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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①] 소설과 뮤지컬의 생산적 동거

글 |박병성(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아이스톡, 에이콤, 서울예술단 2024-04-15 1,764

[한국 문학X뮤지컬]

 

독자들이 사랑하는 한국문학이 뮤지컬 무대 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됩니다. 문학성과 재미를 겸비한 뮤지컬의 세계에서 독자와 관객이 교감하며 한층 더 풍부해질 이야기. 채널예스와 더뮤지컬이 함께 들여다 보았습니다.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 구병모의 『파과』,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 손원평의 『아몬드』,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장용민의 『부치하난의 우물』. 이들 소설의 공통점은? 공연을 좋아하는 분들은 눈치채셨을 텐데, 정답은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질 예정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이 중요한 트렌드를 이루었지만 영화 이전 오랫동안 뮤지컬이 원작으로 관심을 둔 장르는 소설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키다리 아저씨> 등 수많은 해외 뮤지컬의 상당수가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초기 브로드웨이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북 뮤지컬의 원조로 여기는 뮤지컬 <쇼보트>(1927)가 에드나 페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재즈 오페라로 뮤지컬사의 획을 그은 <포기와 베스>(1935)는 듀보이 헤이워드의 소설 『포기』를 원작으로 한다. <남태평양>, <왕과 나>, <아가씨와 건달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카바레> 등 1940-60년대 브로드웨이 황금기를 이끌었던 수많은 뮤지컬이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이 소설을 편애하는 이유

영화나 소설, 연극, 뮤지컬은 모두 서사 장르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소설, 연극, 영화는 문학, 무대, 영상 예술을 대표하는 반면 뮤지컬은 연극과 같은 무대 예술이면서 종합 예술적인 특성을 띤다. 뮤지컬은 서사의 내용 전개만큼이나 그것을 어떻게 노래와 춤으로 표현해내느냐가 중요하다. 서사로 이루어졌지만 음악적 또는, 무용적 요소가 더 중요한 오페라나 발레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기보다는 기존 서사를 음악적으로 또 무용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뮤지컬은 오페라나 발레에 비하면 원작에 기대지 않고 창작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역시 기존 작품을 토대로 한 작품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

 

이러한 뮤지컬이 유독 소설을 편애하는 이유는 소설이 서사에 충실한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연극 역시 서사가 있지만 영화는 영상예술로서, 연극은 무대예술로서 부가적인 요소가 깊이 관여한다. 그러나 소설은 오로지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다채로운 서사를 이끌어간다. 뮤지컬은 소설의 비가시화된 서사를 자유자재로 뮤지컬 양식에 맞게 변형할 수 있다. 탄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 소설은 뮤지컬로 재탄생했을 때 또 다른 매력을 주기에 유리했다.

 

원작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는 상업예술인 뮤지컬이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중성이란 측면에서 영화 역시 뮤지컬의 원작으로 자주 애용되고 있다. 특히 영화사가 직접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 2000년대 이후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은 21세기 중요한 뮤지컬계 트렌드로 떠올랐다. 대중성, 상업성이란 면에서 인기 영화를 원작으로 삼는 것이 메리트가 있지만 흥행 영화일수록 라이선스를 획득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에 비해 소설은 상대적으로 라이선스 획득이 용이한 편이다.

 

뮤지컬 <겨울나그네> 공연 장면

 

2000년대 이전 소설 원작 창작 뮤지컬

소설을 토대로 한 작품은 한국 뮤지컬 초기부터 꾸준히 등장했다. 창작 뮤지컬의 효시라고 여기는 <살짜기 옵서예>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토대로 했다. 공공 기관 성격이 짙은 예그린악단이 주도하던 한국 초창기 뮤지컬은 뮤지컬의 토착화라는 취지 하에 『배비장전』, 『춘향전』, 『양반전』, 『이춘풍전』 등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각각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 <대춘향전>(1968), <양반전>(1986), <나는야 호랑나비>(1988)로 각색해 왔다. 구전된 고전소설이 아닌 근대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은 1975년 국립가무단의 뮤지컬 <상록수>가 첫 시도일 것이다. 공공단체인 국립가무단의 입장에서는 일제 치하의 민족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창작된 심훈의 소설은 정치적 혼란기에 국민을 단합시키고 애국심을 고양하기에 훌륭한 소재였을 것이다.

 

1980년대는 창작 뮤지컬보다는 해외 번역 뮤지컬이 인기를 끌던 시기인지라 소설 원작 창작 뮤지컬이 많지 않다. 1980년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등 번역 뮤지컬 제작을 주도해 온 현대극장이 1982년 퓰리처상 수상작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뮤지컬로 제작하였다. 한국이 세계저작권협회에 가입한 해가 1985년이니, 아마도 이 작품 역시 당시의 관습상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 당시 대중작가였던 김성종, 최인호 등의 소설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김성종의 『피아노 살인』(1993), 최인호의 『고래사냥』(1996)과 『겨울나그네』가 1990년대 동명의 제목으로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특히 뮤지컬 <겨울나그네>(1997)는 초연 이후 2005년에 이어 지난해 다시 공연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외 90년대 창작 뮤지컬로 태어난 소설로는 고전인 『데카메론』(1995), 안수길의 대하소설 『북간도』(뮤지컬 명 <간도 아리랑>, 1995)빅토르 최의 삶을 다룬 유익서의 『빅토르 최』(뮤지컬 명 <어느 곳에도 나의 발자욱은 남아있지 않다>, 1996)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 일찍부터 만들어졌지만 브로드웨이에 비하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한 편이다. 뮤지컬 장르가 산업화에 접어들기 전인 2000년 중반 이전까지 열악한 창작 뮤지컬 제작 환경에서 유명 소설의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공연 장면

 

2000년대 소설 원작 창작 뮤지컬

2000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한 뮤지컬 <베르테르>가 아마도 소설 원작 창작 뮤지컬 중 가장 꾸준하게 공연된 작품일 것이다.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작품 팬클럽이 2004년 작품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팬덤이 강했다. 지금까지 14차례나 공연을 이어왔으며 2025년에도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뮤지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2010년대 중반 이후 창작 뮤지컬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도 늘어났다. 『프랑켄슈타인』, 『도리안 그레이』 등 서양 고전이 대극장 창작뮤지컬로 제작되었으며, 특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 못지않은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는 창작 뮤지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작가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이 동명의 소극장 뮤지컬로 탄생했다. 서양 고전 작품 중에는 단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마라조프 가의 형제들』이 창작 뮤지컬 소재로 인기가 높았다. 이 소설은 각각 다른 콘셉트의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블루레인>, <스메르쟈코프>로 제작되었다.

 

국내 소설 중에는 『서편제』, 『아리랑』, 『광염소나타』 등이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이외에도 근래에 들어서는 콘텐츠 확장 차원에서 최신 화제작들이 뮤지컬로 변신하는 추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알로하, 나의 엄마들』, 『완득이』, 『유진과 유진』, 『종의 기원』 등 다양한 스타일의 최신 국내 인기 소설이 뮤지컬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뮤지컬의 주 관객층이 문화를 좋아하는 30-40대 관객이다 보니 최신 인기 소설 독자층과 취향과 감각을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이들 중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유진과 유진> 등은 뮤지컬만의 문법으로 잘 각색되어 뮤지컬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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