, 벤자민 버튼이 신생아의 모습으로 블루의 품에서 죽음을 맞을 때 재범 씨는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고 있잖아요. 그때 벤자민 버튼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렇게 블루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지만, 아기의 몸이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 순간에 블루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요. 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블루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고 싶어서 간신히 손을 들어 올리지만,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요. 그 후에 저는 밝은 빛과 함께 무대 뒤로 퇴장해야 하는데, 가기 싫더라고요. 그 빛이 벤자민 버튼의 삶을 영원히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두 사람이 비로소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이니 저도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게 점점 더 어려워져요.
사랑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벤자민 버튼>에서 마음 깊이 다가온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죠. <벤자민 버튼>을 공연하면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지?’,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하며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충실하게, 만족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서 작품 속 ‘나이 듦’이라는 키워드에도 마음이 갔다고 말했잖아요. 재범 씨에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 마디로 대답하자면, ‘싫다!’ (웃음) 어릴 때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잖아요. ‘뭐 하고 놀지? 누구랑 놀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했고, 배우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다음 오디션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그 후 점점 시간이 흐르고, 제가 부모님의 나이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어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이 들기 참 싫지만,(웃음) 이제 점점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요. 스무 살 때의 제가 저 자신을 어리다고 생각하지 못했듯, 지금의 저도 제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마주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덤덤히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재범 씨는 지난 2~3년간 무대를 넘어 영화, 드라마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있잖아요. 40대에 들어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는 재범 씨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타이밍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나이 들어간다는 게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0대가 되어 보니 이런 점은 좋더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저도 영화를 찍고, 드라마에 출연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인생에 큰 변화는 없더라고요. (웃음) 그냥 일하는 환경이 달라진 것뿐이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오히려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면서, 물 흐르듯이 살아가면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을 체감하고 있죠.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이렇게 제게 찾아온 변화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점 같아요. 조급해 하지 말고, 내려놓지도 말고, 터닝포인트가 찾아오면 덤덤히 받아들이고, 살던 대로 살자. 스스로 계속 다짐하고 있어요.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서,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어요.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웃음) 옆에서 오랫동안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운이 참 좋은 거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20년 동안이나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게. 물론 지칠 때도 있지만,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즐거운 순간이 훨씬 많았어요.
다가올 20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마음이 조급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나이는 점점 많아지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요.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그래 조급해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급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앞으로 배우로서 일이 더 많이 생길 수도, 아니면 더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고 그저 언제든 연기할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언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인간 김재범의 목표는… ‘얼른 노후 준비를 하자.’ (웃음)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여행 가는 것도 모두 체력이 중요하니까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열심히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현실적인가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