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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그들에게 시간과 여유를!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아이스톡 2024-05-23 1,774

 

뮤지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대극장보다 중소극장에서 1년간 올라가는 뮤지컬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좀 더 세분화해 보자. 현재 현장에서는 500석에서 1,000석 미만의 중극장에서 가장 많은 뮤지컬이 공연되며, 그다음이 300석에서 500석 미만이고, 그다음이 300석 미만의 소극장이다. 1,000석 이상의 대극장은 소극장보다도 건수가 적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집계 기준으로 이 패턴은 2021년 이후부터 지속되고 있다. 2020년까지 300석 미만의 소극장 공연 건수가 가장 많았으나 2021년부터 한풀 꺾이더니 2023년에는 반등이 어려워 보일 정도로 수치가 떨어졌다. 2023년 기준 300석에서 1,000석 미만의 중극장 뮤지컬 공연 건수는 총 1,800건을 넘어섰으나 300석 미만의 소극장은 677건에 그쳤다.

 

이 지표는 코로나 시대 이후 뮤지컬은 300석 이상의 중극장 규모로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증명한다. 다소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중극장 규모로 다룰 수 있는 작품이 가장 선호된다는 뜻이다. 뮤지컬은 이제 소극장을 벗어나 적어도 300석 이상의 객석 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장성 있는 기획 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모로 보나, 300석에서 1,000석 미만 규모의 공연은 현재 시장의 미드필더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창작뮤지컬이다.

 

지원제도와 레퍼토리화

이 현상을 고무적으로 읽지 않을 이유는 없다. 시장으로 유입되는 창작 작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상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다양해진 창작뮤지컬 지원제도의 영향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원제도를 잠시 살펴보자.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과 신진스토리작가 육성지원사업, 국립정동극장의 창작ing 그리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의 창작뮤지컬지원사업, 중구문화재단의 창작뮤지컬어워드 NEXT가 있다. 민간기관 지원사업으로는 CJ문화재단의 스테이지업, KT&G의 상상마당 공간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제도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이 제도들의 목표는 모두 동일하다. 시장에서 레퍼토리로 살아남을 수 있는 창작뮤지컬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좀 바꿔볼 필요가 있다. 지원사업은 많고 꾸준히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지원사업을 통해 개발된 작품들이 큰 주목을 받으며 시장의 흐름을 바꾼 적이 있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과거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를 통해 개발된 <여신님이 보고 계셔>(2013),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 개발지원작 <난쟁이들>(2015), 우란문화재단 창작프로그램을 통해 시작되었던 <어쩌면 해피엔딩>(2016)과 <레드북>(2018, 우란문화재단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신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신진스토리작가 육성지원사업 ‘글로컬 라이브’로 개발된 <팬레터>(2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시작된 <호프>(2019) 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배출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작품성이 모든 것에 선행하는 또 다른 모델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는 이야기다.

 

파트너십의 중요성

그렇다면 이런 ‘공백기’ 같은 현상은 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이박 트리오’로 활동하고 있는 박소영 연출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박소영 연출은 한 인터뷰에서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처럼 안정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은 창작진들도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이야기는 흥행작 생산과 창작진들의 삶의 질은 그다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장의 파이가 크지 않고 제작사의 수익이 높지 않아서 벌어지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창작진에 대한 업계의 처우는 그리 좋지 않다. 산업화가 본격화된 지 20년이 넘었으나 특히 작가는 여전히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작가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모든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특히 개인을 위한 보호 장치가 없어서 여러 결정의 단계에서 법적인 권리 주장은 쉽지 않다. 권리 주장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인지는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창작을 꿈꾸는 많은 예비 인력들의 진입을 막는 이유가 된다. 실제로 지원제도를 통해 어렵게 첫 작품을 올린 작가들이 제작 과정 중에 크게 상처를 받아 인접 장르로 방향을 틀어버리거나 작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꽤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창작진들이 현장으로 모여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보통 창작자들이 원하는 건 처우에 대한 인식 이전에, 데뷔다. 가장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모두 데뷔를 갈망하지만 그들이 모두 동일한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작가와 작곡가가 뮤지컬 전문 교육을 이수했는지의 여부가 시장 유입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육을 통해 쌓인 전문적 역량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창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작가-작곡가 사이에 구축된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다. 전문 교육장이라는 플랫폼에 모여 꾸준한 도전과 실험의 결과로 구축된 파트너십은 진입 이후 작업의 지속성을 보장해 주는 핵심적인 요소다. 모 작곡가는, 작업 파트너와의 만남은 결혼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간해서는 갈라서기 어려운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라는 의미에서다.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보자. 결국 콤비 플레이다. 특히 한정석-이선영, 박천휴-윌 애런슨은 과거 지원제도를 통해 현장에 유입된 이후 꾸준한 협업을 통해 브랜딩에 성공함으로써 창작진이 관극의 이유를 제공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유명세는 다작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 킬러 콘텐츠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작품의 완성도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생각을 맞추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들의 콤비 플레이 때문이라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주목할 것은 이들의 ‘만남’이다.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를 양성하는 사설 교육기관 ‘불과 얼음’을 통해 만난 한정석과 이선영,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만난 박천휴와 윌 애런슨은 수련 과정 중에 각자 비슷한 취향과 세계관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 이후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게 되었다. 따라서 지원제도는 이들이 이미 구축해 놓은 파트너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이들을 ‘실제로’ 지원했다. 첫 성공 이후 이들은 콤비 플레이를 더 밀고 나가며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최근작을 보자. 전작들과 달리 상업성의 힘을 뺀 <쇼맨>(2022)을 통해 주체성 회복의 메시지를 진중하게 보여준 한정석&이선영,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넘버들을 오페라의 문법으로 활용한 <일 테노레>(2023)로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 윌 애런슨&박천휴는 작품성이 공연을 견인하는 뮤지컬의 모델을 차분히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이 두 작품을 창작한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시간의 구애를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쇼맨>은 2019년 국립 정동극장의 의뢰로 개발이 시작되어 2022년에 초연되었다. 2020년에 탈고된 초고로 한정석과 이선영이 1년간 치열하게 논의하여 대본이 완성되었으며, 이후 박소영이 가세하여 연출의 개념을 그리는 과정을 밟았다. 또한 <일 테노레>는 2018년 우란문화재단 낭독회 이후 수차례 워크숍을 거치며 2023년에 초연되었는데, 아이디어 자체로만 따지면 10년 동안 개발, 발전된 작품이다. ‘시간’이 새로운 모델 개발에 토대가 된 셈이다.

 

그동안 창작뮤지컬 지원제도는 ‘작품’과 ‘유통’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이다. 창작진들이 자유롭게 만나 뮤지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인드 혹은 사람에 투자하는 마인드가 지원제도에 필요하다. 현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공연될 만한 ‘작품’에만 몰입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람’은 뒷전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설익은 채로 현장에 나와 ‘기능성’으로만 버티는 인력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근본적으로는 학교를 벗어나 공공기관(혹은 국가)이 주최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방법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작가-작곡가 콤비들이 많아질수록 콘텐츠의 안정성과 다양성은 더욱 기치를 높일 것이다. 오세혁-다미로, 한재은-박현숙, 성종완-김은영, 김한솔-김치영, 정찬수-한혜신, 조윤지-김승민 등의 향후 작업이 현장을 풍요롭게 만들기를, 그로 인해 사람들이 지속적인 꿈을 꿀 수 있는 현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떤 경우든 그들의 그리고 뮤지컬을 사랑하는 우리의 꿈이 “찬란한 흉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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